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인 훈이는 나에게는 달리기의 천상계에 있는 존재였다. 무려 풀코스 완주자이며, 심지어 기록도 3시간 30분 안쪽이라고 했다. 그런 훈이에게 달리기를 내용으로 한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잘 지내냐? 9월 초에 철원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는데, 같이 갈래. 나는 하프코스 신청했고, 아직 마감 전이야.”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교통편이 문제인 것 같았다. 이른 아침에 철원까지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무리인 것 같았고, 운전해서 갔다가는 대회 끝나고 나서의 피곤함에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그러자 훈이의 명쾌한 대답이 이어졌다. “걱정마. 이 대회가 얼마나 좋은 대회냐 하면 말이야, 서울과 경기도 곳곳에서 왕복 셔틀버스가 있다고. 그것도 심지어 공짜로 말이야. 셔틀버스도 아직 빈 자리 있는 것 같으니까 한 번 봐봐.” 안 나갈 이유가 없었다. 두번째 하프 마라톤 대회는 그렇게 훈이와 함께 뛰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 이후 몇 달이 지나 9월 초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프마라톤 대회는 지난 번 첫 하프마라톤인 과천마라톤에 나가 보았을 뿐이었다. 달력은 9월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늦더위는 아직 가시지 않았고, 심지어 당일 최고기온은 30도가 넘는 것을 예상하고 있는 날이었다. 오늘 대회가 쉽지 않겠다는 것을 예상하며,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사당역 14번 출구 앞에 아침 6시가 안 된 이른 시간에 도착을 했다. 나와 비슷한 복장을 한, 한 눈에 봐도 러너인 사람들이 벌써부터 많이 모여 있었다. 이제 나는 데카트론표 썬글라스, 모자도 갖추었고, 수명을 다한 러닝화를 대신하여 얼마 전에 새로 산 최신 러닝화인 젤카야노 31을 신고 있었으니, 이제 초보티는 벗었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수 러너와 나와의 또다른 차이점을 발견했다. 바로 이번에는 크록스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집에서부터 러닝화끈을 질끈 동여매고 나온 나와는 달리, 러닝화가 아닌 편한 운동화나 크록스 차림으로 온 러너가 대부분이었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풀어야 될 러닝의 비밀이 아직도 많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하면, 대회 전에 발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대회장까지는 편한 신발을 신고 간 다음 대회장에서 그날의 레이싱슈즈로 갈아 신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고급 카본화로 출격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요즘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설명도 인터넷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카본 러닝화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굳이 집에서부터 러닝화를 신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하루였다. 그 뒤로는 나도 대회날에 크록스를 신고 출발지로 향한다. 대회를 마치고 운동화가 아닌 크록스를 신고 오면 발이 좀 더 편한 것 같기도 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일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쨌거나 아침 6시에 사당역을 출발한 셔틀버스는 1시간 반이 지나서 대회장인 철원 고석정에 러너들을 내려 주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다른 동네에 달리기를 위해 도착한 것이었다. 주차장은 벌써 만차인 것인지, 입구 근처의 도로에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각지에서 온 셔틀버스가 속속 도착을 했는데, 규모 면에서 여태까지 달렸던 과천마라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도로 큰 대회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아침 8시 경의 태양은 벌써부터 이글거리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 되나 싶어, 이 더위에 과연 뛸 수 있는 것인지 염려가 되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훈이게 전화를 했고, 저 멀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보통 때 보던 것과는 달리 멋진 달리기 복장을 하고 있는 훈이를 하마트면 못 알아볼 뻔했다.
알고보니 철원DMZ 마라톤 대회는, 가을의 주요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여름 동안 땀흘리며 연습해던 러너들이 그 동안 훈련했던 것을 테스트하는 가을 마라톤의 시작을 알리는 대회 중의 하나였다. 엉겁결에 큰 대회에 참가를 하게 된 것이었다. 풀코스의 경우, 이곳 고석정에서 출발을 해서, 하프마라톤 코스의 반대편으로 나있는 도로를 달려 하프코스의 출발지인 월정리역 근처까지 간 다음, 그 때부터는 하프코스와 동일한 구간을 뛰어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하프코스를 뛰는 우리는 고석정에서 다시 한 번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월정리역으로 향했다. 코스의 상당 부분이 민통선 내에 있었기에 군인들의 검문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하프코스 출발지인 월정리역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이 민통선 내임을 알리는 문구가 곳곳에 있어서, 평소에는 오지 못하는 곳을 마라톤을 계기로 오게 되어 신기하다고 생각을 했다. 조금 지나자 셔틀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하프마라톤 출발선에 모여들었고, 어림잡아도 1, 2천명은 됨 직한 정도의 숫자였다. 하프 2회차인 나는 출발전에 능숙하게 에너지젤을 하나 짜서 먹었다. 아직 반바지 주머니에는 에너지젤이 두 개나 더 있으니, 체력 걱정은 말고 열심히 뛰자고 다짐을 했다. 지난 번 첫 하프마라톤에서 빠뜨렸던 에너지젤을 이번에는 챙겼으니 마음이 놓였다.
출발지점은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이런 풍경은 철원평야가 펼쳐져있는 한동안의 코스 동안 계속되었다. 철원은 산지가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그 날 이전까지 내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철월에서 군생활을 했던 친구들이 힘들었던 얘기를 하도 해서 당연히 산지라고 지레 짐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난생 처음 방문한 철원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산은 저멀리에 자리잡고 있었고, 내가 봤던 많은 부분은 놀랍게도 평지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에서 자라는 철원오대쌀이 유명하기도 한데, 오대쌀을 들어보고 먹어도 봤지만, 철원에 곡창지대가 넓게 있을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사람 살기에 오죽 좋은 곳이면 궁예가 후고구려를 왜 이곳에 세우지 않았겠는가.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인데, 마라톤 덕분에 난생 처음 철원을 가게 되니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시합은 곧 시작되었고, 나는 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을 했다. 잠시 훈이와 같이 뛰기도 했지만, 실력차로 인해 계속해서 같이 달릴 수는 없었기에 결승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내 헤어졌다. 그 뒤로 혼자만의 경기를 이어갔다. 마라톤이 개인 경기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출발 전에 봤던 대회안내책자의 코스 지도를 떠올려보았다. 초반은 완만한 내리막과 평지, 중간 및 후반은 평지, 가끔씩 오르막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 내리막구간인 초반에 오버페이스하면 안 된다고 계속해서 다짐을 했다. 힘을 아껴 두었다가 마지막 평지 구간에 쏟아부어 점점 속도를 올려 최고의 스피드로 골인하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획은 계획이었을 뿐, 뛰다보니 초반부터 페이스가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신나게 달리는 주위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5분 30초 페이스가 되어 버렸고, 오버페이스 금지라고 그렇게 다짐을 했던 내리막 구간에서는 아직 지치지 않는다며 속도를 더 내버렸다. 자전거도로가 아닌 공도에서 시작해서 공도에서 끝나는 대회는 처음이었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절로 옮겨졌던 것이다. 이러다가 기록 세우는 것이 아니냐는 괜한 기대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운이 좋게 오늘도 페이스 메이커분을 발견을 했다. 복장상으로 운동 경력이 상당해 보이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성 분이셨는데, 5분 30초~40초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고 계셨다. 한결 같은 일정한 페이스로 달리는 것으로 봐서 이 분을 따라가면 2시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희망적인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신나게 속도를 높였던 덕분인지 5km가 넘어가자 지치기 시작했다. 그늘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30도를 육박하는 날씨를 견디며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달렸으니 지칠 만도 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저 앞에서 언덕이 하나 나타났다. 그동안 연습했던 서울대공원의 오르막은 귀엽게 생각될 정도로 꽤 경사가 있어 보였다. 속으로 하나둘 하나둘을 외치며 달려보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오르막길이와 처음 접해보는 급한 경사는 나를 힘들게 했다. 힘을 내보았지만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 때 갑자기 저 멀리에서 냉동탑차 트럭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100미터 정도 앞의 주로 중간에 멈춰 섰다. 이게 뭔가 싶었는데, 적재함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시원한 아이스크림 박스였다. 예상 밖의 더운 날씨에 주최 측에서 긴급히 아이스크림을 보급품으로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먹을까 말까 순간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기에 오늘은 넘어가주기로 했다. 손을 뻗어 수박바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서 입으로 가져갔다. 이것은 보통의 얼음 조각이 아니었다. 생명수가 있다면 이런 맛이 틀림없을 것이다. 지친 몸을 다스려주는 달콤한 기운이 입에서부터 온 몸으로 펴져 나갔다. 단 것을 먹으니 당연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대회라면 얼마든지 더 참가하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아이스크림에 힘을 입어 언덕을 간신히 넘었다. 나만의 페이스메이커는 언덕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속도를 늦췄던 나와는 거리가 벌어져 이미 한참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벌어진 거리를 따라 잡기 위해 속도를 올려보았다. 땀이 비오듯 했지만, 여기에서 거리가 벌어지면 이후에는 더 이상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간신히 페이스메이커 주위에 다시 자리를 잡았고, 시계를 확인해보니 심박은 이미 190을 넘어서 존5를 가리키고 있었다. 페이스 조절은 이미 망해버린지 한참인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되는대로 달려보기로 했다. 마침 에너지젤을 하나 먹으니 없던 힘마저 솟아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라는 생각에 속도를 더 높여보았다. 페이스메이커를 따돌리고 평지에서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렇게 10km 무렵에서 시작한 빠른 달리기는 15km가 될 때까지는 비슷한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계속되었다. 그러나 15km가 되자 더 이상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속도가 저절로 저절로 줄어들었고, 페이스는 5분대 후반을 지나 심지어 6분이 넘는 페이스로 떨어졌다. 작렬하는 태양을 가릴 곳은 없었고, 온몬에서 땀이 쏟아졌으며, 바지를 지나 허벅지로 흘러내린 땀을 양말이 흡수하는 것이 느껴졌다. 터벅터벅 달리다 보니 17km 구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뛰었던 왕복 2차로의 구불구불한 길이 아닌, 지금부터는 직선으로된 4차선 고속화 도로를 달리는 구간이었다.
여기에서부터 속도를 내어 승부를 던져 보겠다던 계획과는 달리 속도는 올라오지 않았고, 계속해서 6분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할 뿐이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내 앞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쓱 지나갔다. 10km 지점에서 내가 따돌렸던 페이스 메이커분이 어느덧 내 앞에 다시 등장한 것이었다. 나를 스쳐갈 때 잠깐 들렸던 그 분의 숨소리에서는 지쳤다는 기색을 찾기는 어려웠고, 뒤에서 바라본 발차기와 팔치기는 17km를 뛴 사람의 모습이라기에는 너무나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 동안 아껴두었던 힘을 이제 쏟아부어 마무리를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페이스도 내가 따라갈 때의 5분 30초가 아닌 이 보다 더 빠른 정도였다. 따라가 보려고 했지만, 이미 많이 지쳐버린 내가 따라가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일이었다. 저 앞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페이스 메이커분에게 마음 속 안녕을 고했다.
곧 이어 18km 지점이라는 안내판이 나왔고, 지금 정도의 속도로 달리면 골인 지점에 도착하는 것은 이미 출발 후 2시간을 살짝 넘은 시점으로 대략 계산이 되었다. 무리해서 2시간 내를 목표를 해볼까도 순간 고민을 해보았지만, 짜낼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을 알고는 이내 단념을 했다. 마침 오른쪽 길가에 몇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가까워지니, 어느 러너가 힘겨워하며 길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일행인 듯한 분이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고, 핸드폰으로 119를 부르고 있는 것도 목격을 했다. 잠시 걸음을 멈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보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닫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는 특별한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기록을 포기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러너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흘러내리는 땀을 계속 닦으며 달리다보니 어느덧 골인 지점이 눈 앞에 다가왔다. 저기를 통과해서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셔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골인지점 바로 앞에서 젖 먹던 힘까지 내보았던 이전 대회를 떠올려보았지만, 이번에는 그럴 힘조차 없었고,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며 간신히 골인지점을 통과했다. 통과와 동시에 가민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시계에 나온 시간은 2시간 1분. 아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금만 힘을 더 냈으면 두 시간 이내의 기록, 러너들의 용어로는 sub2라는 기록을 달성하는 것이라 아쉬움에 몸이 반으을 한 것이었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완주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10분 후에는 완주를 하고서 sub2를 못해 아쉬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참가답례로 받은 철원사랑상품권으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도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3시까지는 한참이나 시간이 남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별도로 집에 돌아가려는 생각에 잠시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차가 막히는 주말 오후라는 생각에 금새 생각을 접었다. 유일한 동네 커피숍인듯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훈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올해 무슨 대회 참가하느냐, 훈이가 신은 카본화의 성능은 어떤지, 추천할 만한 러닝화는 뭐가 있는지 등 러닝 얘기가 한참 이어졌고, 얘기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 주말에 보통 뭐하냐, 건강 괜찮냐, 애들 학원은 어디 다니느냐 등 별 얘기들을 다 했었다. 그런데 훈이가 뜬금없는 유혹의 말을 던졌다.
“11월 초에 JTBC마라톤이라고 있는데, 엄청 유명한 대회거든. 우리나라 마라톤 대회 중에 유명한 3개를 꼽자면, 봄에 있는 서울동아마라톤, 가을에 있는 춘천마라톤과 함께 JTBC 마라톤이라는 것에 러너들 모두 이견이 없을테니, 어느 정도 대회인지는 알겠지? 본접수는 이미 상반기에 마무리되었는데, 얼마 뒤에 추가 접수가 있어. 아직 시간 좀 있으니, 혹시 그 때 풀코스에 한 번 도전 해보는 것은 어때?” “요즘 달리기가 너무 인기가 있어서 몇 초 만에 접수가 마감될 거기는 한데, 너 정도면 지금부터 바짝 연습하면, 좋은 기록은 아니라도 완주는 할 수 거야.” “정석대로라면 이제 차근차근 준비해서 내년 상반기쯤 풀코스 도전하면 좋은데, 더운 여름 동안 연습해 놓은 게 있으니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훈이의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풀코스라는 다소 뜬금없는 말에 내 대답이 어어졌다. “아이고, 내 실력에 풀코스는 무슨 풀코스냐? 나는 하프 뛸 수 있는 이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 풀코스는 너 같이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이나 하는 거지” 이제 경우 하프코스 두 번 뛰어봤는데, 내 실력에 무슨 풀코스를 뛰겠는가. 그리고 용케 접수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두 달도 안 남았는데 준비가 되겠느냐는 생각도 한 몫 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생활러너로서의 내 달리기 생활에 풀코스는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기에, 풀코스 달리기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고, 참가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뱉은 말과는 달리, 집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는 생전 처음 접하는 것들을 검색하는 내가 있었다. JTBC 접수일, 풀코스 훈련법, 풀코스 완주후기 등 풀코스와 관련된 것들을 계속 검색했고, 급기야 그 날 저녁에는 풀코스를 완주한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래, 마라톤을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그리고 밑져야 본전이잖아. 대회신청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지 않은데, 성공하면 그 때 다시 생각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