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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Oct 14. 2023

그만둔 짝사랑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아 서랍장 속에 넣어뒀는데. 뚜껑 덮인 편지 상자를 햇볕이 없는 서랍 속에 지만 색이 변해 있었다. 어렸던 마음이 변한 만큼 종이와 펜도 변색됐나 보다. 읽을 줄 모르지만 위에 점이 찍힌 알파벳으로 멋들어지게 쓴 주소 위로 프랑스 스러운 우표가 붙은 색 바랜 봉투에 손이 갔다. 아, 그 사람이 쓴 편지구나.


성도 이름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한 과 300명 정원을 ㄱ, ㄴ, ㄷ순으로 잘라 다섯 개 그룹으로 나눴는데 나는 다섯 번째 그룹이었다. 김이박씨는 모두 빠진 흔히 보기 힘든 성씨의 총집합이었다. 피 씨, 흰 씨, 호 씨 등등. 내가 속한 그룹은 성씨만큼이나 독특한 인물도 많았다. 관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동기, 전직 피아니스트와 야구선수 등등. 같은 학번 동기인데 네댓 살 많은 사람들이 다섯 명이 넘었다. 사수생, 다른 대학을 다니다 온 사람 등. 만 열아홉 신입생들보다 인생의 경험치가 많은 그들은 여유가 넘쳤고 그룹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사람의 어머니는 누구든 한 번 들으면 기억하니 막살지 말라는 뜻으로, 특이한 성에 더해 이름까지 전국에 하나도 없을 것처럼 지었다고 했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책을 들고 다니던 그는 주인공 인물 같았다. 글과 술을 좋아해 주변엔 그를 동경하고 따르는 이들이 성별을 불문하고 여럿 있었다. 별명은 피리 부는 사나이. 그가 가는 곳에는 난쟁이처럼 여러 명이 쫄쫄 따라다녔다.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2000년대 초반 모두의 페르소나였던 싸이월드 역시 그의 매력을 더하는 곳이었다. 흔치 않은 노래로 가사를 찾아보며 듣게 만드는 음악에 그가 쓴 글들을 읽으며 매번 감탄했다. 사진첩 없이 글 쓰는 게시판만 있던 그곳은 적지 않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브런치스토리 같은 글쓰기 플랫폼이 없던 시절 그는 이미 스스로를 작가로 만든 듯싶다. 사전을 찾아봐야 할 만큼 독특한 한글로 된 단어 그렇지만 현학적이지 않았던 그의 글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는지 모른다. 아마 그 게시판 조회수 지분의 20% 이상은 나였을 거다.


좋아해도 티는 안 내고 빙빙 그의 곁을 맴돌기만 했다. 겉으로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30분 거리에 살고 있는 그를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치길 설레면서 기도했다. 그가 들고 다니는 책 표지를 꼭 적어뒀다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이름도 생소한 독립영화를 봤다고 쓴 글을 보고는 수업도 빠지고 당장 시네큐브로 달려가 대낮에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그가 올까 기다려본 적도 있다. 난 침묵의 스토커였다. 그와 가장 친한 나이 많은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뭘 먹었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곁에서 들었다. 나는 절대 안 들켰다고 생각했지만, 눈치 빠른 늙은 동기들은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처럼 매일 나는 그를 우연히 마주치길 기도했다. 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는다. 토요일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그날도 습관처럼 갑자기 그를 만날까 봐 공들여 화장을 하고 마주치면 이렇게 말해야지 상상을 했다. 그가 그랬듯 나도 한 손엔 결국은 반도 읽지 못할 책을 들고 버스를 탔다. 창밖을 보면서 그가 술자리에서 했던 웃긴 얘기를 떠올리며 킬킬대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버스 맨 뒷자리에서 긴 다리를 버거워하며 않은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셀 수 없이 연습했던 그를 우연히 만나면 칠 대사들은 NG를 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심장이 터질 뻔했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던 그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면 지금도 심장이 콩닥 하고 제자리를 알린다. 서울 끄트머리에 집이 있어 학교든 약속장소든 대부분 한 시간 이상은 가야 했던 터라 꽤나 긴 시간 그와 수다를 떨었다. 너무 좋아해서 말도 못 걸었는데 그날 이후 얼음이 깨진 듯 편히 부르고 학교에서도 공강시간이면 책과 영화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숨겼던 마음이 빗장을 푸니 마구 쏟아져 나왔다. 함께 걸으니 손을 잡고 싶어 졌고, 같이 밥을 먹으니 키스가 하고 싶어 졌다. 문학과 영상 그리고 음악은 모두 사랑을 노래했고 우리도 관계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꽤나 많이 했다. 20대 초반에 네 살 위 오빠의 경험들은 왜 그리 멋져 보였는지. 착하고 순수한 동갑내기들은 젖비린내가 난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많은 연애경험은 내가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 눈치로 알만큼 노련한 배려로 내가 불안할 틈이 없게 만들었고, 내 나이 또래들이 학교 주변을 맴돌며 데이트할 때 그의 차는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캠퍼스에서 바다 앞으로 데려다줬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라는 관계에 서로를 묶지 않는 것도 마냥 좋았다. 구속을 싫어하는 내 성격과 딱 들어맞는 형태의 자유로운 관계가 좋았다. 만날 땐 최선을 다하되 각자의 공간은 침범하지 않기로. 어쩌면 그래서 더 우연히 버스에서 마주친듯한 설레는 순간이 꽤나 자주 그리고 종종 있었던 듯싶다. 같은 학년, 같은 과라서 늘 서로의 주변을 행성처럼 맴돌다 밥도 먹고 영화도 봤다. 그와는 계획 없이 모든 만남이 즉흥적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를 짝사랑하면서도 고백하면 그의 마음이 떠날 걸 알아서다. 서로의 시간을 즐길 뿐 책임과 의무를 관계에서조차 지고 싶지 않아 하는 그의 성향은 늘 그의 글과 말에서 드러났다. 동기들이 둘이 사귀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은근한 우월감도 느꼈다. '소유를 초월한 사랑을 너희가 아니 어린이들아.' 정도의 허세를 품고서.


그랬던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이 소식은 특이 성씨 집단이던 우리 그룹뿐이 들썩이는 뉴스였다. 밸런타인데이 등 고백을 등 떠미는 날이면 사물함 앞에 놓인 몇 개의 초콜릿을 동기들에게 나눠주며, 살면서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자랑스레 하던 그여서 더 그랬다. 사진첩이 없던 그의 싸이월드는 사진첩이 생기고 여자친구와 얼굴을 다정히 맞대고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상대는 프랑스에 집과 부모님이 있다던 옷 잘 입는 그녀였다. 여름방학이면 프랑스의 초원에서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빛내며 뛰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겨울방학에는 눈 덮인 알프스 산맥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을 들고 미소 짓는 그녀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으니 기분이 나쁠 것도 없었다. 다만 더 이상 우연히 마주칠 걸 생각하며 휴일에도 꾸미고 나가지 않는 건조한 일상이 퍽퍽했다. 소개팅을 해도, 떠들썩하게 미팅을 해도 내 마음을 붙일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맛있는 음식이 몸에 나쁜 것처럼, 그에게 길들여진 후 안정적이고 진중한 사랑은 오히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가 그립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사람이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학교 어디든 손을 꼭 잡고 다니는 꼭 맞는 그 둘과 함께 밥도 먹고, 엠티도 다녔다.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은 그의 표정을 보며 나도 행복했다. 저학년 때는 그룹에서 다 같이 시간표도 짜고 수강신청도 했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자연히 관심사나 복수전공이 달라졌고, 취업 준비로 우리의 궤도는 멀어졌다. 시원한 고백 없이 할 거 다 했던 나의 짝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계속 돈을 벌어야 했던 현실로 돌아와 아르바이트와 과외 그리고 인턴 생활에 낭만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던 몇 년 후.


오랜만에 작은 철문을 열면 고지서와 광고지만 토해내던 우편함에 프랑스가 들어있었다. 흔한 종이봉투에 우표인데도 왜 그렇게 우아했나 모른다. 읽을 수 없는 프랑스어로 쓰인 주소와 글자들 사이로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한 번만 들어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우연히 그를 버스에서 마주친 그날처럼 기분이 좋아 한참을 뜯지 않고 편지를 바라봤다. 그가 살고 있다는 빨간 카펫에 고양이가 있는 낡은 나무가구로 가득한 집이 그려지는 일상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내가 그립다고 쓰여있었다. 나에게도 그가 그랬다. 과거의 상자에 담겨 있을 때만 좋은 사람. 답장을 하지 않은 그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차분히 접어 상자 속에 넣어 서랍장 속에 간직했다.


지금도 그의 편지는 바라만 봐도 마주치길 간절히 바라던 그 순간의 나로 순식간에 데려간다. 빛바랜 편지들과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등을 돌리자마자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던 쪽지들까지. 가만히 손을 다 봤다. 나도 세월과 함께 꽤나 괜찮게 빛바래고 있지만, 가장 빛나던 그 순간들은 역시나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피천득 수필가가 잠깐이라도 다시 보기만을 열망했던 아사코 곁을 오랜 세월이 지나 우연히 스쳐 지나간 후 '세 번째는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한 마음을 알겠다. 나도 그도 접점 없이 서로의 삶에 열심히인데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서로의 모습을 봐서 뭐 하겠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마주치기만을 바랐던 그 시절보다 간절하게 그를 제발 마주치지 않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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