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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은 속초에서, 아우들은 송파에서

by 미미

지난 19일부터 속초시장기배가 닻을 올렸다. 1차전, 2차전 기분 좋게 연승을 이어온 우리 팀은 3차전에서 일산동구에 패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형들은 후회 없는 경기를 치렀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고 나니 결과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의연함이 돋보였다. 과연 선수다운 면모였고, 우리 아이 역시 또 배워야 할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기회였다.



매 경기 우리 팀에서는 중계를 맡아주시는 아버님들이 계신다. 유튜브 개인 계정을 통해 촬영 겸 진행을 해주시는 한 아버님께서는 자비로 중계용 카메라까지 구입을 하셔서 경기 중계를 책임져 주신다. 처음엔 아버님 혼자서 경기 촬영을 하며 캐스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는데, 시간이 가며 야구 지식이 해박하고 입담이 좋으신 아버님들이 돌아가며 해설을 곁들여 주셔서 경기 직관이 힘든 가족들이 안방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는 것처럼 우리 팀의 경기 중계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경기 역시 나도 함께 하지 못한 상황이라 집안일을 하며 유튜브를 켰다. 선수의 기량을 제대로 캐치하고, 경기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해석하여 알려주시는 아버님의 명품 해설로 경기를 꽤 재밌게 시청했다. 속초시장기 3차전은 우리 팀 주전 선수들의 기량도 으뜸이었지만 일산동구팀의 전력도 너무 좋아 손에 땀을 쥐고서 경기를 보았다. 물론 프로 경기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생각보다 리틀야구만의 매력에 빠져들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의 팀이 존재하니 더더욱 그러할 터.



8월 23일 3차전 당일, 형들은 이른 새벽부터 속초로 출발했고 동생들은 예정대로 구장에 남아 평소와 다름없이 훈련을 했다. 우리 팀 모두가 속초에 가서 주전 선수들을 응원하면 좋겠지만 항상 상황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매 경기에 동행하지 못하는 선수들 또한 생기게 마련이다. 구장에서는 어김없이 훈련은 진행되고 마지못해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훈련시간은 단축될지언정 변동이 없다. 경기장에서는 감독님이, 구장에서는 코치님이 우리 선수들을 이끌어 주신다. 아이는 더그아웃에서 형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 재미있다며 속초행을 원했지만 남편의 출근으로 이번만큼은 아빠에게 맞추자는 무언의 에티켓이 필요했기에 아이도 순순히 따랐다.



우리 구장에 남아 코치님과 함께 훈련을 한 친구는 아이를 포함해 11명. 훈련시간 앞 2시간은 강북리틀과의 연습경기를 가졌다. 감독님끼리의 친분이 두터운 강북리틀은 우리 팀과 종종 이렇게 마주한다. 지난 5월 연합팀을 이뤄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과는 더욱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경기 스토리도 잊을 수 없을뿐더러 아이에게 첫 주전 경기였으니 강북리틀 친구들에 대한 애틋함은 당연했다. 연습경기인 면도 있었지만 함께한 경험 덕분에 서로를 응원하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이어나갔다. 특히 이번 연습경기에서는 입단이 늦은 6학년 형들과 5학년을 중심으로 총 6이닝 동안 1이닝씩 투수를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투수 포지션이 거의 모두 처음인 선수들이었지만 꽤 집중했고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넘쳤다. 평소 갖지 못했던 경험을 해본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더욱더 집중하여 호수비의 명장면 또한 만들었다. 결과는 6:1로 승. 이것만으로도 마무리가 아쉬운 아이와 친구 1명은 훈련 시간이 끝나고도 1시간을 더 캐치볼을 했다. 다시 폭염이 시작된 35도의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오후 1시 4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지칠 줄 모르고 야구의 열정을 불태웠던 하루였다.



송파에서 동생들은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봄으로써 자신감을 충전하게 되었고, 먼 길까지 가서 경기를 치른 형들은 늦여름 속초바다에서 양껏 수영을 즐겼다. 한 지붕 두 가족 마냥 원팀이 다른 일정으로 진행된 날이었지만 송파와 속초에서 모든 아이들은 즐겁고 행복했다. 속초 후기 사진만 봐도 형들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함께 훈련받고 경기를 치르면서 쌓아온 우정이 얼마나 돈독해졌을까 싶은 것이 '야구단이라는 단체가 주는 큰 묘미는 이것이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돌아오는 29일, 양평군수기배가 기다리고 있다. 현재 중1 형들 3명과 중3인 누나 1명이 이 대회를 끝으로 졸업을 한다. 선배들의 마지막 대회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그들의 기억 속에 최고의 순간으로 남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지금까지 다치지 않고 즐겁게 야구해 온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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