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지하철 첫차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아침 5시 40분 지하철 첫차를 탔다. 놀랍게도 일요일 오전 이렇게 이른 지하철 첫차 안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러너는 러너가 알아본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오늘 나와 함께 JTBC마라톤에 출전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씩 정거장을 지날수록 더많은 러너들이 속속 탑승을 했다. 심지어 대회 출발지인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6호선 환승역인 삼각지역에서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러너들이 너무 많아서 지하철 1대를 보내고 다음 지하철을 타야 할 정도였다. 처음으로 10키로 대회에 출전하는 듯 친구들과의 얘기에 들떠 있는 사람, 서브3를 다짐하는 것 같은 마라톤클럽에서 오신 어르신들, 그리고 나처럼 오늘 처음으로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오늘의 축제를 함께 즐기기 위한 동지들이라는 생각에, 찡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곧 시작되는 대회에 긴장이 되기도 했다.
마치 평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날 법한 인파를 헤치고 도착한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더 많은 사람들로 넘쳐 났다. 몸을 풀며 가볍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벌써부터 대회가 시작된 것인양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도 나는 혼자 뛰지만, 출발 전에 온라인 러닝 동호회 회원님들을 잠시 만나기로 해서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땡런은 대학교 동문으로 구성된 온라인 러닝 동호회인데, 카톡 단톡방에 자기가 뛴 거리를 사진과 함께 인증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임이다. 매일매일 열심히 운동하시는 분들을 보며 서로 자극이 되기도 하고, 달리기 관련 정보를 많이 공유해주기도 하며, 대회 완주는 축하하며 부상은 위로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200명 정도가 있는 공간이다. 평소에 운동을 같이 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이렇게 대회가 있을 때에 잠깐 만나서 인사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것이 전부라서 활동에 큰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의 경주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두 분의 회원님을 처음 만난 이후 오늘은 두번째로 참석하는 자리였다. JTBC 마라톤의 규모와 명성에 비례하기라도 한듯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의 목표 달성을 빌어주었다. 이어서 짐 보관을 마친 후 출발지로 갔다.
풀코스의 경우 기존 달리기 기록이 있는 사람만 참가가 가능했는데, 나는 기존의 하프마라톤 기록을 제출했었다. 이렇게 제출한 기존 기록이 빠른 순서대로 A~F조로 구분이 되어 있었고, 각 조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출발을 한다고 한다. 오늘 참가자가 2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출발하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스스로의 능력에 맞추어 뛰라는 취지라고 했다. 나는 제일 마지막의 F조로 배정이 되어 있었다. 2시간의 하프마라톤 기록으로 가장 마지막에 출발을 하는 것만 봐도, 역시나 풀코스는 만만하지 않다는 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출발지점으로부터 F조의 집합장소까지는 꽤 떨어져 있었다. 출발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접수 이후에 있었던 6주간의 일을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진행했던 추가 접수가 우여곡절 끝에 확정된 순간, 대회까지 6주 밖에 남지 않아 당첨되고 나서도 걱정을 하던 모습, 장거리 훈련을 급히 진행하며 난생 처음 30km를 달린 날, 그 이 주 뒤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내친김에 풀코스 거리인 43km를 달려 완주에 대한 희망이 보였던 순간, 처음으로 1박 2일로 멀리 원정 대회를 참가해서 경주동아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완주한 기억, 이번 대회 전 이틀 동안은 카보로딩이라는 명목 하에 밥, 국수 등 탄수화물을 실컷 먹은 추억 등 평소와는 다른 경험을 많이 했다. 6주 동안 회사 업무로 인한 불가피한 약속을 제외하고 개인적인 약속은 최대한 잡지 않았고, 심지어 술은 한 잔도 먹지 않았다. 오늘 완주 후에는 맥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실 계획이다. 금주 이후 오래간만의 맥주 한 모금이 세포 하나하나로 퍼져 나갈 상상을 하며 그 동안을 버텨왔다. 경험과 시간이 부족하니 절제와 노력으로 메꿀 수 밖에 없었다. 도착지인 올림픽 공원에는 가족들이 응원을 나오기로 했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고, 사실상 반강제였지만, 끝나고 애슐리를 가자는 말에 부페를 좋아하는 아들 두 명은 군소리 없이 나올 것을 약속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지하철로 도착하는 것보다는, 장시간의 완주를 마치고 목적지로 골인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출발선에 섰다.
정각 8시가 되자 저 멀리에서 A조가 출발을 했다. F조가 모인 곳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장소여서 그 곳에서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사회자의 안내 음성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화이팅을 외치는 선수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응원객들의 함성은 여기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각 조는 4~5분 정도 간격을 두고 출발을 했기에 F조가 출발하기까지는 20분 정도가 더 남아 있었다.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러너들 머리 위로는 월드컵경기장과 월드공원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있었는데, 그 곳에는 응원의 물결이 넘쳐 흘렀다. 러닝크루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깃발을 흔드는 사람, 나팔, 응원봉 등 갖가지 응원용품으로 응원을 하는 사람, 화이팅을 외치는 사람들로 축제 분위가 물씬 났다.
D조까지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출발을 했고, 드디어 F조가 출발하는 순간이 되었다. 밀집되어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흩어지며 스타트라인을 통과하자마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4~5차로쯤 되는 차로 전체가 주로였지만,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편히 달리기에는 부족한 공간이었던지, 출발선에서부터 한 참 동안이나 정체구간이 계속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경사가 있는 짧은 언덕구간이 있었는데, 저 앞의 언덕 정상 부근까지 주자로 가득 찬 거리는 마라톤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달릴 공간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출발점에서부터 한 동안은 6분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마음 먹은 나는 서둘 것이 없었고, 내 페이스대로 달려가기로 했다.
초반은 약간의 오르막구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이한 구간이었다. 문제는 심박이었다. 6분 페이스로 달리면 존3 심박을 유지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내 심장과 훈련량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인 출발점부터 2km 되는 지점 정도까지만 존3 심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고, 2km를 지나면서부터 존4로 올라간 심박은 내려올 줄을 물랐다. 이러면, 존4, 존5로 대부분의 구간을 달려야 되는 것이어서,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지 불길한 느낌이 있었지만, 던져진 주사위는 어쩔 수 없었다. 나를 믿고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사람 수에 비해 주로가 좁을 정도라 자칫 잘못하면 옆사람과 부딛힐 뻔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심지어 여의도로 진입하는 램프 구간에서는 주로가 차로 두 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넘쳐 나는 러너를 감당하지 못해 상당한 병목 현상이 있기도 했다. 뛰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걸어가지도 못한 채 멈춰서 대기하는 구간이 있을 정도였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내 마음도 녹아내렸다.
여의도를 지나 마포로 향하는 서강대교로 접어들면서는 넓은 길을 만나서 다행히도 정체구간에 숨통이 트였다. 넓디 넓은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그것도 인도가 아닌 도로를 뛰는 것은 대회에서나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리를 건너자 마포-공덕-충정로로 이어지는 이번 대회의 1차 고비인 긴 언덕이 있었다. 대회 전에 미리 네이버 지도로 주로를 따라가면서 코스를 미리 본 적이 있는데, 3~4km는 됨직한 긴 오르막이 계속되는 곳이라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체계적으로 언덕 달리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주 1회씩은 서울대공원 호수길 산책로의 오르막, 내리막 구간을 달렸던 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언덕이 시작되기 직전의 10km 지점 급수포인트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오늘 첫번째의 에너지젤도 먹으며 마음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오르막 구간에 접어들었다. 초반의 기세로 잘 헤쳐나가나 싶었지만, 역시나 언덕은 쉽지 않았다. 언덕 초반에 같은 속도로 달리던 주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 시야에서 사라져 뒤처지는 것이 느껴졌고, 잘 버티는 것 같던 내 속도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0km 까지의 초반 정체구간에서 예상보다 시간을 까먹었던 나는 여기에서 더 처지면 오늘 완주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속도를 올렸다. 속도를 5분 30초 페이스까지 끌어올리며 오르막을 탁탁탁 올라갔다. 그러자 심박도 존5로 따라서 올라갔다.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이번 언덕만 지나면 한동안은 평지 구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언덕에서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까먹은 시간은 평지 구간에서 회복을 하는 것으로 해야 했었다. 언덕에서 올린 속도 때문에 나도 모르게 체력은 더 빨리 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긴 오르막을 뛰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 번 대회를 위해서는 긴 오르막 연습을 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충정로를 지나자 끝날 것 같지 않던 오르막이 드디어 끝이 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오르막 구간에서 걷지는 않았고, 덕분에 서소문 고가에서 시청을 향하는 내리막길에서는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서소문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청 앞 광장으로 접어들었다. 이곳에서부터 광화문까지는 긴 응원행렬이 계속되었다. 같은 러닝크루를 발견하자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 삑삑삑 호루라기를 부르는 사람들, 신나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돋구어주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면서, 올랐던 심박을 다소 가다듬어 보았다. 그러나 속도를 늦출 수는 없기에 530 페이스는 유지하면서 말이다. 축제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 사이, 주로는 오른쪽으로 꺾어져 청계천 주변을 크게 굽이 돌아 지나갔고, 이어서는 종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달린 거리는 15km를 넘어섰고,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구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530의 페이스는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인데, 얼마나 계속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종로 거리를 지나 동대문을 지났고,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계속해서 달렸다. 이곳에서는 동네주민들이 나와서 응원을 많이 한다. 힘내라고 박수를 쳐주시는 어르신들, 하이파이브를 외치는 어린 아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힘을 조금 더 내어본다. 여기서부터는 어느 커플을 따라가기로 한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계속해서 달리는 것을 보고 이들을 오늘의 페이스 메이커로 하기로 했다. 붙임성이 있는 성격이었다면 같이 가자, 힘내자 이렇게 말이라도 해봤을텐데, 그러지 못한 I성향의 나는 커플과 몇 미터 차이를 유지하고 이들 뒤에서 달려갔다. 5km마다 있는 급수대마다 놓치지 않고 물을 마셨지만, 11월치고는 더운 날씨에 몸은 점점 지쳐갔다. 어느덧 절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가까스로 하프 지점을 통과했다. 시계를 보니, 걸린 시간은 2시간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표했던 시간보다는 다행히 좋은 기록이다. 이 상태로 잘 달리고 후반에 스퍼트를 해서 정말 잘 풀린다면 4시간 이내로 완주를 하는 sub4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풀코스에 sub4라는 대단한 성취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검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고, 예상치 않은 순간에 어려움이 닥쳐왔다. 툭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뒤를 보니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에너지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돌아가서 주울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랬다가는 간신히 만들어 놓은 리듬과 호흡의 조화를 망쳐버릴 것 같은 생각에 그냥 지나쳐가기로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4개의 개수를 딱 맞춰서 가지고 온 에너지젤인데, 다행히도 30km 지점 보급소에서 에너지젤을 나눠준다는 대회안내를 봤던 것이 생각이 나서 떨어뜨닌 하나는 보급품으로 대신하면 되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잘못된 생각이었음은 레이스 후반에 알게 되었다.
어느덧 25km 지점인 군자역 사거리를 지나고, 어린이 대공원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잠실대교를 건너기 직전인 잠실대교 북단 부근에 도착했다. 페이스 메이커인 커플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한다. 그 동안 감사했다는 뜻으로 화이팅을 외치고 5분 30초 페이스를 유지한채로 잠실대교로 들어섰다. 잠실대교를 지나면 30km이고 여기에서 주최측이 주는 에너지젤을 하나 먹고 힘을 내자는 생각으로 한 걸음씩 내딛어 보았다. 높은 빌딩이 간간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잠실대교에는 높이 솟아오른 태양을 막아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리에 힘이 점점 빠지고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잠실대교를 건너, 보급소에서 물 한 잔을 들이키고 에너지젤이 어디있는지 찾아봤다. 물과 이온음료만이 놓여 있었기에 좀더 앞쪽 테이블에 놓여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계속 달리면서 테이블을 훑어보았지만, 놓여 있는 것은 여전히 음료 밖에 없었다. 조금 더 가면 있겠지 하는 생각에 보급품이 놓인 테이블을 눈으로 계속 뒤져 보았지만, 마지막 테이블에서도 에너지젤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27.5km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에너지젤을 먹고, 35km에서 보급소에서 나눠주는 것을 먹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보급계획이 완전히 엉켜 버렸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 15km를 오로지 비축된 힘만으로만 뛰어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체력이 급격히 소모되는 있는 마라톤 후반부에 에너지 보급이 없다는 것은 뭐랄까 한겨울에 반팔로 영하의 거리로 나가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매우 무모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잠실대교에서부터 잠실역까지는 무수한 응원행렬이 펼쳐졌지만, 응원의 함성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이미 다 먹어버린 빈 에너지젤을 주머니에 넣어두기는 해서, 혹시나 조금이라도 남은 것이 있을까 쪽쪽 빨아보았지만, 도움이 될 정도의 양은 아니었다. 힘든 마음이 몸에 반영이 된 듯, 다리는 무거워져만 갔고 속도는 점점 느려져 어느덧 6분 30초 페이스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잠실나루역 사거리 부근에서 스땡런 회원님이 콜라를 나눠주신다고 예고를 했던 것이 생각나 그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달리면서 콜라를 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달짝지근하고 짜릿한 탄산의 기운, 거기에 평소에는 먹으면 살찐다는 콜라가 오늘에는 오히려 힘을 내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예고되었던 지점에 콜라 부스가 성대하게 마련되어 있었고, 콜라 한잔을 들이킬 수 있었다. 콜라의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콜라로 응원해 준 우리 회원님께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종합운동장사거리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몸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페이스는 더 떨어져 6분 후반대를 향하고 있었다. 하프 지점을 통과할 때, 오늘 어쩌면 서브4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초보의 헛된 꿈이었던 것임이 판명났고, 이제는 좋은 기록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완주를 할 수 있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 발 한 발 떼는 것이 힘들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연습했던 호흡법을 잊은지는 오래고, 일단은 저 200미터 앞 쯤에 있는 건물까지만 달리자, 거기에 도착하면 조금 더 앞에 있는 편의점까지 달리자 이런 식으로 구간을 짧게 나누어 뛰어볼 뿐이었다. 다행히도 효과는 있어서 완주를 포기하지는 않았고, 삼전역을 거쳐서, 탄천1교까지 정말 간신히 올 수 있었다. 중간중간 응원객들이 나눠주는 레몬 조각, 물 한 모금이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기력을 회복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았다.
탄천1교에서부터는 남부순환로를 달리는 구간이다. 남부순환로를 따라서 수서IC까지 가게 되는데, 도로 위로는 그늘은 전혀 없는 구간이 계속되었고, 게다가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져서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레이스 최후반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35km지점인 수서IC까지만 어떻게든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골인지점까지는 아직도 10km나 남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져 가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걷는 사람도 제법 있었고, 뛰는 사람도 초반의 활기찬 기운을 잊은지는 오래인 것 같았다. 그 때 저 앞에서 누군가가 화이팅을 외쳤다. 비롯 큰 함성은 아니었지만 마치 파도타기와 같이 화이팅의 함성이 점점 뒤로 전해졌고, 나도 화이팅을 외쳐 보았다. 덕분에 기운을 내어 한 발 한 반 계속해서 뛰어 갔다.
어느덧 지금까지 35km를 뛰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붙어있는 수서IC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 양재대로로 합류하는 구간은 짧은 거리이기는 했지만 엄청난 경사로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짧은 램프구간의 커브길이 높이차가 20~30미터는 됨직한 남부순환로와 양재대로를 연결하고 있으니, 차로 가도 속도를 빨리 낼 수는 없는 곳이었다. 램프구간에서는 페이스가 다시 떨어져 7분 전후의 페이스가 표시되었다. 오르막을 간신히 올라 드디어 양재대로에 합류를 했다. 앞으로 7km만 더 달리면 골인인 것이다. 다행히도 여기서부터는 좀 더 힘이 났고, 그 덕분에 페이스도 6분 중반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앞으로는 오늘의 마지막 장애물인, 가락시장 지하차도에서 방이역까지의 길고 험한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스 예상도를 봤을 때의 마지막 힘든 구간이 드디어 등장을 한 것이다. 가락시장 사거리에서부터 이쪽 정면을 바라보면 끝없는 오르막이 펼쳐져 있다. 길은 얼마나 넓은지 왕복 10차로는 넘어 보이는 곳에 급한 경사의 언덕이 버티고 있으니 딱 보기에도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이곳만 넘으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보기로 했다. 뛰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여기에서 걷게 되면 다시 뛰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느리더라도 걷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급수대에서 물 마실 때 잠깐 섰던 몇 번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걷거나 멈추지를 않았는데, 나와의 약속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다. 역시나 마음 속으로 하나둘을 외치며 언덕을 올라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오르막 초입에서보다 중간, 그리고 후반으로 갈 수록 오히려 속도가 붙는 것이었다. 비록 5분대로 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6분 초반까지는 다시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분명 10분 전에 가락시장 앞을 통과할 때만 하더라도 더 이상 못 뛰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그 때부터10분이 지난 지금 다시 속도를 올릴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중간에 사점이라는 큰 고비가 있는데, 그것을 넘기면 다시 원래 페이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 때가 사점을 넘어선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마침내 언덕 정상에 도착을 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이고, 내리막이 끝나면 올림픽공원이 보이는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2킬로미터를 더 달리면 드디어 골인인 것이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고, 호흡도 그리 가쁘지는 않았다. 시계를 보니, 서브4는 이미 불가능했고, 정말 잘 달리면 4시간 10분까지는 가능할 것 같았다. 4시간 10분 00초와 4시간 9분 59초는 기분상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힘든 것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오늘 본 응원문구가 생각이 났다. 달릴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고 결승점에서 쓰러져도 괜찮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드디어 내리막이 끝났고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했다. 올림픽공원 인도변으로 엄청난 응원행렬이 있었다. '얼마 안 남았다' '힘내라' ‘화이팅’이라는 함성을 들으며 달렸다. 응원 함성을 들으면 기운이 더 날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기왕이면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응원행렬과 가까운 인도 쪽으로 코스를 바꿔서 달렸다. 페이스는 다시 5분대로 올라갔고, 심박은 190을 넘어가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여기에서 물러나면 후회가 클 것 같아서, 계속해서 발을 굴렀다. 사거리에서 골인지점까지가 2km 남짓이라고 했는데, 이 구간은 왜 이렇게 긴지, 달려도 달려도 끝이 안 보였다. 보일듯 말듯한 골인 지점이 그 순간 드디어 저 앞에 보였다. 케인던스를 높이며 있는 힘껏 힘을 내보았다. 도착지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응원 함성도 커졌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참가자들이 마지막 남은 힘을 1쏟아붓고 있었다.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으며 마침내 내 인생 처음의 풀코스 마라톤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 드디어 골인이다. 시계에서 알려준 기록은 4시간 9분 50초. 정말 간신히 4시간 10분 아래로 들어온 것이었다. 나중에 구간 기록을 확인해보니, 떨어졌던 속도는 38km 지점부터 올라가기 시작해서 마지막 1km 구간은 5분 페이스로 달렸던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최후반에 속도가 올라가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승점을 통과하면 감동에 북받혀 눈물이 쏟아질지도 모른다고 대회 전에 상상했었다. 창피할 수도 있지만 오늘 한 번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골인 지점을 지나고 나서는 의외로 담담했다. 뭐야, 이렇게 끝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한 심정이었다. TV에서 봤던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결승점을 통과하자 말자 바닥에 드러눕거나 심지어 토하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 정도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앞으로 이동하세요라는 관계자의 지시에 맞추어, 다른 참가자들과 줄지어 완주메달과 완주 기념품을 받았다. 응원나온 가족들을 만나서, 아빠 최고, 여보 수고했어의 기념사를 듣고 나자 그제야 완주의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 첫 풀코스 마라톤을 기분 좋게 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