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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Jan 05. 2019

우리의 자잘한 인생

수면을 통찰한 아름다운 문장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잘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만큼이나 '모든 사람은 잠을 잔다'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진리다. 태어나면 누구도 예외 없이 매일 수면을 취해야만 한다. 75억 지구인은 일상에 치여 매일 살기 위해 자는 잠을 면밀히 사색할 기회가 드물다. 사실 잠은 예술가에겐 영감의 원천 일지 몰라도 일상에 쫓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생리현상이다. 보통 눈을 감고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드는 행위는 인생의 낭비로 치부된다. 통상적으로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은 게으르고 성공할 확률이 낮은 사람으로 분류하니 말이다.


기면증에 걸려 자도 자도 또 졸려 시도 때도 없는 졸음의 공격을 받는 나는 자연스럽게 잠과 수면에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잠을 제어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고 무기력했다. 이후 기면증 증상의 개선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에 빠지는 질환을 몸에 안고 있음을 인정한 후 수면이라는 물리적 행위를 사랑하게 됐다. 의미 없던 본능이었던 졸음이 특별해진 것이다. 자신의 시각을 언어와 영상 그리고 음악으로 풀어내는 데 재주가 있는 아티스트들이 <잠>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멋들어지게 풀어내는 것을 보았을 때의 쾌감은 상당하다.


영화 <수면의 과학> 포스터. 불면증을 가진 사람이 봐도 잠에 빠질것이다. 두서없는 대사와 장면이 두시간동안 엮여있다. 그래서 그런지 문득 생각이 나고 또 틀어놓고 자고싶어진다.

영화 <수면의 과학>과 <인셉션>이 유독 내 마음을 붙잡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게다. (참고로 <수면의 과학>을 보고 있으면 이런 느낌의 든다. 밤을 꼴딱 새우며 일을 마친 더운 여름날 오후 1시가 돼서야 땀에 젖은 온몸을 침대에 던져 잠이 들려고 하는데, 방바닥과 침대 위까지 옷가지와 책과 종이들이 널려 감정이 지저분하고 복잡한 순간. 에어컨을 켜야지라고 생각하던 중 잠으로 빠져들어 덥고 습해 끈적한 잠과 침대 위의 잡동사니가 엉켜있는 기분. 이 감정이 내가 평소에 8시간 이상 충분히 자고 일어났을 때의 컨디션과 같다. 잠과 현실 사이 경계를 늘어지게 오가는 영화를 보다 보면 몽롱한 졸음이 온다.) 인생의 4분의 1은 좋으나 싫으나 잠을 자면서 생생하게 보고 듣는 것들은 사실 실체가 없다. 몇 시간이나 머릿속을 유영하는 수많은 감각들을 우리는 꿈이라고 부르는데, 아주 특이한 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빠르게 기억에서 사라진다. 모든 사람이 매일 꾸는 꿈이지만 이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영상으로 깊이 있게 풀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의 여러 사건과 소재 중 유독 '잠'이라는 주제에 끌리는 건 내 운명이다. 잠을 다룬 영화, 음악, 다큐멘터리, 책 등을 흡수하며 수면과 관련한 잡학 상식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다. 두꺼운 책과 잡지, 인터뷰 등에서 잠에 대한 통찰을 찾을 때면, 토끼풀이 겹겹이 땅을 뒤덮은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을 때처럼 기쁘다. 잠을 품은 문장을 스쳐 지나가기 힘들어 그때그때 담아놓는다.



내 활력의 원천은 낮잠이다. 낮잠을 안 자는 사람은 삶을 부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것이리라. - 처칠
잠은 눈꺼풀을 덮어 선한 것, 악한 것,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것. -호메로스
최고로 멋진 일은 자는 것이다. 최소한 꿈을 꿀 수 있기에. -마릴린 먼로
신은 오늘 여러 근심의 보상으로 희망과 잠을 주었다. -볼테르


이런 잠을 주제로 한 문장들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아래 문장도 남자 오른팔이 시작되는 어깨 부분에 새겨진 문신들을 모아놓은 포스팅에서 발견했다. (아래 문장은 유럽 배우의 몸 위에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었다. 이름 모를 그의 팬이 이를 다시 영어로 바꾼 것을 보았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잘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번역가가 셰익스피어가 쓴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녹아있지 않은가? 원래 문장의 뜻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문장이다. <템페스트>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졌고, 우리말이 아니라면 어떤 느낌 일까도 알고 싶었다. 저 한 문장이 속한 전체 대사를 읽고 그 대사의 앞 뒤 대화를 보면 의미를 더 깊이 받아들일 것 같아서다.


"이제 우리의 잔치는 다 끝났다.
말한 대로 이 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다 - 모두 다 공기, 엷은 공기 속으로 녹아버렸다.
그리고 기초 없는 이 허깨비 건물처럼 구름 높이 솟은 탑들, 호화로운 궁정들, 지엄한 사원들, 거대한 이 지구 자체도 진정 이 세상의 온갖 사물이 다 녹아서 지금은 사라져 버린 저 환영처럼 희미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잘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Our revels now are ended.
These our actors, as I foretold you, were all spirits and Are melted into air, into thin air: And, like the baseless fabric of this vision, the cloud-capp'd towers, the gorgeous palaces, the solemn temples, the great globe itself, Yea, all which it inherit, shall dissolve and, like this insubstantial pageant faded, leave not a rack behind.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and our little life Is rounded with a sleep.”

― William Shakespeare, The Tempest (4막 1장)


셰익스피어가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는 한 톨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인간이 시공간을 넘어 자유로운 유일한 행위인 잠과 꿈을 원료로 반죽해서 표현한 대사에 감동했다. 유튜브(Got Balls?)에서 태양계 행성들의 크기를 비교하니 지구가 쌀알만 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서 이런 유튜브 영상과 과학의 발전 없이 시간을 넘는 통찰을 희곡에 녹인 것이다.


짧고 자잘한 내 인생은 기면증과 함께 남들보다 더 깊고 많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태초부터 미래의 끝까지 인류는 수면 속에서 시공간을 넘어 자유롭게 부유하며 일상을 버텨낼 에너지를 얻는다. 영원한 것은 없는 세상에서 영원을 꿈꾸는 순간을 더 사랑하고 기록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꿈과 같은 존재임을 공감하며.




영화 <수면의 과학>의 한장면. 꿈 속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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