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워 보이던 하루, 그 안에 담긴 이야기
햇살 좋은 평일 낮,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 얼마나 여유로울까?’
물론 그들이 정말 전업주부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땐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도 언젠가, 그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
인터넷에서 전업주부의 고충을 담은 글을 본 적도 있다
솔직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청소기 좀 돌리고, 빨래하고
적당히 요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엄살처럼 보이기도 했고
나도 시간만 충분히 있으면
유튜브 속 부지런한 주부들처럼
완벽히 집안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막상 그 입장이 되어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다.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방 조리대는
금세 끈적거렸고
청소기를 돌리자마자 바닥엔 머리카락이 보였다.
재활용 쓰레기는 순식간에 쌓였고,
화장실은 어쩜 그렇게 금방 다시 지저분해지는지..
어느 순간 청소기 필터까지 분해해
세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괜히 시작한 거 아냐?'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집안일은 묘하게, 하나만 하기가 어렵다.
방 하나를 치우다 보면 다른 방이 눈에 밟히고
빨래를 개다 보면 어느새 옷장 정리까지 하게 된다.
하나의 일은 또 다른 일을 데려오고
그렇게 계속해서 집안일은 늘어만 간다.
물론 이 모든 일을 매일 하진 않는다.
사실, 매일 할 수도 없다.
흐린 눈으로 슬쩍 넘겨버리는 날도 부지기수다.
게다가 무엇보다 빠지지 않는
‘오늘은 또 뭘 먹지?’의 고민
냉장고 속 재료를 먼저 써보려 애쓰고
한 달 식비 예산을 지키며 요리를 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요리라는 게 늘 새로울 순 없고
어느 순간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유튜브 레시피를 뒤적이기도 한다.
예전엔 엄마가 “오늘 또 뭐 해 먹지...”라며
한숨을 쉬던 말이
왜 그렇게 큰 고민일까 싶었는데
이제야 그 말의 무게가 조금씩 실감이 난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뒷정리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하루는 저물고
빨래까지 다 개고 나면
비로소 나만 아는 조용한 마침표를 찍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겨우 성인 둘이 사는 2인 가구인데도 이 정도인데
아이까지 돌봐야 한다면
그 수고는 얼마나 클까?
요즘은 그게 새삼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회사에 다닐 땐
집은 그저 다음 날을 준비하기 위한 ‘숙소’ 같았다.
퇴근 후엔 에너지도, 시간도 없었고
집안일은 늘 주말의 몫이었다.
그마저도 미루기 일쑤였지만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반복되는 단순한 일들 속에서
‘내가 사는 공간을 돌보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조금 귀찮더라도
내 손이 닿은 자리에 정돈이 생기고
냉장고 속 재료들로 만든 요리가
따뜻한 한 끼로 식탁에 오를 때면
작은 성취감이 찾아온다.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이 아닌
내가 고르고 만든 음식 앞에 앉는 순간
식사 시간이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분주한 시간들 속에서
가끔은 잠깐 멈춰 서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청소기 전원을 끄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키며
정리된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둔다.
스피커 속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집 안을 가득 채우면
조금 전까지 분주했던 마음도
잠깐이나마 숨을 고른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오늘의 나를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
그러다 시선을 돌려 집 안을 둘러본다.
조금 전까지 어질러졌던 공간이
어느새 단정해진 걸 보며
마음까지 정돈되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말할지 몰라도
그 순간의 나는 분명히 느낀다.
오늘 하루도 참 잘 살아내고 있다고
내 생각과는 달랐던 결코 쉽지만은 않은
또 다른 삶의 모습이
어느새 내 하루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누구의 하루든, 결코 쉬운 건 없다고.
그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소소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게 요즘, 내가 집안일을 대하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