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이 불타던 날
내일은 진이의 결혼식이다.
이틀 전에 시골에서 올라 온 친척 아주머니들이 큰 방을 차지하고 앉아 음식을 만들며 분주했다.
방과 부엌사이를 분주히 오가던 여자는 작은 방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 진이를 보니 문득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여자는 부엌의 한 쪽 의자에 앉았다. 어느새 눈 가가 촉촉하게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구 웬 주책이야~" 혼잣말을 하면서 여자는 얼른 두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부엌 한쪽에선 떡을 찌는 시루에서 올라오는 김이 뿌옇게 여자의 얼굴을 덮쳐왔다.
십오년 전, 부도를 맞고 살림살이에 빨간 딱지가 붙여진 후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후 무엇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모르지만 여자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얻어 준 작은 가게가 딸린, 방 두칸 짜리 남의 집에 세를 들어갔다. 그곳에서 세탁소 간판을 걸고 다섯아이들과 함께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세탁물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드라이할 옷들과 다림질할 옷들을 분류했다. 밥을 짓고 아이들이 학교로 가고나면 가게에 다시 나와 다림질을 하고 수선을 하고 빨래를 하고 드라이 공장에 옷들을 가져다 주었다. 너무나 생경한 생활이었지만 여자는 한가할 틈이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지?' 라고 누구에게도, 자기자신에게 조차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벌어진 일이고 이 일에 대해서 어떤 해결책도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건 내가 못나서이고 남편이 스스로 마음을 돌리지 않는 한 이 모든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녀에게는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었다.
남편은 그래도 매달 얼마씩 생활비를 보내주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 바라고 손을 놓고 있기에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아이들도 별로 저항하지 않았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사느냐고, 아버지는 왜 없냐고 묻는 자식들도 없었다. 아이들이 착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때로 여자는 가슴 속 한구석이 미어지는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일찍 철이든 속이 깊은 자식들이 때로는 어미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슬픔이 된다는 것을 그때 여자는 깊이 느꼈다.
그럼에도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갔다. 아이들은 한 학년씩 올라가고 여자는 세탁소 일이 손에 붙었다. 세탁소는 특별히 잘되지도 그렇다고 아주 안되지도 않고 그럭저럭 유지가 되었다. 여자는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늘같이 믿었던 남편의 배신에도 이젠 분이 나지 않았다. 세탁소에 온 동네 여인들과 얘기하며 웃기도 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날들이 고맙기도 했다.
그날은 유난히 더웠던 날이었다. 7월 중순이었던가. 장마가 시작되기 전의 낮은 공기들이 답답하게 숨을 막히게 하던 날. 여자는 동대문에 있는 드라이 공장에 옷들을 전해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오는데 지면에서 올라오는 더운 열기들이 유난히도 뜨겁다고 생각했다. 연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걷던 그녀는 저만치 보이는 풍경에 그만 다리가 풀리며 털썩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저.. 저.. 우..가게..가게가..." 무슨 소린줄도 모르겠는 낮은 소리들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땅바닥에 주저앉아 알지못할 소리를 내던 그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악~ 가게, 내 가게. 어떡해...." 짐승같은 소리로 울부짖으며 미친듯이 앞으로 달렸다.
저만치에서 뿌연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듯 했고 웅성 웅성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떨어진 세탁소 간판이 한 쪽에 엎드려 있었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에요. 이게 무슨일이에요?" 여자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면 소리쳤다.
"에구, 진이 엄마, 세탁소에 불이 났어"
"소방차가 왔다 갔어. 큰일 날 뻔했지 뭐야"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지만 여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깨진 유리창과. 무덤처럼 쌓여있는 타다 만 옷들. 휘어져서 쓰러져 버린 옷걸이들, 흥건한 물바닥...
경찰서에서 여자가 들은 얘기는 합선으로 인한 화재라고 했다.
여자가 세탁물을 들고 가게를 나간후 아무도 없는 가게의 전기 선에서 전선 불량으로 스파크가 일고 불이 붙었다고 했다. 마침 여자가 끄지 않고 나간 동작중인 선풍기가 빠른 속도로 불을 확산시켰다고 했다.
그래도 가게만 일부 타고 안채까지 번지지 않고 진화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여자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믈만 줄줄 흘릴뿐이었다.
마음 속에서는 어떤 줄 하나가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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