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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Jan 05. 2019

회장님과 마주 앉아도 졸 패기

대학생 인턴

꿈의 직장에서 인턴을 하게 됐다.

몇 단계의 전형과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돼 인턴으로 근무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매일 세 시간을 못 자서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활기가 넘쳤다. 다른 동료들은 갑자기 잠을 못 자서 힘들어 죽겠다는데 평균 수면량이 적어져도 나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나는 잠을 많이 자도 적게 자도 늘 피곤했으니까.


사수의 업무지시를 받아 결과물을 만들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통근시간과 이동시간에도 맡은 과제를 구상하느라 눈과 손이 바빴다. 퇴근하는 택시와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깜빡 졸 때도 있었지만 손을 움직여 자료를 찾고 정리하며 깨있어야 했다.


수면량은 부족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지난 한 달여의 인턴 근무 중간 점검 날이 왔다. 인사팀에서 회사 대표님, 임원분들과 대화의 시간을 인턴들을 위해 어렵게 마련했다며 우리를 긴 탁자가 있는 꼭대기층 회의실로 안내했다.



인턴 근무 실적과 근태 우수자였던 나는 대표님을 바로 앞에서 마주 보는 자리에 앉게 됐다. 대표님과 나이 지긋한 임원들께서 짧게 한 마디씩 인사를 했다.


부장, 이사급 상사들도 회의 시간에 카리스마에 눌려 눈도 잘 맞추지 못한다는 그분들이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앉아 말씀을 하고 계셨다.




- 꾹꾹


내 무릎을 두드리는 손길에 눈을 떴다.


흠칫 놀라 곁눈으로 옆을 보니 굳은 표정의 인턴 동료가 회의실 책상 아래로 내 무릎을 재차 다급히 검지로 찌르고 있었다.


... 그랬다.

나는 입사하고 싶은 꿈의 회사 대표님이자 30년 근속한 분들도 마주하면 덜덜 떠는 그분 앞에서도 졸았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대표님은 미동도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대표님과 임원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려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나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려는데 볼 근육도 떨고 있었다.


이후 임원진들이 업무는 어떤지, 무엇을 느꼈는지 등을 질문하셨고 나는 두 세명의 인턴과 함께 지목을 받아 대표로 대답했다.



임원진과 만남의 시간 내내 내가 초반에 졸았다는 생각이 나 등골이 서늘했다. 그 와중에도 졸음이 쏟아져서 자리에 앉아 발가락을 세워 까치발을 하고 허벅지를 꼬집는 등 탁자 밑으로 분주히 잠을 쫓았다.


임원진과 간담회가 끝나고 인턴들이 다시 각자의 부서로 복귀할 때, 옆자리에서 나를 깨워준 동료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동료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기며니씨 몇 초 깜빡했어요. 그동안 우리 일이랑 과제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거라고 대표님도 이해하시겠죠. 하하"



'그래, 그동안 세 시간도 못 잔 날이 많았어. 피곤해서 그랬지.'

동료의 말에 자책을 멈추고 나를 위로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자위하며 안 좋은 기억은 빠르게 잊고 다시 업무에 몰두해 약 9주 정도의 인턴 기간을 무사히 마쳤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똑같이 몇 시간 못 잔 인턴 이십여 명 중 대표이사와 임원진 앞에서 졸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친해진 인턴들과 뒤풀이 자리에서 동료들은 나에게 엄지손을 척 내밀며, 대표이사님 앞에서도 눈을 감는 대단한 포부를 가졌다고 농담하며 다 같이 웃었다.


이어서 임원진과의 만남 시간에 "인턴 근무를 하면서 개선점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임원에게 "사원과 같은 업무를 하지만 월급이 너무 적습니다."라고 대답한 교포 여자아이에게 나의 용감함(?)은 묻혔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유난히 잠이 많고, 대중교통을 타자마자 잠이 들었으며 긴장해야 될 자리에서 졸았다.


돌아보면 내 몸은 계속해서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들이 질환 또는 병 때문이었음을 나도 주변의 누구도 몰랐다. 만약 졸음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고 대입에 실패했다면, 면접 때 졸음이 와 인턴 구직에 실패했다면 좀 더 빨리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다.


그저 나는 나와 같이 건강한 타인보다 독하지 못한, 또는 잠을 깨려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려니 했다.



운이 좋아 몸이 보내는 신호를 몇십 년 간 무시해도 삶의 크고 작은 성취를 이어가던 나는 결국 자유로의 살인 병기가 됐다.

(기면증 이야기#1. 의심의 시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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