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Garmin 구매기 - 러닝시계라는 것이 있었네

by 이태태

10km 첫 대회에서 만났던 참가자들의 손목에는 시계가 하나씩 둘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었다. 그게 일반 시계가 아닌 러닝 전용 스마트워치인 것은 대회 얼마 전에 동동이형과의 대화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동동이형은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인데,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 책과 유튜브 등 각종 매체를 통해서 금새 상당한 지식을 갖추기도 하는데, 아마 내 주위에서는 chatGPT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그런 동동이형이 얼마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했다. 옳다구나. 이제 달리기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동동이형한테 물어보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달리기와 관련된 것들이 우리 대화의 한 꼭지로 떠올랐다. 얘기를 나눠보니 역시나 동동이형은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달리기에 관한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았고, 러닝 유튜브채널도 구독하지 않아서, 달리기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달리기에 쏟았던 시간 대비 아주 기초적인 것들 밖에 없었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얘기라고 할 수 있는, 밥을 먹고나서 바로 뛰면 힘들다, 금방 땀이 나니 생각보다는 옷을 얇게 입어도 된다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동동이형은 나와는 달리 신기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달리기에 대한 탄탄한 이론을 학습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물론 시간과 거리가 달리기의 성과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이지만, 심박을 측정해야 보다 정확한 운동강도를 알 수 있고, 이렇게 측정된 운동강도를 바탕으로 해야만 적절한 운동량을 정할 수 있어.” 동동이형의 설명을 듣고 나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달리기에는 속도와 거리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인지 심박이라는 새로운 것이 등장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민55라고 러닝시계를 샀는데 한 번 봐봐. 여기 화면에 심장 표시 보이지? 이게 심박수야. 지금은 평상시라서 수치가 낮게 나오는데, 뛰기 시작하면 급격히 올라간다고. 심박이 130, 160 이렇게 숫자로 나오기는 하는데, 숫자가 얼마인지 보다는 심박이 어느 영역에 있는지가 더 중요해. 달리면서도 순간순간 심박 영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심박 영역별로 색깔이 다르게 표시되니까 시계를 직접 차고 뛰어 보면 쉽게 이해될거야. 존1이 가장 낮은 상태, 그러니까 평상시의 상태야. 심장도 호흡도 지극히 평온한 상태인거지.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 심박이 올라가면서 존도 바뀌는데, 그렇게 존2, 존3가 되고, 정말 힘들다 싶을 때는 존5까지 올라가.” 동동이형의 과학적인 설명에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냥 뛰지 말고 심박 영역을 보면서 운동하는 것이 좋아. 니가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보면, 존2는 옆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 달려도 될 정도의 꽤 편안한 정도의 달리기에 적당한 심박이고, 존3은 이보다는 조금 높아서 보통 조깅이라고 말하는 정도의 운동에 맞는 심박이야. 존4는 속도를 더 붙이는 스피드 위주의 연습을 하는 상황이 맞을 거고, 존5는 의도적으로 아주 짧게 강한 강도의 운동을 할 때 필요해.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인터벌, 레퍼티션이라는 고강도의 운동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존4, 존5에 속할거야. 뭐 그렇다치고, 보통 때는 존2, 존3로 많이 달리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


동동이형의 설명은 가민55시계를 넘어서서, 가민 커넥트라는 시계와 연동된 핸드폰 어플로 넘어갔다. “이거는 가민 커넥트라는 거거든. 시계에서 쌓인 데이터를 핸드폰 앱에서 좀 더 자세하게 보여주는 거야. 여기 화면을 보면, 케이던스라고 쓰인 것 있지? 자전거 타봤으면 알 수도 있는데, 1분에 발이 땅에 몇 번 닿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야.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180정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해. 케이던스가 너무 낮으면 보폭이 크다는 말인데, 그러면 발이 지면에 닿을 때 무릎과 발목에서 받는 충격이 커져서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고 하더라고. 반대로 케이더스가 너무 높으면, 발을 구르는 횟수가 많아지니 에너지 소비가 커져서 역시 좋지는 않다고 해.” 케이던스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동동이형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리가 케이던스를 높게 해서 뛰어본 경험이 없을테니, 너도 케이던스 확인해보면 아마 180보다는 많이 낮을거야. 나도 처음에 그랬는데,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올라가더라고. 음악 시간에 메트로놈이라고 박자 맟춰주는 기계 본 적 있지? 요즘에는 메트로놈이 앱으로도 나와 있어서 180으로 세팅하고 달릴 때 땅땅땅땅 하는 소리에 발을 맞춰서 달렸더니 어느 날부터는 케이던스가 180 비슷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심박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조금만 뛰어도 170, 180 이렇게 높게 올라갔는데, 계속 뛰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거리와 속도로 뛰어도 심박이 예전처럼 올라가지는 않게 되더라.”


동동이형이 보여준 가민 커넥트의 화면은 나이키러닝앱과 비슷하게 되어 있었다. 화면의 많은 부분을 지도가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심박수 영역, 케이던스, 페이스가 그래프로 나와서 시각적으로 확인이 더 쉬워보였다. 러닝 전문가로 보이는 동동이형이 산 바로 그 시계, 러너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그 시계,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러너로 만들어줄 바로 그 시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훅 밀려왔다. 가민의 러닝용 시계도 다양한 라인이 있다는 것을 뒤에 알게 되었지만, 길게 고민할 것도 없이 동동이형이 고른 55를 점찍었다.


문제는 가격과 타이밍이었다. 30만원이 넘는 가격은 온라인 쇼핑몰의 구매 버튼을 곧바로 누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당근을 찾아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물건 하나를 사서 고장날 때까지 쓰는 내 성격을 생각하면 새 것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시계를 갑자기 사서 아내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 아내가 사 줄 수 밖에 없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일단 동동이형 얘기를 꺼냈다. 평소에 동동이형을 본받으라고 곧잘 얘기할 정도로 동동이형에 대한 무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아내에게 넌지시 미끼를 던져보았다. “동동이형도 달리기를 한다더라. 벌써 반 년도 더 되었더라고 해. 근데 동동이형이 가민 시계라는 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있으면 보통 때 심박도 재고, 잠을 잘 잤는지 수면상황도 확인을 해줘서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 물론 달리기 할 때도 쓰고 말이야. 하나 있으면 쓸모가 많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근데 당신 손목에 걸리적 거리는게 싫어서 예물시계도 안 하고 다니잖아. 괜찮겠어?” 기회를 살리기 위한 말을 슬쩍 던져보았다. 아내의 말에 그대로 수긍하면 오늘의 목표는 사라져 버릴 뿐이다. “응, 그렇긴 한데. 이제 건강 신경써야지 40대 중반인데. 뭐 시계 없어도 괜찮기는 한데 말이야.” 그러고는 말을 이어갔다. “알고 봤더니 러닝 시계가 달리기에 필수품이더라고. 달리기 하려면 옷이랑 신발은 있어야 되잖아. 요즘에는 시계까지 있어야지 완성이더라고. 왜 자기 테니스 치러갈 때 라켓 예비로 하나 더 들고 다니기도 하잖아. 라켓 끈 끊어질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시계도 마찬가지야. 없어도 되긴 한데,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실력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 핸드폰 계속 들고다니는 것도 은근 귀찮은데, 시계는 가볍기도 하고 말이야. 가격이 30만원인데 10년 쓴다 치면 일년에 삼만원, 한달에 2500원 밖에 안 하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계에 대한 다양한 예찬을 늘어 놓았다. 내 말이 그럴 듯 했는지 아내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고, 며칠 뒤에 이른 생일선물로 가민55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받자 말자 시계의 기본 설정을 마치고 다음 날 처음으로 러닝시계를 써볼 생각에 들떴다. 뭔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최근에는 잘 없었는데, 달리기를 하면서부터 다시 스멀스멀 물욕이 생겨나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하고 싶은 일, 사고 싶은 것에 대한 강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자기도 그렇다면서, 나이 먹어 중년으로 접어드는 증거 아니겠냐고 한다. 그 때는 끄덕끄덕 동의를 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마음을 확 끄는 것이 없어서 그 동안 그랬던 것 같다. 달리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 동안 없던 물욕까지 생기게 했다. 달리기가 돈이 안 든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인터넷에서 본 글이 갑자기 떠올랐다.


드디어 가민을 차고서 처음으로 달리는 날이 되었다. 준비를 마친 후, 10km 거리를 60분 내에 달리겠다고 생각하고서는 앞으로 달려 나아갔다. 처음에 심박은 회색 Zone1이었는데, 조금 뛰니, 순식간에 하늘색의 Zone2를 지나, 파란색의 Zone3로 올라가 버렸다. 내 달리기를 수치화해서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Zone3가 보통의 조깅 페이스라고 하니 이 정도로 끝날 때까지 계속 달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게 러닝시계 초보의 희망사항에 불과했음은 곧 알게되었다. 2km를 채 달리기도 전에 심박은 오렌지색 Zone4가 되었음을 알려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마지막 단계인 빨간색 Zone5까지 가버렸다. 이 때부터는 호흡이 많이 가빨라져서, 스스로 느끼기에도 상당히 힘든 상태였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 정도 속도와 거리를 몇 번을 달렸던 내가 아닌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속도를 늦추지 않고 마지막까지 쭉 달렸다. 힘은 들었지만 다행히도 60분 정도에 완주를 했다. 이제는 오늘의 러닝 기록을 확인할 차례가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민커넥트 앱을 열어보았다. 확인을 해보니, 심박은 Zone5가 35%, Zone4가 56%, 그리고 Zone3가 3%였다. Zone1, Zone2는 합쳐서 6%에 불과했다. 뭔가 찜찜했다. 동동이형의 말처럼 대부분의 달리기는 상당한 시간을 Zone 2, 3를 유지하면서 뛰어서 지구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포커스를 두어야 된다고 하는데, 이와는 달리 내 달리기는 Zone 4, 5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 내 몸이 Zone5를 계속 견딜만큼 잘 성장해 있다는 것이라는 말은 아니겠지? 쌔한 느낌인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이따 시간을 내서 인터넷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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