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내가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다. 방법이 나를 찾아온다.
카페에 들어온 3분은 모두 아메리카노를 주문을 했다. 계산을 하려는 분에게 지혁은 오늘은 휴무일이고, 마침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커피를 서비스로 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감사해요.”
나온 3잔의 커피를 테이블에 놓아 드리자 한 분이 감사를 표했다.
“이 카페를 꼭 한 번 와봐야지. 와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와보네요. 오픈한지 얼마 안되셨잖아요.”
“네. 맞아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번 주에 공사도 또 하시더라고요.”
“네. 책장을 들여놓는 공사를 했어요.”
“이렇게 책장을 놓으니까 북카페 같아요.”
“네. 북카페처럼 해보면 어떨까 해요. 독서모임도 한 번 해보려고요.”
“독서모임이요?”
“네. 전에 서울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가본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우리 동네에서도 한 번 해보면 좋을꺼 같아서요. 그 생각을 아까부터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손님들께서 딱 들어오신거죠.”
“와~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걸어오면서 책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아~ 진짜요? 그럼 독서모임 열면 같이 해보실래요?”
지혁의 물음에 카페에 놀러온 3분의 여자분들은 긍정적인 눈빛을 교환했다.
“어떤 요일에 몇 시에 할껀데요?”
한 분이 커피를 마시면서 물었다.
“제가 전에 갔던 곳은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했어요.”
“토요일 아침 7시요?”
“네. 그 시간에 하면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다 올 수 있더라고요. 제가 처음 그 모임을 봤을 때는 충격이었어요. 그 전까지 저에게 있어서 토요일 아침 7시는 살아있는 시간이 아니었거든요. 금요일날 밤을 새서 토요일이 된 적은 있어도 특별히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저도 그런 것 같네요. 그리고 생각해보면 특별히 그 시간 때에 할 일도 없는거 같고요.”
“그렇죠. 그래서 그 모임도 토요일 아침 7시에 하고 있나봐요. 저희 카페에서도 이번 주부터 한 번 해보려고요. 어떻게 함께 할 사람을 모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3분이 들어오신거에요.”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럼 함께 해주시는건가요?”
지혁의 말에 3명의 고객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문이 트인 후 지혁과 3명의 고객은 2시간 정도 책 이야기를 했다. 3명의 고객님들은 지혁이네 카페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었다. 성당에 함께 다니는 20년 지기 친구들이라고 한다.
카페를 나서면서 그 중 한 명이 지혁에게 자기가 저번 주에 산 책인데 자기는 다 읽어서 선물로 주겠다는 말을 하면서 책 한 권을 건내주었다. 톨스토이의 단편선을 모아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었다.
지혁은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었다. 아까 고객님이 준 책이 생각나서 가방에서 책을 가지고 와서 펼쳤다. 톨스토이의 단편선들은 아주 옛날에 읽은 기억이 있었는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첫 장을 펼치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글이 시작되었다. 세몬이라는 가난한 구두장이 이야기였다. 가난한 구두장이는 겨울이 되어서 외투 한 벌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마을 농부들에게 받아야 될 돈이 있었던 그는 농부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돈을 받지 못했다. 겨우 술 한 잔 가격만큼만 받을 수 있었다. 속이 상한 그는 술을 한 잔 걸치고 집으로 걸어오던 중 벌거벗은 한 사내를 보게 된다. 측은한 마음에 그 사내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의 이 사내는 알고 보니 천사였다. 그 사내 덕에 세몬은 돈을 벌게 된다. 이야기 속의 사내는 미하일이라는 천사였다. 이 천사는 신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날개를 잃고 이 세상에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신은 미하일에게 이 땅에서 3가지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 다시 하늘로 올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의 끝에서 미하일은 그 3가지 진리를 깨닫게 된다.
분명히 전에 본 글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나서 다시 보니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지혁은 그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라는 작품이 있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라는 이야기에도 마찬가지로 구두장인이 나왔다.
‘톨스토이는 구두장인을 좋아하는구나.’
지혁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이번 이야기의 구두장인 이야기는 마르틴이라는 사람이었다. 마르틴은 지하에 있는 좁은 작업실에서 살았다. 이 지하 작업실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그 창으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만 보였다. 마르틴은 평생을 그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지나가는 신발만 보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르틴은 슬픔이 많은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아내는 3살 된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아이가 자라자 아이도 그만 병에 들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르틴은 늘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런 마르틴을 보고 한 성지순례를 다녀온 노인이 조언을 해주었다. 노인에 말에 따라 마르틴은 ‘신약성서’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휴일에만 읽을 생각이었지만 읽을수록 마음이 편해져서 마르틴은 시간이 날 때마다 신약성서를 읽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르틴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틴!”
“누구신가요?”
잠을 청하던 마르틴은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 마르틴에게 또다시 또렷이 그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틴, 마르틴! 내일 거리를 내다보아라. 내가 갈 것이다.”
마르틴은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눈을 비볐다. 다음 날 마르틴은 자신의 가게 오실 그리스도를 위해 양배추 수프와 죽을 준비했다. 아침부터 기대하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마르틴은 3명의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게 된다. 늙은 군인인 스테파니치, 갓난 아이를 앉고 추위에 떨고 있던 여인, 할머니와 사과를 훔친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마르틴은 다시 자리에 누었다. 어젯밤 그 음성은 꿈이었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마르틴은 뒤를 돌아보았다. 컴컴한 구석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마르틴, 마르틴. 나를 알아보지 못했느냐?”
“누구신가요?”
마르틴의 질문에 그 목소리는 어두운 구석에서 나왔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늙은 군인인 스테파니치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갓난 아이를 앉고 추위에 떨고 있던 여인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할머니와 사과를 훔친 아이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르틴 마음은 기쁨으로 넘쳐났다. 그는 성호를 긋고 성경을 펼쳤다. 그 장의 첫 머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그리고 맨 아래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마태복음> 25장 40절
지혁은 글을 읽다가 온 몬에 전율이 돋는 것을 경험했다. 카페에 방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하는 순간이었다. 저번 달에 읽은 카비르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손님은 그냥 손님이 아니었다. 그들은 천사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들부터 지금의 깨달음까지 모두 지혁이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지혁을 찾아온 것이었다. 지혁은 강쌤이 말한 것들을 하나씩 체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