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풀코스 마라톤 완주 그 이후

by 이태태

풀코스 마라톤을 처음으로 완주한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잘 하지 않았기에 어디 이야기할 만한 곳이 없었다. 뜬금없이 오래간만에 친구에게 연락해 마라톤 얘기를 꺼내는 것은 민망하기 그지 없을 것 같았다. 항상 겸손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부모님께는 이번 한 번은 자랑해도 되지 않나 싶었다. 부모님께 얘기를 드리니 깜짝 놀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라고? 니가 마라톤 완주를 했다는 말이냐.’ 학창 시절 체육을 지지리도 못했던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다고 하니 놀랄만도 하셨다. 부모님의 말씀은 이어졌다. ‘이것은 가문의 경사다.’ 아아,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그 만큼 놀라셨다는 것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시 나도 기뻣다. 그 동안 이것저것 많이 도와준 용용이, 훈이, 동동이형에게도 완주 사실을 알렸다.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같았다.


대회 다음 날 일어나니 다리가 뻐근했다. 대회 직후 며칠 동안은 걷는 것이 힘들 정도로 회복이 쉽지 않았다는 후기도 많이 봐서 몸 상태가 걱정이 되기는 했는데, 다리에 약간의 통증이 있는 것 외에는 다행히도 무사히 걸어다닐 수는 있는 정도였다. 풀코스 완주를 하면 몸무게가 통상 3kg는 빠진다고 한다. 대회 다음날은 휴가를 내고 하루를 쉰다는 참가자가 있을 정도로 풀코스 완주는 몸에 상당한 무리를 주는 것은 분명했다. 내 몸이 어떤지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가민 시계의 권장 휴식시간 부분을 확인했다. 대회가 끝난지 하루가 지났지만 색깔만으로도 위험상황이라고 느껴지는 붉은색이 떠 있었고, 4.5일 동안 쉴 것을 권장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몸의 상태와 비슷했다. 쉬지 않을 이유는 없었고, 1주일은 천천히 쉬어가기로 했다. 그 동안 고생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 아침에 운동하지 않고 늦게까지 자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고 말이다. 친구들이 저녁 약속에 불러준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갈 것인 기세였다.


그렇게 1주일을 잘 보내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8분 페이스의 느린 달리기였다. 달리는 와중에 그 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을 따져보니, 달리기 시작에서 5km를 달릴 때까지 2년 2개월이 걸렸고, 5km에서 풀코스까지 가는 것에는 다시 2년 2개월이 걸렸다. 풀코스를 달리기까지 총 4년 4개월이 걸린 것이다. 4년 4개월이라... 꽤 많은 시간이라고 느껴지는 숫자임은 분명했다. 그 시간이 지난 내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달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리는 것 자체가 그냥 좋았고, 긴 거리를 달리는 것도, 좀 더 빠르게 달리는 것도 좋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하는 것이면, 좀 더 잘 하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일년에 두 번,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씩 풀코스에 도전하겠다는 바램이 생겼다. 달리기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운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달리기가 나에게 준 것은 또 있었다. 비록 혼자 달리는 것으로 시작했던 달리기이지만 그 끝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내가 있었다. 훈이, 동동이형, 용용이, 모두가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이인 점을 알게 되니 한 번 더 이야기 하고, 한 번 더 만나고, 한 번 더 밥을 먹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달리기라는 끈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스땡런 회원님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누군가 궁금해하는 것이 생기면 어디선가 고수님이 나타나 경험담을 들려준다. 잘 달리는 분들은 실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조언을 주고 싶어하니, 싸움이 날 리도 없거니와 험한 말이 오가는 것을 본 적도 없을 정도였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이 달리기를 통해 맺어지고,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글을 쓰게 된 것도 달리기 때문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참 뒤에 달리기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원래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페이스북 글쓰기조차 안 할 정도로 글쓰기와는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고, 우연한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 버린 것이다. 달리기 할 때의 경험을 일기처럼 남겨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짤막한 글쓰기가 어쩌다 보니 장편의 글쓰기 프로젝트로 되어 버렸다. 하다 말다를 반복했던 달리기처럼 이 글도 쓰다가 말다가를 반복했었다. 그러다 결말을 내지 못하고 중간에 끝나버릴 것 같던 글쓰기였지만, 어느 순간 내 달리기가 5km, 10km를 넘어서 하프마라톤까지 가버렸고, 달리기 기운에 힘을 입은듯 내 글도 어느새 중반 이후를 달리게 되었다. 그 이후 어어 하다가 풀코스를 달리게 되었다면, 이 글도 쓰다보니 지금과 같이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마라톤에 빗대자면, 이미 42km를 달리고나서 저 앞에 보이는 골인지점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하려는 순간이 글쓰기의 지금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달리기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 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람들과의 인연, 글쓰기 모두 뭔가 해야겠다고 미리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달리기와 함께 흘러가다보니 생긴 것들이라, 미래에 어떤 일을 만날지,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를 노릇이다. 내일의 달리기가 나를 어디로 이끌어줄지가 궁금해진다. 세계 6대 마라톤(이제는 시드니 마라톤이 추가되어 7대 마라톤이 맞는 표현인 것 같다)에 도전하겠다는 결정을 내릴지도 모르고, (그럴 가능성은 아주아주 낮겠지만, 아니 사실상 없겠지만) 이 글이 출판되어 더 많은 독자들을 찾아가고, 혹시라도 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내가 달리기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기록을 단축하고, 그래서 서브4 주자, 서브3 주자가 되는 것일까? 물론 나도 이들과 같은 잘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것이 궁긍적인 목표는 아닌 것 같다. 달리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아닌가? 천천히 오래 달리다 보면, 좋은 기록을 세울 수도 있는데 마음을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사 좋은 기록을 못 세우더라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우면 된 것 아니겠는가.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던 처음 그 때로 다시 돌아가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보일 것 같았다. 기록을 단축하고, 많이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뛰는 것 자체가 내 인생에 빛을 주던 그 때의 마음을 간직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빠른 주자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즐겁게, 그리고 부상 없이 달리기를 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최근 달리기를 시작한 아내와 함께 전국의 이곳저곳 대회를 참가하며 우리나라 곳곳을 구경하고, 행여나 기회가 된다면 해외의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해 그곳의 달리기 문화를 느껴보고도 싶다. 물론 달리기가 내 생활의 전부는 아니기에 생업을 잘 유지하면서 간간이 시간을 내어 말이다. 일상을 잘 유지하면서 짬을 내어 달리기를 하는 나, 내일 아침의 달리기와 몇 달 뒤에 있을 대회에서 일어날 멋진 일들을 상상하면서, 역시 달리기를 하기를 잘 했어라고 할 수 있는 나를 생활러너로 부르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생활러너로서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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