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다시 시작

by 이태태

"다시 운동 시작하려고." 그해 봄, 따뜻한 봄햇살이 창가로 들어오던 날 아내에게 한 말이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자 생활도 익숙한 과거를 원하고 있었고, 햇살이 점차 따스해지자 달리기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퍼져나왔다. 살살 달리면 귀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기 암시를 하며,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봄 소식을 뉴스에서 듣던 어느 날 저녁에 다시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두 가지 다짐과 함께 말이다.


- 절대 무리하지 말자

- 밖에서 뛰지 말고 아파트 단지 안의 산책길을 왔다갔다 하면서 뛰어보자


혹시라도 몸에 갑작스런 이상이 생길 수 있음을 생각한 결론이었다. 인적이 드문 양재천에서 귀로 인한 어지럼증이 갑자기 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달리기 장소도 양재천에서 아파트 단지 안쪽으로 바꾼 것이다.


늦은 3월 그 날의 저녁은 긴팔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괜찮을 정도로 운동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말로 오래간만에 나이키앱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얼마의 거리를 뛰어야겠다는 목표는 없었지만, 대략 3키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라는 앱 속의 음성과 함께 다시 발을 내딛었다. 몇 달 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였지만, 기억 저편의 직전 달리기가 언제였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고, 내가 이전에 달리기를 했다는 것조차도 아련한 과거의 일로 느껴졌었다.


일단은 우리 집 앞에 있는 놀이터 주위를 한 바퀴 돌 예정이었다.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들, 산책나오신 어르신들 주위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예전의 감각이 살아났다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쌓아놓은 경험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고 운동을 마지막으로 한 것도 한 참은 지났기에, 조금만 뛰어도 역시나 숨이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유산소 운동을 1~2주일만 쉬어도 그 동안에 쌓아온 심폐능력이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은 좋았다. 귓가를 스쳐가는 살랑거리는 바람소리, 고요한 가운데 느껴지는 내 심장박동과 숨소리, 어느 순간 뺨으로 또르르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이 예전의 느낌을 되살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달리기는 현실이었다. 오늘이 달리기를 하는 첫날인 것 마냥 몸이 곧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1.5키로를 달린 끝에 당초 생각했던 반환점에 겨우 도착을 했다. 왔던 것만큼을 더 달려서 돌아가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다. 헐떡거리는 나의 심장은, 오늘은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첫 날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심지어 한 번도 안 쉬고 여기까지 왔잖아, 여기 바로 앞이 우리 집인데 그냥 들어가자라는 유혹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지금까지의 나와는 달리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몸을 돌려서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날개를 달아주었던 것 같은 아파트 내의 내리막이 돌아갈 때는 오르막으로 변해서 웅장히 버티고 있었다. 길이가 오십미터 정도로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닌데, 그래도 예전에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올라가면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하나둘 하나둘을 속으로 외치며 한걸음씩 달려보았다. 심장은 더 빨리 쿵쾅댔고, 걸음은 조금씩 느려졌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정상에 도착을 했다. 다행히도 이제 집까지의 나머지 길은 평탄했다.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다시 발을 굴려보았다. 숨은 계속해서 빨리 쉬어졌고, 다리는 무거워져 갔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사실상 달리기를 오늘 처음으로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라서, 오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달리기도 쉽지 않으리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얼마간을 달린 뒤에 다시 우리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25분 동안 3.7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5km 달리기 성공>


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을 처음 성공한 날은 더위가 한풀 꺾인 그해 8월의 어느 밤이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3월 이후 얼마 동안은 열심히 연습을 했던 것 같다. 1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꼬박꼬박 달리기를 한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4km까지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고, 4km에 걸리는 시간도 조금씩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날씨가 더워질수록 운동을 하지 않을 핑계거리는 역시나 늘어만 갔고, 급기야 6월에는 한 달에(한 주가 아니다) 두 번 달리기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TV보고 야식 먹던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수십년 동안 내 몸 안에 저장되어 있던 야밤의 생활은 아주 잠시나만 바른 생활로 이탈을 했었고, 부메랑 마냥 원래의 생활로 손쉽게 돌아왔다.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없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몇 배는 중요하다. ‘앞서가는 방법의 비밀은 시작하는 것이다’라는 어느 책에서 보았던 마크 트웨인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7월의 아주 더웠던 어느 날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이제 물러날 곳은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열대야의 습도 높은 그 날 밤에 이번에 물러나면 이제 달리기는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그 날은 4km 논스톱 달리기를 했다. 이 날 이후 1주일에 대략 세 번씩은 달렸다. 두 번만 달리는 것은 습관이 되기에는 부족했고, 달라진 생활이 되려면 세 번 정도는 해야겠다는 판단때문이었다.


4km 달리기가 익숙해지니 드디어 5km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날씨가 조금만 시원해지고,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날이 되면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고, 코스도 미리 머리 속에 생각을 해두었다. 8월 말의 늦여름에 그 날이 왔다.


4km까지의 달리기는 지금까지의 달리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늘 뛰던 거리라서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4km를 지났다는 앱 속 음성이 나오자 약간 긴장이 되었다. 오늘 말고 좀 더 선선한 가을날에 할 걸 하는 일말의 후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좀 더 달리자 이미 4km 동안 많은 힘을 썼기에 점점 지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호흡은 빨라지고 보폭은 좁아져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심장은 점점 빨리 뛰었고, 이러다 심장이 터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잠시나마 했었다. 비록 1km의 차이였지만, 비율로 따지면 25%를 더 뛰어야 하는 것이니 그럴만했다. 1km가 이렇게나 긴 거리인지는 이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그러던 중 저 앞에 목적지로 삼은 아파트 우리 동 입구가 보였다. 조금 더 달려 나이키앱의 운동 종료 버튼을 누르니 '5.03km, 소요시간 29분 59초, 평균 페이스 5분 57초'라는 음성이 나왔다. 드디어 내 인생 처음으로 5km 논스톱 달리기를 마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날로부터 2년 2개월이 걸렸다. 보통 8주 연습하면 5km를 뛸 수 있다고 한다. 운동을 안 좋아하고, 거기에 의지력도 약한 나에게는 몇 배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누군가가 쉽게 뛰는 5km의 거리가 나에게는 마라톤 풀코스처럼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런 5km를 완주한 나에게 그 동안 수고했다는 축하 겸 위로의 말을 속으로 건넸다. 살다보니 내가 운동으로 뿌듯해하는 날이 있구나!


<언덕 달리기도 해볼까?>


5km를 한 번에 뛸 수 있는 정도가 되니 다시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어디에선가, 언덕 달리기를 하면 평지 달리기가 쉬워진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내가 정보를 접하는 곳은 대부분 유튜브이니 어느 운동 유튜브에서였을거다). 그러자 우리 아파트 뒷편에 있는 야트막하게 이어지는 언덕이 생각났다. 언덕의 끝에는 동네 도서관이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용한 곳이라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종종 가기도 했던 곳이다. 도서관까지 나 있는 500~600미터 쯤 되는 경사로는 자전거 1단, 2단 기어를 해야만 쉬지 않고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던 곳이라 뛰어서 갈 수 있을지는 약간 미심쩍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도서관까지 가는 길을 뛰어다니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면서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평소와 같이 집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이 시작되는 입구에 이르렀다. 언덕의 초반 100미터 정도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경사로인데, 자전거로 갈 때도 충분히 속도를 붙여 놓지 않으면, 중간 쯤부터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가야 할 정도의 급경사인 곳이다. 다행히 여기만 넘어서면 대부분은 완만한 언덕이고, 마지막 부근 200~300미터 정도에서 중간 정도의 경사면을 지나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마음을 다스렸다.


시작은 좋았다. 초반에는 언제나 체력이 넘치기에 1구간인 급경사는 무사히 넘어갔고, 드디어 2구간인 완경사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그럭저럭 따라 가는가 싶었는데 심장의 쿵쾅대는 소리, 가빠지는 호흡 소리에 발걸음은 역시나 느려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과 뛰어서 가는 것은 많이 달랐다. 힘은 들었지만 기어를 낮춰서 페달을 밟으면 그래도 할 만은 했다는 것이 자전거를 탈 때의 생각이었다면, 기계의 도움 없이 온전히 맨 몸으로 뛰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경험이었다. 평지를 뛰는 것과 약간이라도 경사가 있는 곳을 달리는 것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마침 앞쪽에는 산책을 하는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내 숨소리가 너무 거칠었는지 이들이 뒤돌아보며 무슨 일이 있나 확인하기까지 해서 민망함이 더해지기도 했다. 이들을 여유 있게 추월하며 실례합니다를 외치면서 언덕을 힘차게 뛰는 러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이 가족이 본 것은 본인들보다 아주 약간 빠른 속도로 헉헉대며 뛰어 가는 지친 러너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3구간의 중간 정도 경사에 접어들었다. 1, 2구간은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를 따라 뛰는 것이었다면,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다니는 동네의 메인로드 격인 곳이었다. 시작 지점에서 보면 마지막 정상 지점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정상까지만 가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 동시에, 길이가 꽤 되어서 뛰어도 뛰어도 도착점이 잡히지가 않는 절망감을 동시에 주는 구간이기도 하다. 언덕이라는 것을 처음 달린 내 몸은 많이 지쳤고, 이 구간의 공략법으로는 속도를 더욱 늦추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인도 옆으로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마을버스가 지나갔는데,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는 것 같았다(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만, 그 날따라 뛰어다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기에 혼자만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정상을 찍어야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1950m 한라산 백록담 등정을 위한 1600m 지점이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한걸음 한걸음 발자국을 떼어보았다. 전체적으로 중간경사라고는 하지만, 100m 정도는 중간 이상, 그 뒤로는 중간 이하의 경사인 곳이라 초반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달렸다. 다행히 생각은 맞아 떨어졌고, 어찌어찌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어떻게 올라왔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억에 나는 것은, 정상 바로 옆 도서관에서 물 한 모금을 먹고 있을 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비를 맞고 온 사람인양 땀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 생각날 뿐이었다.


돌아오는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은 순조로웠다. 가빠진 호흡을 돌려 놓기에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올라갔을 때 손해봤던 시간을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에 성큼성큼 빠르게 뛰어내려왔다. 그러자 어느덧 출발한 곳에 도착을 했다. 출발점에 다시 도착해서는 내가 뛰어온 길을 한 번 돌아보았다. 왕복 1.5km쯤 되는 언덕을 난생 처음 뛰어 보니, 몬주익 언덕을 오르는 황영조 선수가 된 것 마냥 느껴졌다. 한참 뒤에 있었던 파리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리 동네 언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언덕을 엄청난 속도로 뛰어가던 선수들을 보면서 이 때 생각이 잠시나마 났는데, 뭐랄까 그 날의 내 기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언덕달리기를 포함한 5km 달리기를 마쳤다. 그 후로 몇 번의 언덕달리기를 하다 보니, 두 달 정도 뒤에는 언덕을 세 바퀴 돌아서 총 6km를 달릴 수 있게 되었으니, 한 단계 발전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물론 언덕을 편히, 그것도 쉬지 않고 달린다는 것은 아니고, 헉헉 거리면서 달리고, 중간에서 도서관에 들려 물을 먹는 때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3바퀴를 달린다는 말이니 오해는 없으시기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붙은 ‘과천마라톤 참가모집’이라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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