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첫 5km 달리기 대회

by 이태태

"과천마라톤 참가신청, 5km/10km/하프마라톤 모집 중"


음. 마라톤 대회라는 것이 있구나, 나는 6km를 뛰는 러너이니 5km 정도는 가뿐하지. 10km나 하프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5km는 뭐 그냥 쉽게 뛰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며 5km 대회에 접수를 했다. 마라톤 대회라는 것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것이기에 대회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도 제대로 몰랐는데, 장소가 가깝다는 이유로 신청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신청 후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덧 대회날이 되었다.


출발지는 동네의 체육공원인데, 이곳은 축구장을 가운데에 두고, 그 가장자리를 육상 트랙이 감싸고 있는, 시군마다 하나 씩은 있는 흔히 보는 형식의 작은 종합운동장이다. 아이들과 축구 연습을 한다고 몇 번 가봤던 곳이어서 나에게는 익숙한 장소이기도 했다. 대회 1주일 전에는 집으로 소포가 배달되었는데, 참가 기념품인 반팔 티셔츠가 들어 있었다. 물론 참가비에 포함이 되었겠지만, 왠지 선물을 받는 느낌이어 대회날이 기다려졌다. 늘 입던 색이 바랜 반팔 티셔츠 대신 대회날인 오늘은 상큼한 형광색의 대회 티셔츠를 입고 대회장으로 출발했다. 출발지는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데, 가는 도중에 같은 티셔츠를 입고 가는 동네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마치 축제에 가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도착한 체육공원에 펼쳐진 풍경은 평소에 내가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크지 않은 운동장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여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사람수도 그렇지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멋지게 차려 입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었다.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신발, 내가 입고 있는 대회 선물인 티셔츠가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이 그려진 과감한 색깔의 티셔츠, 그리고 멋진 썬글라스 등을 장착한, 내가 평소에 동네에서는 못보던 사람들이 대거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편의상 이들을 '러닝고수'라고 부르겠다). 심지어 러닝고수들은 반팔 티셔츠 대신 런닝셔츠같이 생긴 소매 없는 옷을 많이 입고 있었고(나중에 알고 보니 전문용어로 싱글렛이라고 불리는 것이었고, 땀배출을 쉽게 하고, 팔치기할 때 소매가 걸리적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는다고 했다), OO CREW, XX 마라톤 클럽과 같이 무슨 단체의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무릎과 다리에는 테이프 같이 생긴 것을 길게 붙인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충격 흡수, 관절과 근육 보호를 위해 테이핑이라는 것을 한 것임은 또한 나중에 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러닝고수와 나를 다르게 보이게 한 것은 바로 내가 허리에 차고 있는 러닝벨트였다. 러닝고수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 러닝벨트를 하고 있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고, 반대로 러닝벨트를 하고 있는 사람은 예외없이 나처럼 대회 공식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나 같은 초보는 러닝시계가 없으니 시간 측정을 위해 핸드폰을 넣을 러닝벨트가 필요했고, 고수들은 러닝시계가 당연히 있기에 러닝벨트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달리기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같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맞는데, 그들과 나는 뭔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달리기에도 고수의 세계와 초보의 세계가 있고, 최장거리 6km를 뛰는 나는 복장 상으로는 엄연히 런초보에 속해 있었던 것이었다. 이전에 잠시 탔던 자전거만 하더라도, 자전거와 옷 브랜드만 봐도 자전거라는 운동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는데, 러닝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긴, 많은 취미 중에 장비빨 타지 않는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광고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어서 러닝고수들이 뭘 하는지를 관찰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 접하는 낯선 광경들이 신기하기도 했고, 출발까지는 시간도 많이 남아서 뭔가 시간을 때울 거리를 찾고 있던 차에 잘 된 일이었다. 놀랍게도 고수들은 몸풀기 운동을 하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을 쏟는 것이었다. 나는 발목 몇 번 돌리고 무릎 돌기기 좀 하고 나서 바로 뛰기 시작하는데, 고수들은 유튜브에서 봤던 동적 스트레칭도 자연스럽게 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에 나도 따라해야겠다는 생각에 고수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도 잘 살펴보면서 눈에 익혀 놓기로 했다. 내가 처음 보는 동작으로 몸을 푸는 것은 기본이었고, 스트레칭을 마치고서는 가볍게 육상 트랙을 뛰는 고수들도 많았다. 이제 실컷 뛸텐데 이들은 벌써부터 힘들게 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는 생각이 들었다(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미리 뛰어서 몸을 살짝 데워 놓는 웜업운동은 나도 한참 뒤부터는 꼭 하는 준비운동이 되었다).


출발은 하프마라톤, 10km, 5km 순서였다. 5km 참가자의 숫자가 가장 많았지만, 하프나 10km 참가자도 만만치 않은 인원이었다. 10km를 뛰다니. 우리집에서 10km 거리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지나서 강남구에서 송파구로 가는 어디쯤일텐데, 그 먼 거리를 뛰어 가다니. 심지어 하프 마라톤이라고 하면 이렇게 먼 10km거리를 왕복하는 말도 안 되게 먼 거리를 뛰는 것이 아닌가. 아직 6km밖에 못 뛰는 나에게 하프 주자들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비현실적인 일을 하는 별종의 사람들로 느껴졌다.


다행히 5km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하게 초보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끼리 온 사람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심지어 애기를 유모차에 태워온 사람까지 있어서, 대회라기보다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안심하고 있는 와중에 출발을 알리는 땅 소리와 함께 5km 대회가 시작을 했다. 어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빨리 뛰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 뛰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나를 앞지르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났다. 건장한 젊은 러너라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키가 150cm도 안 되어 보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듯한 여자아이가 나를 앞질렀고, 백발의 할아버지 러너도 나를 지나쳤갔다. 비상이다. 평소보다 발걸음을 빨리 하는 수밖에 없었다. 1km 지점을 지날 때 구간 평균 속력이 5분 10초라는 음성이 나왔다. 나도 처음 보는 말도 안 되게 빠른 스피드였다. 그러나 역시 이 정도의 속도를 계속해서 낼 수는 없었고, 속도는 금새 떨어지지 시작했다. 마침 그 때쯤 저 앞에서 급수대가 나타났다. TV 중계 속 마라톤 대회에서나 보았던 물컵이 잔뜩 쌓여 있는 테이블이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물을 한 잔 들이켰다. 물컵 옆에 놓여 있는 바나나를 사람들이 먹길래 나도 하나 먹었다. 달리다 물도 먹고 바나나도 먹으니 러너가 다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나나를 하나 더 먹으려다가, 배가 부른 것 같기도 해서 출발하기로 했다. 아직 갈 길이 절반은 남아 있기에 힘을 내야 된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매번 저녁 시간에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을 뛰어 다니다가,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과 같이 달리니 없던 힘도 나는 것 같았다. 단체로 나온 중고등학생들, 온 가족이 모두 나온 듯한 사람들, 그리고 평소에는 혼자 달리지만 오늘만은 서로가 일행이라고 마음먹고 있는 나 같은 외로운 러너들,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 달리기가 개인 운동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달리기를 택한 것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 앞에서 출발지이자 골인지점인 체육공원이 다시 나타났다.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구간은 힘을 내어 빨리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좀 더 달려 마지막 지점인 체육공원의 육상트랙에 올라서자 없던 힘도 솟아 나는 것 같았다. 200미터 가량 앞쪽의 육상트랙 위로는 종착지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알려주는 시계가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있는 모든 힘을 짜내며 마지막 구간을 완주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5km를 27분에 뛰었는데, 5분 40초의 페이스였다. 만족하고도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끝나고 나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완주 메달도 받았다. 이게 뭐라고 집에 가는 동안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다녔다. 사람들이 보란 듯이 말이다. 고입 체력장도 19점을 받은 내가(이거는 20점이 기본이고, 20점 못 받는 사람은 반에 1, 2명 있을까 말까한 정도라는 점을 알려드린다) 운동으로 메달을 받다니, 너무나도 뿌듯한 하루였다. 비록 완주자 모두에게 주는 메달이지만, 운동으로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위대한 상품이었던 것이다. 완주메달은 가보로 고이 모셔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나를 추월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니, 내가 달리기를 꽤 한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다 잡아서 수준에 맞는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앞으로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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