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이 사라진 아침이 오기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구조

by 공재의방


내가 풀타임 근무를 시작하면서 중1, 중3 아이들이 지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밥 차려 놓고 나오기 바빴고 아이들을 깨워줄 사람이 없어졌다. 아이들은 결국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고, 미인정 지각이 찍히는 날도 종종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 문제처럼 느껴졌다. 왜 더 일찍 자지 않는지, 왜 알람을 여러 개 맞춰 두고도 듣지를 않는지 묻고 싶었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 괜히 내가 잘못한 사람처럼 초조해졌다. 하지만 곧 알았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집의 리듬이 갑자기 바뀐 문제라는 걸. 늘 깨워주고 재촉해 주던 엄마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렇다고 이제 막 시작한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고,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벌을 주는 방식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지각 면제 마일리지’였다. 매일 아침 등교 시간 10분 전에 학교 앞에서 인증숏을 찍어 보내면, 5일을 채웠을 때 약간의 용돈을 더해주는 방식이었다. 조건은 하나였다. 지각하지 않고, 사진을 보내는 것.


그날부터 매일 아침 톡이 도착했다. 학교 앞 사진, 급하게 흔들린 화면, 거꾸로 찍힌 사진, 사진 한쪽에 걸린 발. “이 발 누구야?” “오늘은 좀 뛰었네?” “사진 왜 이렇게 급해?” 별것 아닌 말들이 오갔다. 농담도 하고, 짧게 안부를 묻고, 아침에 대화가 생겼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말들 끝에는 평소엔 잘하지 않던 문장이 붙었다. “좋은 하루 보내.” “오늘도 파이팅.” “사랑해.” 아침마다 이런 말을 나누는 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각은 거의 사라졌다. 아이들은 돈 때문인지, 소통 때문인지 사진을 꾸준히 보내왔다. 무엇보다 아침이 덜 불안해졌다. 나는 출근길에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었고, 아이들은 스스로 하루를 시작했다.




상담실에 오는 부모들의 고민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것이 지각 문제다.


“선생님 말씀처럼 해봤는데요, 우리 애들은 그런 거 안 돼요. 하나도 안 지켜줘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안 돼요.”


그 부모는 휴대폰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화면 안에는 해야 할 일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지각하지 않기_5,000원, 방 정리하기_2,500원, 설거지 돕기_2,000원, 신발 정리_1,500원. 목록은 꽤 구체적이었다. 문제는 돈이나 보상의 크고 적음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한 번에 건네진 요구의 양이 너무 많아 보였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 행동의 문제예요.”

안 하던 행동 하나를 시작하는 데에도 아이들은 이미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런데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잘하길 바라면, 아무리 강화를 얹어도 몸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만 정해 보세요. 지금은 지각하지 않고 등교하는 것, 그 하나만요. 그게 자리를 잡으면 그것 하나 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해 보세요”




이건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 시작하면 거기서 멈추지 못한다. 하나를 해내면, 잘되지 않는 또 다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두 개를 바라보고, 세 개를 얹는다. 그리고 세 번째가 미흡해지면, 이미 잘하고 있던 두 개까지 싸잡아 “잘하는 게 없다”라고 말해버릴 때도 있다. 아이에게도, 타인에게도,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한다.


하나라도 잘 되길 바란다면 목표 행동은 하나만 정해야 한다. 지금 이 시기에 이 사람이, 이 아이가 딱 하나만 잘하면 되는 것. 그 하나가 단단해지면 그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다. 지켜야 할 더 많은 변화를 바라보면서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변화를 귀하게 보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이 방법이 정답은 아니다.

다만 나는 벌 대신 강화를, 통제 대신 연결을 선택했을 뿐이다.

아이 나이가 커져도 엄마는 늘 처음이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씩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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