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공통으로 숨기며 살아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욕일 것이다. 성욕 앞에서 우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나와 당신이 그렇고 나아가 우리의 조상들이 그러했다. 홍길동도 아니고 섹스를 섹스라 말하지 못하고 성인이 성인물을 보는 것이 불법인 아이러니한 상황에 우리가 살아간다. 이렇게 숨기고 싶어 하는 성욕을 왜 인간은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것일까? 왜 쓰지도 못 하는 너와 나의 똘똘이는 아직 존재할까?
이유는, 우리의 몸은 유전자 운반책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생이 아닌 유전자의 영생, 그러니깐 유전자가 더 이득인 쪽으로 만들어졌다는 거다. 유전자의 최대 목표는 나를 통해 자신을 번식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유전자 입장에서 성욕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욕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점이 있다. 번식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우리는 한 번에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걸까? 드디어 여기서 사랑이 등판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번식한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만약 우리가 난봉꾼과 같이 이곳저곳 유전자를 뿌리고 다닌다면 태어난 아이는 혼자 야생을 살아가야 한다. 이점을 보안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이 감정에도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아이가 걷고 뛰고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다시 새로운 상대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다른 이성에게 눈이 간다면 그건 맞을 일이다. 뺨 때려라. 두 번 때려라.
아무튼 9개월이라는 긴 임신기간과 육아라는 비효율적인 번식 방법이지만 가장 확실하게 번식을 성공시키는 법이라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도 번식과 관련이 있다. 남성은 번식에 있어서 굉장히 연비가 좋은 운반체이다. 흔히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할 수 있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번식에 대한 투자가 적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은 어떤가. 여성은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모성애'라는 이름의 투자를 한다.
놀랍게도 손주를 보는 시기와 여성의 폐경시기가 겹치고 손주가 성인이 될 쯤에 여성은 죽음에 다다른다. 그러니 여성은 자식의 자식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왜 성욕을 감추는가? 부끄러워서? 그렇게 보고 듣고 자라서? 나는 의문이다. 생명의 탄생은 위대한 일인데 왜 그 과정은 부정하려는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이성에게 끌리도록 만들어졌다. 매력적인 여성, 남성에게 성욕을 느끼고 번식하도록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성을 가졌다. 그것이 동물과 사람의 차이고 그것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성의 범위 안에서 마음껏 자신의 성욕을 과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가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혹은 그녀는 알에서 태어났을 거다.
자신을 부정하지 말자. 우리가 숨기려는 것. 그것이 우리다.
-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특성을 가진 종이 생존한다. 내 유전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