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by 문옥미

“며느리가 내 통장을 뺏어갔어요”

서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한 맺힌 할머니의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울컥한 마음이 금방 그렁한 눈물을 맺히게 했다. 화가 올라왔다.


일 년에 한두 번 책방에 오시는 할머니는 자신을 모시고 오는 복지사님을 연신 칭찬한다. 지나치게 하는 칭찬은 다음에도 꼭 데리고 와 달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며느리에게 책방을 소개하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가 면박을 당했다고 몇 번을 이야기한다. 88세의 할머니는 이곳이 특별하다.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다 젊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곳. 문화누리 카드를 써야 한다는 명분으로 곱게 치장하시고 복지사님을 따라나섰다.

숱도 없고 얇디얇은 흰 머리카락, 파마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유난히 곱슬거린다. 뽀얗게 분을 발라서인지 입술이 더 붉게 보인다. 입술 색처럼 볼도 발그레하니 상기된 얼굴로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봇물 터지듯 한 번 이야기가 나오니 쉴 새 없이 그동안의 고단함과 서러움을 풀어놓는다.

“내가 교회에 십일조를 20만 원을 냈는데 며느리가 알게 됐어요. 며느리는 노인이 무슨 돈이 있어서 헌금을 20만원이나 내냐며 화를 냈지요. 그리곤 교회로 찾아가 결국 5만 원만 남겨놓고 15만 원을 내게 가져왔어요. 그 돈을 주면서 돈이 있으면 교회에 또 헌금을 이렇게 할 테니 통장을 가져가겠다고 하더군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에요? 옛날 같으면 며느리가 시어머니 통장을 어떻게 뺏어갔겠어요”


할머니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진다. 책방에 한 번 가자고 건넨 말에 복지사님과 가라며 단칼에 거절하는 며느리가 못내 서운하다. 서운하기만 할까? 거기에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할머니 자존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까지 가서 기어코 헌금을 돌려받아 왔고, 통장까지 뺏어 갔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생도 서러운데 이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경제권까지 빼앗겼다. 무슨 낙이 있을 것이며 자꾸 빠져나가는 힘은 무력하기가 그지없다. 늙은이 자존심 따위는 상관없다.


요즘 온 우주가 나에게 늙음의 서러움에 대해 속삭여 주는 듯,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사연으로, 상황으로 부대끼게 한다.


아버지 91세, 어머니 97세에 돌아가셨다. 명이 긴 집안이다. 내 명도 길까 봐 두렵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까지 자신을 깨끗하게 돌보며 자기 관리를 잘 하신 분이다. 반면 어머니는 27년을 누워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점점 쇠퇴하는 기억으로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존엄을 상실해 가는 삶이 너무 처절하다. 이런 노년을 누가 기대하겠는가.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우린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그게 자연의 이치이고 창조의 원리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퇴화하고 그러다 죽음의 길로 가는…

전희식 작가의 똥꽃을 펼치고 첫머리부터 구역질이 났다. 작가가 어머니를 모셔야겠다고 결심한 하얗게 세 버린 어머니의 음모 이야기에 몇 해 전에 허리 디스크로 꼼짝 못 하고 2주를 누워서 생활했던 악몽 같은 시간과 친정 엄마의 기저귀를 수없이 갈았던 때가 떠올랐다. 대화도 가능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던 때 대소변을 치우면 엄마는 어정쩡하던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점점 자신을 잃어가면서는 아무 표정도,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은 예민함이 극치에 달했고, 감정은 푹풍속을 걷는 것 같았다. 엄마의 자리에 나를 투영했듯이, 작가의 어머니 자리에도 난 함께 하고 있다. 책방을 찾아 그렁그렁한 서러움을 비추는 할머니 자리에도 난 여전히 머문다.

잘 늙기를, 잘 죽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나의 숙제이고 숙원이다.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인생이 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간절히....


“늙음은 서서히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점점 무력해지고, 의존적이 된다. 결국 누구나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화열 [고요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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