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외곽으로
불이 난 다음 날 아침, 여자는 아이들보다 먼저 눈을 떴다.
밤새 거의 잠을 자지 못했지만 몸은 먼저 일어났다. 창밖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았다. 전날의 소동이 거짓말처럼, 아침 햇살은 골목을 고르게 비추고 있었다.
코끝에는 아직도 탄 냄새가 남아 있었다. 씻어도 빠지지 않는 냄새였다.
여자는 한동안 가게 앞에서 그 냄새를 맡으며 서 있었다. 울지도, 한숨을 쉬지도 않았다. 마음은 텅 비어 있었고, 생각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치워야 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불탄 가게로 들어갔다.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빗자루를 들고 천천히 쓸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말없이 옆에 서 있었다. 여자는 아이들에게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 역시 묻지 않았다.
타다 남은 옷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옷도 있었고, 일부만 그을린 옷도 있었다. 여자는 옷을 하나씩 들어 올려 분류했다. 쓸 수 없는 것, 어쩌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 판단은 빠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결국 다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까지 여자는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오갔다. 몸은 익숙하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자꾸 어딘가로 빠져나가려 했다.
여자는 그때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생각이 시작되면 감정이 따라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여자는 못 쓰게 된 세탁물들을 정리했다.
맡긴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연락을 해야 했다. 옷값을 물어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왔다.
액수를 계산해 보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가게를 다시 꾸미는 비용까지 생각하자 머리가 멍해졌다.
불을 막을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설명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여자는 종이에 적힌 숫자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접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날 밤, 여자는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리지도, 종이를 다시 펼쳐보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잠든 뒤에도 불을 끄지 않았다. 울지 않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 이유를 굳이 찾지는 않았다. 울음은 이미 다른 시간에 다 쓴 것 같았다.
가게는 다시 열지 못했다. 수리를 할 여력도, 다시 시작할 힘도 없었다. 여자는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아이들의 하루를 챙겼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금세 지나갔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그 일 년 동안 여자는 특별히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일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넘겼다.
아이들은 자랐고, 계절은 바뀌었다.
여자는 여전히 같은 집에 있었고, 같은 시간에 잠들고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그 시간 동안 여자는 자주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생각이 깊어지면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계획은 희망을 만들고, 희망은 다시 실망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가게를 재건하는 일과 세탁물을 배상해 주는 일은 남편이 보내준 돈과 가게 보증금으로 해결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에게 손해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것만큼은 깔끔하게 매듭짓고 싶었다.
일 년쯤 지났을 무렵,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 외곽에 작은 집을 지었으니 거기로 들어가라고 했다. 여자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주는 안도감은 분명히 존재했다.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
끝까지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여자는 숨을 한 번 고를 수 있었다. 사랑이나 기대는 아니었다. 다만 더 이상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는 막막함에서 한 발짝 물러날 수 있었다.
이사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짐은 많지 않았다. 버릴 것이 더 많았고, 챙길 것은 적었다. 아이들은 새 집을 둘러보며 방을 나누었다. 여자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집이 우리 삶의 마지막 거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날 밤, 여자는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불도 끄지 않은 채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도, 일도,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다만 살아야 한다는 감각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곁에 있었다.
여자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무엇을 붙잡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 남은 다섯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움직여야 한다고 다짐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곱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