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 쉽게 말했을까

알겠는데, 듣고 싶지는 않아

by 공재의방

가끔 옛날 일을 떠올리면 몸이 먼저 움찔할 때가 있다. 전문가랍시고 너무 쉽게 말을 뱉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다.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중요했던 것을 내 기준에 빗대어 별거 아니라 생각되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은 그 사람에게도 당연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로 강요했다. 상대를 위한다는 핑계로 내가 옳음을 밀어붙였던 순간들이었다.




예전에 나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만들어 온 것들은 가능하면 잘 간직해 주라고 말하곤 했다. 집이 조금 어질러지면 어떠냐고, 그 안에 아이의 시간이 들어 있다고 아주 자신 있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나부터도 아이들이 만들어 온 것들을 몰래 정리해서 버리게 되었다. 쌓여 가는 종이들, 부피를 차지하는 만들기 결과물들. 그것들을 보며 어지러운 집안을 견디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견디는 것은 전혀 다른데, 경험해 보지도 않으면서 그들이 아이를 위하지 않는 것처럼 내 잣대를 들이댔던 생각에 민망해졌다.


그 무렵의 나는 아직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발달이론을 들이대며 “엄마는 이렇게 해주는 게 좋다”, “조금만 참으면 다 지나간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당해 주시는 게 당연하지 않나”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필요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알게 됐다. 엄마들이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힘든 거였다. 알지만 눈앞의 어질러짐이 버거운 날이 있고,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 있고, 알지만 나도 사람이라 귀찮고 지치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알고도 못 해내는 자기 자신 때문에 이미 충분히 무거운 마음과 죄책감을 안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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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후배 한 명이 있었다. 에너지가 많지 않았고, 그 친구에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 자체가 이미 꽤 벅차 보이던 시기였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당분간 일을 쉬고 싶다고 말했다.


“갑자기? 근데 지금 쉬면 복귀하기 어렵지 않아? 나이도 그렇고.”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이 너무 무모하게 느껴졌다. 지금 쉬면 리스크가 생길 텐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런 계산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결국 나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 말았다.


다시 돌아봐도 틀린 말만 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백이 길어지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생기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걸 보지 못했다. 그 친구가 오죽하면 쉬겠다고 말했을지, 이미 얼마나 버티고 있었는지, 그 선택을 꺼내기까지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 나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언니는 왜 나를 공감해주지 않아?”


그 친구는 결국 그 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자기에게 맞는 다른 일을 찾아 천천히 삶을 이어갔고, 지금은 결혼해 잘 지내고 있다. 사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뒤늦게 내가 이 친구를 정말 좋아했구나, 그리고 내가 정말 실례를 했구나 깨달았다. 맞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는 것과 그 사람의 상태를 함께 보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고 아주 많이 후회했다.




이런 식의 창피했던 순간은 한두 개가 아니다. 문득 장면들이 떠오르면 산책을 하다가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자려고 누웠다가 불현듯 과거가 떠오르면 이불킥을 하기도 한다. 상대의 상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내 기준으로 대상의 삶을 재보려 했던 순간들, 어줍잖은 지식으로 내가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순간들이 여전히 부끄럽고 민망하다.


사람들은 나만큼 생각이 없어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미 정보가 넘쳐나고, 각자 누구보다 자기 삶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충분히 알아보고 숙고한 끝에 내린 선택일텐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틀린 것처럼 지적하고 제시했던 순간들이 떠올리면 지금도 낯부끄럽다.




맞는 말이라고 해서 다 좋은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나에게 맞는 말이 상대에게도 그대로 맞을까. 그렇게 참견하지 말고 ‘나나 잘하자’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요즘에는 최대한 상대의 말을 먼저 들으려고 나름 애쓴다. 굳이 조언을 청하지 않는 이상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 멈추고, 충고나 첨언 대신 질문을 건넨다. 그 사람이 자기 속도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어쩌면 이것은 뒤늦은 사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줍잖은 충고로 마음을 건드렸을지 모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지금 이런 마음으로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나는 한동안, 그때 하지 못한 공감을 이렇게 천천히 갚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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