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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Jan 05. 2019

내 몸이 S.O.S를 보낸 27년

도움이 필요해

초등학교 무렵부터 명절에 할머니 댁에서 나는 가장 먼저 잠들어서 가장 늦게 깼다.

할머니, 큰아버지, 친척 언니 오빠 등 열 명이 넘는 가족이 다 일어났을 때도 나만 혼자 이불속에 있었다. 어른들께서 몇 번을 불러도 난 일어날 생각이 없었단다.


어릴 때부터 천하태평한 아이, 잘 자는 애였다.



중고등학교 때 나는 아침에 잘 못 일어나고, 수업시간에 자주 조는 학생이었다.

나를 깨우시느라 매일 아침 고역을 치렀던 엄마도 친구들과 "딸내미가 잠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며 푸념하고 웃어넘겼다.


엄마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했고 나도 동의했다.


기상시간마다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수업시간에 더욱 열심히 눈을 떴다.


잠이 올 때면 몸을 일으켜 책을 손에 들고 교실 뒤를 걸어 다니며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졸음이 와 교실 뒤에 서서 듣는 친구들이 있어 나도 그냥 보통 학생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병든 닭처럼 잘 조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가벼운 농담거리였고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잠이 조금 많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운 좋게도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왔고 상위권 대학에 입학했다. 오랜 세월 동안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 엄마도 나의 대입으로 그간의 고행을 잊으셨을게다.



대학에 입학하니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더 많았다.

전날 밤을 새웠거나 거하게 술을 마셨다는 등의 이유로 수업시간에 졸거나 자는 것 역시 자율성을 중시하는 대학에서 누릴 수 있는 개인의 자유에 속했다.

도서관에서도 나와 함께 책을 베고 자는 이름 모를 동료들도 적잖이 있어서 나는 안심하고 졸고 편안하게 잤다.


항상 졸려서 잠만보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도, 버스에서 입 벌리고 자는 내 모습에 확 깨서 남자 친구 마음이 떠났을 때도 나는 그저 평범한데 잠이 조금 많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잠만보. 자도자도 또 졸려서 자는 포켓몬스터.


가고 싶은 대학교, 입사하고 싶은 회사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얻은 성과물들만이 중요했고 삶의 전부였다.


대부분의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그렇듯 건강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잠이 많은 것도 태어나면서부터 내 팔 위에 있는 점 같은 특성이라고 여겼다.


긴장 속에서 일상을 통제받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교에 오니 자주 지각했고 매일 졸아서 성적도 중하위권으로 떨어졌다.


토익 시험, 컴퓨터 활용능력 등 자격시험을 치르는 중간에 잠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학점과는 무관하게 여러 전형 단계를 거쳐 선발되는 대외활동과 인턴 근무라는 성과들을 얻으며 이상신호를 무시했다.

오히려 시험보다 잠들었다, 학점이 안 나왔다는 것은 동기들 사이의 시덥잖은 농담거리 정도였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내 몸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울렸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냥 잠이 좀 많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대표님과 임원진들 바로 앞에 앉아서 꾸벅거리고, 큰 차 사고를 낸 다음에야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몸의 어딘가 고장 났거나 뇌가 마비된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와 가족 그리고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끼친 후에야 30년 가까이 무시하던 내 몸의 S.O.S 요청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잠이 많은 아이, 잘 조는 사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애써 무시하고 살았다. 심하게 엉켜 덩어리로 뭉쳐버린 얇은 체인 목걸이 줄처럼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의지로 내 몸을 조절할 수 없어요. 뇌가 고장 났나 봐요. 도움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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