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지 않은 금정구

by 아이만 셋

내가 없어도, 남편과 나를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우리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었다.


내가 떠나고 오롯이 아이들 셋만 남아있어도

셋이 함께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고 엄마, 아빠를 떠올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한한 행복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의 존재였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들임을 그들 스스로 깨닫고 살면서 굴곡을 만날 때마다 자신들의 가치를 떠올려 어려움을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고심 끝에 ‘** Family’s History’를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글을 쓴 경험이 없어서 막막했다.

그런데 우연히, 네이버 카페 이웃 소식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신중년 더채움학교에서 진행하는 50+글작가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부터 1:1 피드백,

독립 출판의 전 과정을 학습하여 자신의 책을 제작해 보는 과정이라고 한다.

나는 나의 완성된 책을 이미 받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혹시 신청 인원이 부족해 폐강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입학식을 하고 수업을 들으며

내가 괜한 걱정을 했음을 곧 알게 되었다.


수강생들은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열정이 대단했다.

나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라 1:1 피드백이 아닌 합평을 하는 과정이 망설여지긴 했지만

글작가 신청 목적이 그러니 내가 주제를 바꾸어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합평에서 주옥같은 글들을 보면서 나를 제외한 모든 분은 이미 작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인맥의 폭이 좁다.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 그러니 사고의 폭도 매우 좁다.

글작가 과정에서 다양한 분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들음으로써 편협한 내 생각들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동에서의 수업은 내게 또 다른 의미로 참 좋았다.

남편과 나는 캠퍼스 커플이다.

**동 산 30번지.

**대학교. 우리의 모교.

우리의 찬란한 20대를 보낸 곳,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아련한 곳이다.

수업 후 수강생들과 여기저기 맛집 투어를 하면서 함께 한 식사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식사 후 우리는 사는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온천천 걷기를 하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나는 우리 금정구에 이렇듯 온화한 중년이 많음을 감사히 여긴다.

나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를 허물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걷어내고, 세상 밖으로 나오니 참 좋았다.

동아리가 결성된다면 참여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공기가 좋다.

막내와 남편은 천식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다.

환절기에는 더 심했고, 특히 밤에는 두 사람의 기침 소리에 나까지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두 사람 모두에게서 천식이 사라졌다.

환경의 중요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은 아이들 표현대로 뷰 맛집이다.

소파에 앉으면 멀리 금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금정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라오는 언덕길이 힘들긴 하지만,

봄에는 길가에 튤립도 있고, 철쭉도 있고, 온갖 꽃들이 예쁘다.

부드러운 봄바람을 타고 오는 꽃내음도 정말 향기롭다. 새들의 노랫소리로 아침을 맞는다.

여름에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까지 보태어지면 체감 온도는 1도 더 낮아진다.

녹음으로 터널을 이루는 언덕길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모두 ‘금정구에 이런 곳도 있었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 언덕길 막다른 곳에 우리 집이 있다.


가을에는 황금빛 은행잎이 온 동네를 뒤덮는다.

새벽에 뒷산의 고라니가 내려올 때도 있고,

뒤 베란다 문을 열면 가끔 청설모와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이 좋은 곳을 두고,

나는 서울로 이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금정구를 떠나지 않는 걸로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익숙한 곳에 남기로 했다.

따뜻함이 있는 금정구에서 좋은 이웃들과 신중년을 보내고, 또 노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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