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들은 엄마 말만 안 들을까?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엄마의 말들

by 공재의방


“선생님,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나도 맨날 똑같은 말하는데 듣지도 않더니….”


상담실에서 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안에는 억울함과 서운함, 체념, 그리고 ‘이제라도 좀 달라질까’ 하는 작은 기대가 함께 섞여 있다.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한 것도 아니고, 다른 세계의 언어를 쓴 것도 아닌데 왜 엄마의 말은 공기처럼 흩어질까.


이 일은 우리 집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딸은 중3 때부터 지금 고3이 된 지금까지 여드름으로 고생 중이다. 호르몬, 스트레스, 수면 부족, 생활 습관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것이라 짐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잠을 규칙적으로 자야 한다. 화장품은 최소한으로 쓰자. 조금은 기다려 봐야 뭐가 맞고 뭐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 세안을 너무 세게 하지 말고 보습을 유지하자. 초콜릿이나 유제품을 조금 줄여보자. 스트레스가 크면 피부도 같이 반응한다.


그러면 딸은 짜증을 낸다.

“아니, 다 해봤는데도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


몇 년 쌓인 생활 습관이 며칠 신경 쓴다고 달라질 리 없다. 반짝 좋아지면 또 다른 제품을 바꿔보고, 며칠 일찍 자다 다시 새벽까지 깨어 있다. 생리 주기와 겹쳐 더 심하게 뒤집어지는 날이면 집 안 분위기까지 저기압이 되어 나는 말도 못 붙이고 눈치만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요즘 밤마다 쳇찌랑 상담하는데, 잠을 잘 자고 화장품을 자꾸 바꾸지 말라 그러더라.”


그러면서 유제품을 끊어 보겠다고 하고, 잠을 조금 당겨 보겠다고 하고, 화장품을 최소한으로 쓰겠다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아니, 내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던 말이 그 말이잖아.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자주 펼쳐진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피드백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 뭔가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결연해진 표정으로 말한다.


“선생님, 제가 좀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장면을 부모에게 전하면 엄마는 또 억울해진다. 표현 방식이 조금 다를 뿐, 내용은 이미 수십 번도 더 말했고, 싸움의 주제도 바로 그것이었다. 왜 똑같은 말을 했는데 선생님 말은 듣고 내 말은 듣지 않느냐고.


꼭 상담사라 서도 아니다. 친구 말은 귀에 꽂히고, 복싱 관장님 말은 곧이곧대로 따른다. 학원 선생님 말은 새겨듣고, 이제는 하다 하다 AI가 해준 말까지 잘 들으면서 엄마 말만 안 듣는다.


이는 엄마의 정보 신뢰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 차이일 수 있다.


엄마의 말에는 걱정과 사랑과 불안이 함께 있다. 아이를 붙잡고 싶은 마음, 일상에 대한 염려, 내가 바라는 모습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그것이 조언이라기보다 통제로 들리기도 한다. 반면 타인은 생활을 책임지지 않고 선택의 여지를 남긴 채 정보를 건넨다. 그래서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또 한 가지는 발달의 문제다.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 시기는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분리되어 자기 정체성을 세워가야 하는 때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하면서도 스스로 결정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대상, 특히 엄마의 말은 덜 새롭게 들린다. 너무 익숙해서 흘려버리고, 너무 자주 들어 배경음이 된다.


엄마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말이라 여기기 때문에 더 밀어내고 흘려듣는다. 무엇보다 타인의 말에는 거리가 있다. 그 간격 덕분에 같은 내용도 새롭게 들리고, 덜 위협적으로, 조금 더 선택 가능한 조언처럼 느껴진다. 스피커가 다를 뿐인데, 아이는 그 차이를 크게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말이 헛된 것은 아니다. 아이는 당장은 흘려듣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말은 어딘가에 쌓인다. 상담실에서 고개를 끄덕일 때, 그 안에는 이미 집에서 들었던 문장들이 섞여 있다. 다만 너무 가까워서, 너무 자주 말해서, 그 말이 새것처럼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가 상담실에서 변화하는 순간은 선생님과 나눈 몇 마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변화의 밑바탕에는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엄마의 문장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보이지 않는 토양처럼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다른 목소리를 빌려 싹을 틔운다.


엄마의 말은 당장 효과가 없어 보여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흘려듣는 것 같지만, 그 말은 어딘가에 쌓인다.

관계는 그렇게 조금씩 살아진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기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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