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부재 앞에서
2023년 12월 11일에 썼던 메모장에는
이 글이 적혀있다.
2주 전 만 해도 엄마랑 함께 김장을 했다.
동생과 내가 엄마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이미 배추를 다 절여서 씻어놨다.
거의 백 포기 가까운 배추를 혼자 사서
혼자 나르고, 혼자 다듬어 절이고, 씻어서
엎어놓으셨다.
그뿐이랴. 이미 무채까지 다 썰어놓으셨다.
김장하러 오라고 하셨지만 이미 모든 준비를 다 해놓으셔서 우리는 속을 넣고 버무리는 일만 했다.
나와 동생은 속을 버무리면서 열 번도 더 말했다.
"엄마 이제 김장하지 마세요.
딸들이 다 육십이 넘었는데 뭐 하러 힘들게 김장을 해서 나눠줘요.
우리도 다 각자 사서 먹던지 해 먹던지 알이서 할 테니까 힘들게 이젠 김장하지 마세요."
엄마는 연신,
"알았다 나도 이제 디시는 안 한다."
하시며 허리를 두드리셨다.
그랬던 엄마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니
가는 중에도 믿기지가 않아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김장철만 돌아오면 마음이 먹먹해 온다.
이젠 김장하지 말라던 당부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엄마는 94세를 일기로 갑자기 돌아가셨지만
총기와 건강은 정말 좋으셨다.
그때도 혼자 홍성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고 가실 정도였다.
그래선지 나는 엄마가 늙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갑자기 돌아가실 거라곤 더더욱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분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시니 인생이란 게 참 허무했다.
유한한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린 어떤 일들을 당할지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날그날을 살다 보면, 삶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도 못하고 당연한 듯 사는 날의 연속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일이 생기면 그 앞에서 숙연한 마음을 갖고 후회한다.
'그때 더 자주 갈걸.'
'그때 그 말을 왜 했을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말해줄걸.’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늘 다음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산다.
명절이 또 오고, 김장철이 또 오고,
다음 주에 전화하면 되고,
몸 좀 나아지면 한번 가야지 하면서.
그러나 어떤 ‘다음’은 오지 않는다.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무게를 안다.
잔소리처럼 들리던 말들,
당연하게 받아먹던 김치 한 포기.
혼자서도 괜찮다며 손사래 치던 그 뒷모습까지 그리워지고 모두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족의 부재는사람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이 통째로 비어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가끔 생각한다.
혹시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떤 말을 남길까.
혹시 저 사람이 내일 없어진다면
나는 지금처럼 말할 수 있을까.
신노년의 시간은
잃어버린 것을 세어보는 나이가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더 깊이 바라보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아직 곁에 있는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말하자.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있어줘서 든든하다고.
어느 날 갑자기 그날이 닥치기 전에.
내 마음이 홀연히 사라지기 전에.
#작가해피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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