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1호의 대나무 숲.
나는 그때 꽤 열심히
병원을 다녔다.
아주 성실한 환자였다.
문제는,
정작 가야 할 병원만 빼고
다녔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다.
잠을 자도 피곤했고,
쉬어도 회복이 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는데
심장이 빨리 뛰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 때가 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부터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조여 오고,
갑자기 눈물이 나고,
아무 이유 없이 무서워졌다.
그때 나는 가장 먼저 내과에 갔다.
“몸이 너무 피곤하고 숨이 차요.”
검사를 했다.
피검사, 심전도, 기본 검사들.
결과는 간단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어요.”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했다.
그래! 역시 몸 문제는 아니었구나.
그럼 단순 피로겠지.
나는 그렇게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엔 이비인후과를 갔다.
혹시 어지럼증 때문일까 싶어서.
그다음은 한의원이었다.
기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그다음은 정형외과였다.
목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그다음은 안과였다.
눈이 너무 침침했다.
나는 꽤 바빴다.
병원 예약을 잡고,
대기하고,
검사하고,
결과를 듣고.
그렇게 병원을 투어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의 나는 꽤 진지했다.
진짜 원인을 찾고 싶었다.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단 하나,
정신과만 제외하고.
어느 병원에서든
마지막엔 같은 말을 들었다.
“큰 이상은 없어요.”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어요.”
“충분히 쉬셔야겠어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결국
내가 가고 싶지 않은 병원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사람은 참 신기하다.
답을 알고 있을 때,
가장 먼 길로 돌아간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계속 돌아다녔다.
계속 검사받았다.
계속 다른 이유를 찾았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병을 찾으러 다닌 것이 아니라,
‘정신과에 가지 않을 이유’를
찾으러 다닌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더 이상 돌아갈 병원이 없어졌다.
이제 남은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검색창을 열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피해 돌아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