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하프마라톤 완주 이후 내 취미가 뭐냐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서슴없이 달리기라고 대답한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정의와 맞기 때문이다. 내 기준의 취미란, 일단 하고 있는 동안은 재미있어야 되고,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서 해보고 싶고, 계속해서 하다 보면 좀 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계속 반복하다 보면 경험이 좀 쌓여 있는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면, 이왕이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내 취미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니까 사실 그 동안에는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싫증을 잘 내는 성격상 무던히 오래 붙잡고 있었던 활동이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뭐가 있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선 음악과 미술 쪽으로는 아예 도전을 해 본 적이 없던 것이 기억났다. 다행히 그나마 몇 가지 운동을 잠시나마 했던 경험은 생각이 났다. 발이 닿지 않는 수영장이 무서워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주저주저 하던 나와는 달리, 쑥쑥 자유롭게 수영을 하던 어느 동남아 리조트에서 봤던 외국 사람들이 부러운 마음에 수영강습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몇 달을 배워도 숨쉬기가 익숙해지지 않아, 고개가 물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에 호흡이 가빠지기만 했었다. 심지어 남들은 둥둥 잘 떠서 다니지만 허리에 차는 부력벨트 없이 수영을 할 수 없어 동급생들의 진도를 따라 갈 수가 없는 지경에 강습을 그만두고 말았으니 수영이 취미였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다음으로 결혼하기 전에 자전거를 타며 한강변을 누비던 때를 떠올려 보았는데, 결혼과 육아로 길게 자전거 타는 것을 그만둔 지는 이미 한참 전이고, 몇 번의 이사 과정에서 자전거를 어디에 두고 온 것인지로 모를 정도이니,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 도는 정도의 자전거를 타는 지금 시점에서 내 취미가 자전거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게 없나 하고 찾아보니,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끔 책을 보기는 하니까 독서라고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본 책이 아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GoGo 카카오라는 학습만화책이라는 점에서, 독서를 취미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인 것 같아서 독서도 후보에서 탈락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랬던 내가 이제는 달리기가 취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단 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음에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보통 때보다 빨리 뛰기 시작하고, 어떨 때는 나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뛰고 나서의 상쾌한 느낌을 맛보면 나 아직 죽지 않았구나는 생각을 한다. 달리기 후 마시는 물 한 잔이 얼마나 꿀맛 인지는 러너라면 누구나 쉽게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합쳐서 세 시간 이상은 달리기에 쏟고 있으니 시간적인 면에서도 취미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 않은 정도인 것도 같다.
달리기가 취미인 이상 잘 달리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성장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록을 갱신하며 더 빨리 달린다거나, 더 먼 거리를 달려야 된다는 등의 대단한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10km를 뛰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 같으니 이 정도는 앞으로도 계속 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일종의 이벤트 성격으로 하프 마라톤 대회에 일년에 한 두 번 참가하면 좋겠다 정도의 다소 크지 않은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러너들의 언어로 풀어서 말하면, 풀코스 마라톤을 뛰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하프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면, 풀코스는 언제 도전하는 거냐는 말을 흔히 듣기는 했지만, 10키로, 하프, 풀코스로 이어지는 달리기의 흔한 레벨업 과정에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놀이에 의무감이 끼어들면 이제는 놀이가 아니라 숙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달리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계획이 있으면 달리기 생활이 지루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달리기 방향을 고민을 해보며 이렇게 저렇게도 뛰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만의 루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으며 된 것인데, 달리기 횟수와 달리기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충 이렇다.
- 횟수: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뛰자(그 중에 한 번은 주말, 나머지 두 번은 평일로)
일주일에 두 번을 달리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기에는 물론 좋은 운동이 될 것이다. 특히나 예전의 나와 같이 운동을 아예 하지 않다가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해볼까 하는 분들에게는 무리가 되지 않는 추천할 만한 강도의 운동이다. 그런데 두 번 달리기는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한 운동량으로는 조금 적은 것 같았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일주일 중 두 번의 운동일 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주간에는 더욱 그랬었다. 일주일에 세 번을 달리는 것이 무리가 아닌가 하고 세 번 달리기를 시도하기 전에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는 몇 달 동안 일주일에 세 번을 뛰어도 무리가 되지는 않았었다. 이런 생각과 경험 끝에 주3회를 목표로 정했다. 회사생활과 가정생활을 모두 적절히 해나가야 되는 힘든 과업을 둔, 현생을 사는 러너이기에 주4회를 목표로 하는 것은 좀 과한 목표였다. 주4회는 현실적인 제약상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았고, 혹시라도 운이 좋다면 달성하는 정도의 이상향으로 삼기로 했다. 뭐, 네 번 달리면 좋은 거고, 아니더라도 세 번씩 달렸으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약속 어기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을 보면, 주4회의 계획이 어그러지는 경우, 의지가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며 낙담을 계속하다가 아예 달리기를 그만 둘지도 모르겠다는 염려도 이런 결정에 한 몫 하기도 했다. 사실상 처음으로 가지게 된 소중한 취미인 달리기를 이렇게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달리기를 며칠 간격으로 할지를 정했다. 검색해본 많은 사례는 주말 중 토요일과 일요일에 모두 운동을 한 후, 월요일에 쉬는 것을 권장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가 일요일에 열리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오늘 뛰고 그 다음날에 쉬지 않고 바로 뛰어도 괜찮다는 인터넷상의 글을 보기도 했는데, 천천히 뛰어도 1시간을 뛰는 것이 마냥 편한 운동은 아니었기에, 일단 퐁당퐁당 방식으로, 하루 달리고, 하루 쉬기로 했다. 1시간 정도 운동을 하면 가민 시계에서, '회복 25시간, 쉬운 운동을 권장'이라는 문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과학으로 무장한 가민이 나의 상태를 최첨단 방식으로 점검하여 주는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다음 날 휴식 없이 뛴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뛰는 요일을 대략적으로 결정했다. 어디까지나 계획이라 반드시 지켜야 되는 사항은 아니지만, 그날은 운동하는 날로 정하고 어쩔 수 없는 약속이 아닌 한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일단 주말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으니, 주말 양일 중에서 하루는 운동일로 하기로 했고, 그 중에서도 우선 토요일을 골랐다. 토요일에 뛰면 일요일에 쉬고, 이어서 바로 월요일에 다시 달리기를 하면 되니, 주말 중에는 토요일로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그리고 주중 첫번째로 운동하는 날로는 월요일을 골랐다. 결국, 월요일 운동 후 화요일은 쉬고, 수요일, 목요일 중에서 하루를 운동한 뒤에 다시 토요일에 운동하는 것이 기본 스케줄로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 뛰어보니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 많이 생겼는데, 처음에는 일정이 틀어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좀 지나고 보니, 마음을 조금씩 비우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운동 하는 것이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마음을 다르게 먹으니, 스케줄을 지키지 못할 때도 그러려니 하며 지나갈 수 있었다. 즐겁자고 하는 운동인데, 스트레스 받으면 나만 손해인 것이다.
- 시간: 1회 10km, 단 주말에는 좀 더 길게 15km 이상을 달리자
운동량은 시간을 기준으로 하거나(30분 달리기) 또는 거리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5km 달리기)가 많은데, 나는 거리를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 보통 때의 달리는 속도로 1시간을 뛰면 달린 거리가 9km 정도가 되었는데, 1시간 달린 거리가 9km이면 운동을 좀 덜 한 느낌이고, 왠지 모르게 10km를 찍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차원에서 거리를 기준으로 10km를 달리기로 했다. 정서적 만족감도 신체적 변화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나서는 10km를 뛰고 나면 너무 힘든 것도, 그렇다고 너무 쉬운 것도 아닌 정도의 페이스를 찾아보았는데, 나에게는 630~700이 그런 페이스였다. 이런 페이스로 10k를 뛰면 1시간 10분 안팎이 걸리니, 부담되는 시간도 아니었다.
빠르게도 느리게도 뛰다 보니 거리에 따라 나에게 맞는 페이스도 알게 되었다. 2km 지점 도착할 때가지는 730 정도가 되도록 하고, 그 이후 5km 가 되는 반환점까지는 속도를 조금씩 올려서 700 정도로, 돌아올 때는 8km 거리까지 속도를 조금씩 올리는데, 컨디션 정도에 따라 600~630 사이로, 나머지 2km는 좀 더 빨리 530~600 정도로 마무리하고, 운 좋게 힘이 남는 날이면 마지막 200m 정도는 전력질주를 하면 딱 좋았다.
그런데, 거리를 기준으로 연습하면 거리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거리를 채우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되는 단점도 있었다. 살다 보면 정해진 거리를 뛰는 것이 버거운 날이 종종 생겼는데, 그런 날에 10km를 채우지 못하고 달리기를 마치면 운동 후에도 상쾌한 느낌보다는 찝찝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당시에는 특별한 해결방안을 찾지는 못했는데, 한참 뒤 어느 날부터는 달리기를 할 때 시간을 기준으로 뛰어 보니 이런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이 되는 것 같았다.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한 시간을 뛰겠다고 마음 먹고 시작을 해도, 컨디션 좋은 날에는 한 시간에 10km를 뛰는 날도 있고, 왠지 뛰기 싫은 날에는 한 시간에 7~8km 달리기로 마감하는 날도 있어서, 몸 상태에 따라 적절한 달리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원칙은 있되, 예외에 인색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평일에는 10km 안팎을 뛰었지만, 시간 여유가 있는 주말에는 평일보다는 긴 거리를 달렸다. 보통은 10~15km 사이를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달렸는데, 거리가 익숙해질 수록 20km도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달의 4회 주말 중 3번은 15km 안으로, 나머지 한 번은 그 날 컨디션에 따라 좀 더 길게 15~20km를 달리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계속해서 뛰다 보니 놀라운 일도 있었다. 주말에 중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는 도착점이 가까워질수록 힘들어졌는데, 그런 구간들을 달릴 때에도 계속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달리는 중간에 순간적으로 심박이 떨어지고 호흡이 안정적으로 되는 신기한 순간을 만나기도 했다. 운동시간이 길어져 막박지로 접어들수록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이 흔한 일이었는데, 이변과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로, 평일 10km 달리기를 할 때의 심박수도 조금씩 낮아졌다. 긴 거리 달리기가 10km 달리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달리기 실력이 좋아졌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시간을 들이면 사람 몸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인가 보다.
첫번째 하프마라톤 이후 몇 달 간을 이와 엇비슷하게 달려보았다. 비슷했다는 것이지 이대로 했다는 것은 아니다. 늦게 일어나서 운동 못했던 날이 여러 번 있었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주3회, 꾸준히 달리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운동을 하다 보니 심지어 살까지 빠졌다. 10km 달리기를 하면 내 경우 600~700 kcal 정도의 열량이 소모가 되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식단을 엄격하게 관리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가나 초콜릿, 맥도널드 소프트 콘을 자주 먹고,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들과 치킨, 삼겹살도 예전과 같이 열심히 먹었지만, 체중은 오히려 조금씩 줄어드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달리기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에 또다른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듯 생활러너의 평온한 달리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훈이와 철원DMZ 하프마라톤대회를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