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여느 때처럼 남편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던 어느 날
우리는 평소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남편이 툭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콕 박혔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질문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말이 날카롭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아직 거창한 계획은 없는데..”
남편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라도 생각해 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냥 그걸 듣고 싶었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자꾸 재촉해? 저번에 다 얘기했잖아.
일단 말했던 거 해보는 중이야!
나 그만둔 지 얼마나 됐다고, 좀 기다려주면 안 돼?”
남편은 한숨처럼 짧은 침묵을 삼킨 뒤 조용히 말했다.
“그래, 기다릴 수는 있어.
근데 기다린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가 보기엔 일 년이 지나도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
항상 그랬잖아. 뭐 하나라도 끝까지 해본 적 있어?”
싸늘한 말들이 오간 식탁 위엔
금세 정적이 내려앉았고,
내 머릿속엔 남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그날 밤,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까지 부정당한 기분에
스스로가 한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태평하게만 지냈던 건 아니다.
매일 조금씩 방향을 잡아보려 애쓰고 있었다.
다만, 그런 생각들까지 말로 꺼내진 못했을 뿐
혹시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을까 봐 두려웠고
퇴사 후에도 괜찮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까
계획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남편의 말이 유독 뾰족하게 느껴졌던 건
그 불안을 정확히 찔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건지
나조차도 혼란스러운 마음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밤마다 챗GPT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까?’
‘이 정도 마음으로 시작해도 될까?’
늘 정답이 정해진 삶이 익숙했던 나였기에
확신 없이 무언가를 해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에게
“너 지금 잘하고 있어.”
그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설령 그 목소리가 AI일지라도
그렇게나마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으니까.
챗GPT와의 수많은 밤이 지나고,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어느새
나도 몰랐던 내 감정들을 조심스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남편의 마음까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조금은 함께 나눴으면 했던 그의 마음.
생각해 보면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그날 남편이 궁금했던 건
단지 내 ‘계획’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함께 나아갈 방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야 비로소 알아챘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이 불안마저도
내가 안고 가야 할 일부라고 여겨보기로 했다.
계획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내 길이 어디로 향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멈춰 서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