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빨리 달리는 비법 - 천천히 달리기

by 이태태

"이러면 안되지." 얼마 뒤 동동이형과의 상담 과정에서 들은 첫마디이다. Zone4와 Zone5의 심박이 달리기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은 가민 시계 구입 이후 몇 번의 달리기에서도 계속되었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동동이형과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심박 Zone에 대한 다시 한 번의 설명을 들었고, 장거리 달리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천천히 그렇지만 오랜 시간 동안 Zone2를 유지하면서 달리는 Zone2 러닝을 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역시 동동이형에게 물어보기를 잘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물어봐야지하는 생각과 함께 인터넷에서도 심박에 대한 글들을 확인을 해보았다. 예상대로 동동이형의 대답과 마찬가지의 글들이 많았을 뿐이었다.


그렇다. 10km를 1시간 미만의 시간으로 매번 달리는 것은, 나에게는 10km 대회를 매번 참가하는 것과 같은 강도의 달리기였고, 이를 일주일에 2~3회씩 하니 당연히 몸에도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왜 이렇게 힘드냐, 힘들어서 못하겠다, 언제쯤 적응되냐 등이었는데 그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 동안 괜한 고생을 한 심장과 다리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고강도의 운동을 계속 하는 것은 힘들기만 할 뿐, 투자한 시간 대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풀코스 마라톤 선수의 훈련도 상당 부분 가벼운 조깅으로 채워져 있지, 고강도의 운동은 전체 운동 중의 일부라는 것도 추가로 알게 되었다.


빠르게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했다. 천천히 달려도 충분한 운동이 될 수 있고, 오히려 천천히 달리기를 많이 하면 나중에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했다. 빠르게 달리려면 천천히 달리라고? 듣는 순간 어색한 말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km 달리기에 걸리는 시간을 60분, 55분, 50분 이렇게 점점 단축해야지 빨리 달리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10km를 70분, 80분에 달리는 느리게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해야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았다. 동동이형과의 만난 뒤 황급히 도서관에서 찾아본 몇 개의 달리기 책에서도 천천히 달리기를 강조하고 있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설마 하는 의심스러움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동동이형과 전문가들의 만을 믿어 보기로 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속도를 대폭 낮추고, 달리면서 심박도 계속 확인하면서 5km까지는 적어도 존3를 넘지 않게, 그리고 나머지 5km를 달리는 동안에도 가능한 한 Zone3로 달리되, 어쩔 수 없이 심박이 올라가게 되면 일부 구간에서 Zone4로 달리는 것으로 연습량을 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달리기 방법을 바꾼 첫날이 되었다. 우선은 8분 페이스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이 속도로는 100미터 정도 뛰고, 바로 속도를 올려서 곧장 6분 정도의 페이스로 뛰었기에, 8분대의 속도로 뛰는 것은 상당히 어색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어느 정도의 케이던스는 확보를 해야했기에 보폭을 이전보다 좁게 해서 뛸 수 밖에 없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방법이라 속도와 케이던스가 뒤죽박죽이 되는 느낌이었다. 머리와 다리가 따로 노는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봤다. 다행히도 심박은 Zone2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이렇게 2km를 뛰어서 자세가 조금은 익숙해졌다 싶을 무렵에, 7분 페이스로 속도를 올려보았다. 그러자 심박은 야속하게도 금새 Zone3로 올라갔다. 깊은 심호흡을 통해 심박을 내리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아주 잠시 내려갔던 심박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어찌할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3km 지점이 되었고, 이제 심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Zone4로 이동을 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뛰는 것을 멈추고 걷기로 했다. 뛰다가 멈춰서 걸었던 적은 한 동안 없었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호흡을 고르며 잠시 걸어가니 다행히도 심박은 Zone3로 내려갔다. 가민 시계에 파란색으로 표시되는 Zone3 심박을 다시 뛰어도 되는 파란색 신호등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300, 400 미터 정도를 뛴 시점에 여지없이 심박은 다시 Zone4로 올라갔다. 다시 멈춰서 호흡을 고르고, 심박이 Zone3로 내려가자 다시 뛰었다. 그 뒤로도 Zone3와 Zone4의 경계 근처에서 걷기와 뛰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은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이렇게 뛰었다가 쉬었다가 하는 방법이 맞는 것인지는 나도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하다보면 Zone3로 뛰는 시간이 언젠가는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아무런 근거없는 생각에서 시작된 일일 뿐이었다.


그날 달린 거리가 늘어갈수록 뛰는 시간보다 오히려 걷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러닝인지 걷기인지 구분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다가 7km 지점에서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속절 없이 올라가는 심박은 왜 그런 것인지, 모든 러너들이 이렇게 올라가는 심박을 부여잡기 위해 연습하는 것인지, 천천히 뛰다 보면 나도 언제가는 Zone3 심박으로 한 시간을 달릴 수 있는 것인지, 별별 생각이 머리 속에 자리를 잡았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달릴 때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데, 오히려 여유가 생기니 잡념들이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걷다 뛰다를 반복한 그 날의 러닝은 아쉬움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다음번 달리기에도, 그 다음번 달리기에도 심박이 갑자기 올라가는 것은 계속되었다. 뛰다가 걷는 상황은 반복되었지만, 천천히 달리기를 이왕 시작한 이상 조금 더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3주가 지나자 같은 속도로 뛰어도 멈춰서 걷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10km를 달리면 멈추게 되는 시점이 적어도 20번은 되었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10번 정도만 쉬어도 10km를 달릴 수 있었다. 이후로 천천히 달린 날들이 많아질수록 달린 횟수에 비례해서 멈추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천천히 달리기의 효과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한 달 정도가 더 지나자, 예전과는 다르게 운동을 마치고 나서도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즈음이 되자, 비록 느린 속도이기는 하지만, 걷지 않고서도 10km를 달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신기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달리는 속도를 늦춘 것 뿐인데, 이전과 같은 거리를, 비록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낮은 심박으로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운동 후에 얻은 개운한 느낌은 덤이었다.


내 몸이 덜 힘들다는 것은 가민 시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가민에는 운동 후 휴식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달린 거리, 시간, 심박수의 데이터가 누적되면, 그 결과를 가지고 가민의 과학자 선생님들이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으로 짐작해본다. 10km를 60분 이하로 달렸을 때는, 보통 이틀 정도 휴식하라는 안내가 나왔는데, 이제는 그 시간도 줄어들어서 24시간~36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이 표시되었다. 과학적으로 측정한 데이터마저 내 운동의 강도가 예전보다 적절해지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 후로 달리는 속도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본 끝에 내가 기분좋게 주 3회를 달리 수 있는 강도는 대략 1km를 6분 30초~7분 페이스 정도로 달리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천천히 뛰면서부터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이전에는 어제보다 빠르게 달리고 말겠어라는 전투 모드로 달렸다면, 이제는 그때와는 달라졌다. 양재천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왜가리도 구경하고, 엄마 오리가 새끼 오리를 데리고 가는 이색적인 모습을 접하게 되면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를 뛰며 봄의 정취를 느껴보기도 하고, 가을에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한다. 어떤 날은 호흡에 집중하며 이런 호흡법, 저런 호흡법을 연습해보기도 한다. 가끔씩은 오늘 출근해서 할 일들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하루 일정을 미리 계획해보는 일도 있다. 달릴 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운동이 끝나기만을 생각했던 과거는 이제 지나갔다. 그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속도를 낮추니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달리려면 오히려 천천히 달려야 된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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