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의 힘
2025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집 근처 산에 올랐다. 해발 297m.
산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올해는 먼저 오르자고 제안했다. 나이 먹어가는 게 어느덧 두려운지 두 다리 성할 때 한 번이라도 더 가자 싶은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든다. 지치고 힘들걸 알면서도.
예상외로 이번에는 거뜬히 산을 올랐다. 숨이 차는 횟수도, 쉬어가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아마도 매일매일 일정시간씩 운동이라는 스케줄에 시간을 쏟은 탓이겠지.
역시 루틴의 힘은 평소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다가 이럴 때 발휘를 한다.
'그래, 매일매일 운동을 해야겠다!'
새해 다짐을 제대로 한 새해 첫날이었다.
나의 운동 1. 일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걷기 그리고 홈트레이닝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딸이 있다.
사춘기가 가신 듯하면서도, 아니 그새 다시 오셨나? 하루 수십 번, 수백 번 왔다 갔다 하는 아이의 이상한 행동.
이해하고자 아니 절대 이해할 수는 없으니 덤덤하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미치고 폴짝 뛰겠다!!
자존심이 하도 상하다 보니 벗어날 방법을 찾다 찾다 정착했다.
1. 밖으로 나가 파워워킹을 하며 속상했던 것들을 일일이 혼잣말로 내뱉기
2. 나가는 것이 싫으면 유튜버 운동녀 만나 10분이라도 스트레칭에 집중하기
혼잣말을 내뱉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화가 무진장 날 때는 눈에 뵈는 게 없다. 그냥 허공과 얘기 중입니다~ 하고 주위 시선을 모른 체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다 들어왔을 때, "엄마 왔어?" 하는 딸아이의 인사에 얼었던 내 기분도 사르르 녹는다. 이렇게 금방 풀릴 걸 뭘 그렇게 날을 세워 나갔다 왔을까. 여하튼 운동이라도 했으니 O.K.
평소 운동인증방에서 추천받은 유튜버 운동녀들의 채널을 정리해 놓았다. 과연 내가 홈트를 할 수 있을까. 정리만 해놓고 시도도 못하던 때, 바깥 날씨가 추워져 엄두가 나지 않던 터에 이어폰을 꽂고 홈트를 해보자 매트를 깔았다. 화가 나니 우선 무엇에든 집중하고 싶었다. 빅씨스 언니를 따라 한 동작 한 동작 열심히 따라 했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 있으니 거실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하고 있는데, 화장실 가려던 딸이 나를 보고는 푸하하 웃는 것이 아닌가.
"엄마, 지금 운동하는 거야?"
분명 질문은 하고 있지만, '그게 운동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어이없다'로 들렸다.
기분 좋게 시작하지 않았다 보니 삐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따라 했고 끝까지 시간을 채웠다. SUCCESS!
아이는 내 운동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면서 히죽히죽 댔다. 나도 어이가 없어 웃었다. 무지막지하게 따라 하던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지 나도 아니까! 덕분에 10~15분 투자로 홈트에 적응을 하게 되었고, 홈트도 땀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사춘기 아이와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못했지만 날이 선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자존심하나 지켜보고자 마음먹었던 것들로 정신건강 신체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었다. 유후~
나의 운동 2. 안정된 몸 상태를 만들어주는 필라테스
필라테스를 꾸준히 일대일로 해 왔다.
비싼 비용에 많이 망설였지만 그룹일 경우 종종 빠져 결국엔 출석하지 않을 나 자신을 알기에,
운동을 못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조차 민망할 거라는 만년 초보자의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댈 것을 알기에
다른 항목에서의 지출을 줄이고 과감히 운동 비용에 투자를 했다.
물론 지난 3년 동안 1~2번 정도 시간 착오로 비싼 비용을 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유지! 유지! 유지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건 내가 생각했던 여러 가지 운동하지 않을 핑곗거리를 싹 잘라낸 덕분일 것이다.
3년 동안 딱 2명의 선생님을 만났다.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만난 첫 번째 선생님은 내가 처음이다 보니 기본적인 '호흡법'과 지시한 자세에 대한 '몸의 인지'에 중심을 두었다. 난생처음으로 어깨를 펴는 법을 알게 되었고, 똑같은 모양의 자세라도 힘을 주는 부위에 따라 운동이 되고 안되고가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필라테스라는 운동이 하루아침에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고 차츰차츰 쌓은 운동량이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즈음 느끼게 된 듯하다. 내가 꽤 긴장을 많이 하는 터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때는 어깨에 모래주머니를 얹어서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필라테스를 시작한 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정신적으로는 긴장을 하지만, 그 긴장에 신체 특정 부위가 힘들 만큼 영향을 주는 일이 신기하게도 싹 사라졌다.
선생님의 출산으로 아쉽게 헤어지고, 두 번째 선생님을 만나 지금껏 해오고 있다. 첫 번째 선생님은 재활 위주로 섬세하게 운동을 시켜주셨었다면, 두 번째 선생님은 속근육이 생긴다는 느낌일까 운동량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다. 물론 꾸준히 해왔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선생님이 이끈 운동량을 소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뱃살은 그대로이나 복근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라 일부러 체중 때문에 인바디는 체크하지 않았지만 하여간 기분이 꽤 괜찮다.
최근에는 전직 수영국가대표 출신인 지인과 함께 하고 있다.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별생각 없이 함께 했는데 와우 웬걸, 운동량이 상당하다. 필라테스가 처음이시라 하지만 역시나 평생을 운동해 오신 분이라 달랐다. 난 너무 버거운데 거뜬히 해내시면서 시원하단다. 오 마이 갓~!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진도를 함께 나갈 수 있는 건, 지난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리라. 헉헉대며 함께 하고 있지만 굳이 불평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직 국대 선수와 함께 운동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나도 평생 운동해 오신 분과 나란히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 본다.
진정 내 생애 크나큰 발전이다.
나의 운동 3. 발전은 없는 듯 하나 매 순간 즐거운 배드민턴
어릴 적 기억 속에 유일하게 즐겁게 했던 운동은 배드민턴이었다. 사실 운동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그렇게 즐겁게 쳤던 기억으로 신혼 때도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저녁을 먹고 남편과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곤 했다. 아이를 낳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배드민턴 라켓을 다시 잡게 된 건 집 근처 새로 오픈한 실내 배드민턴장 덕분이었다. 마침 즐겨 치던 아이 친구 엄마가 함께 하자 했고, 우리는 4명의 멤버를 결성해 매주 수요일 센터로 향한다.
그러기를 만 2년째, 여전히 스텝도 엉망이고 몸은 구부려지지 않고 점프는 무슨, 걸어서 공을 잡으러 가질 않나 실력은 어제나 그제나 매 한 가지다. '스매싱 한번 제대로 해보리라!' 이런 다짐조차 한번 해본 적이 없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컨디션이 받쳐주는 대로 그날의 수업에 임한다. 때론 예상외로 랠리가 오래가고, 힘든 헤어핀을 겨우 넘기고, 푸시로 쐐기를 박아 순간의 승리를 기뻐하기도 한다.
이 시간만큼은 목표 지향적인 운동 시간이 아니라 즐기면서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한 주 한 주 선생님과의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관절이 닳아 더 이상 쓰지 못할 상황이 오기 전까지 나는 꾸준히 수요일엔 배드민턴을 칠 것이다.
조금이라도 흘리는 땀방울에 상쾌함을 느끼고, 타는 목을 적셔줄 시원한 물 한 병만으로도 수요일엔 그걸로 됐다.
지금처럼 스트레스받지 않고 운동을 오랫동안 하고자 하는 게 나의 운동 목표다.
투자 시간에 실력이 비례하지 않으면 뭐 어때. 뭐든지 오래오래 꾸준히 하는 게 장땡!
오늘도 홈트를 하면서 쭉쭉 뻗어지는 내 다리에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오른손, 왼쪽 다리/ 왼손, 오른쪽 다리
이런 세트는 왜 제대로 안 되는 거지? 머리가 문젠가 몸이 문젠가.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오늘의 운동도 인증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