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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단을 하다

연재를 마칩니다

by 미미

'반드시 중1까지 뛰고 이 팀에서 졸업을 하게 한 후, 공부에 집중하게 하겠다.'

입단과 동시에 우리 부부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역시나 우리의 계획이었을 뿐, 자식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는 한발 더 앞서 나갔고, 우리가 꿈에도 그려보지 못한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운동선수, 과연 우리 집 자식이 가능 키나 한 걸까. 특히나 힘이 좋아야 하는 야구에서 빼빼 마르고, 한 끼 거르는 건 일도 아닌 아이가 무슨 수로. 남편은 끊임없이 자신의 얇디얇은 체형의 유전자를 들먹이며 부정을 해왔지만 역시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지는 못했다.



어느 주말 저녁,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며 진지하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아이는 주어진 신체적 조건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니까 야구선수를 해야 한다고."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그 자신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지만, 남편은 차근차근 야구선수로의 진로에 대해 반대한다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부상을 입으면 어떡하냐, 프로가 쉬운 줄 아냐, 뒷바라지가 쉽지가 않다, 공부가 훨씬 쉬울거야, 아빠 유전자 가졌으면 너는 힘들다!"

옆에서 잘 듣고 있던 나는 마지막 멘트에 버럭 했다. 인생이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냐고! 다른 이유는 다 동의하지만, 이건 아니올시다. 공부도 좋은 머리로만 하는 건 한계가 있고, 끈질기게 노력하면 좋은 머리 이길 수 있는 법! 유전적 요인에 반박을 하다 보니 나는 진심으로 원하면 노력해 봐라, 그 노력하는 모습과 열정을 직접 보여주면 지지하겠다는 조건부 허락을 하게 되었다. 남편도 결국 태생적인 원인을 든 말도 안 되는 이유에 꼬리를 내리면서 조건부 허락에 동의하였다. 아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며 의지를 내비쳤고, 그렇게 우리는 내키지 않는 진로에 한 발짝 나아간 셈이 되었다. 그래, 최근 읽은 야구 관련 기사에서도 '재능은 시작일 뿐, 노력이 끝을 결정한다.'라고 했다. 운동이나 공부나 어느 분야든 노력하는 자가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 당시 남편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었다. 재능이 있어도 성공하기가 힘든 분야가 운동인데, 재능은 제로에 가깝고 부상을 당하면 또 어쩌겠냐는 거다. 예전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고 후회를 하며 500만 원 마이너스를 보고 팔았던 때의 기분처럼 찝찝하다 했다. 그렇게 썩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한 주 한 주를 보내며 기왕 마음먹은 거 아이에게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을 더 채워주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라 생각하여 우선 몸을 만들기로 했다. 몸을 만들기엔 당장의 팀 훈련 시간이 많이 부담이 되었고, 팀 훈련만으로 기술력을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퇴단을 결심하게 되었다. 물론 이후에 또 다른 팀으로 합류를 해야겠지만 당장은 아이가 마음 편히 본인의 운동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앞섰다.



1년 가까이 매주 만나왔던 팀원들, 부모님들, 감독님을 생각하니 그만두겠다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쌓여 생긴 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만을 생각하고자 했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예상밖으로 아이는 크게 미련이 없었다. 아마도 달라질 자신의 모습에 기대가 차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우리 부부가 이 팀에서 만나 소소하게 정을 나누었던 분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웠다면 아쉬웠을 터. 아이는 생각보다 마음 편히, 즐겁게 자신의 운동에 집중하고 있고, 그 덕분에 우리 역시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이의 첫 야구팀을 추억의 사진첩에 고이 넣어두었다.



초등학교 6학년 4월 즈음, 중학교 진학이 대부분 결정된다고 한다. 몸을 만들고 실력을 키우기에 늦게 시작한 우리 아이에게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이 스스로가 정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 속에서 힘들어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을 배우게 될 거라 생각한다. 이 과정의 끝이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마음먹은 대로 노력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포기할 때 포기하더라도 부모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직접 느끼는 한계 속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길, 그때가 되면 아이도 더 이상의 미련은 없으리라.



상상 속에서도 해보지 못했던 운동선수 뒷바라지의 길. 남편도 나도 어지럽고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아이가 잘했으면 좋겠다. 하나에 몰입하면 반드시 해 내는 성격임을 알기에 야구 또한 분명 아이의 집요한 노력으로 희미한 빛이라도 발산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물론 그 이상은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팀의 퇴단과 함께 그동안 게으르게나마 발행해 왔던 연재를 마칩니다. 아이의 야구생활이 끝이 아니기에 새로운 시작과 또 다른 에피소드로 소식을 전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1만 조회수를 달성해 보는 기쁨도 얻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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