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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Jan 04. 2022

학생 같아서 그랬어

학생한테는 그래도 되는 거예요?

오늘은 한 아르바이트 어플 광고의 카피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엄마한테 손 벌리면 멋이 없잖아."

Money 찬양송을 부르며 춤추는 영상 속 댄서들은 나에게 '이 빌어먹는 자식 주제에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말이야'라고 구박하고 있었다. 이제와 변명하자면, 즐거운유목민이라는 나의 닉네임은 나의 현재 상태가 아니라 나의 지향점이다. 유목민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부모님한테 빌어먹고 사는 인간인 것이다. 오늘 본 광고를 계기로 나는 급히 나의 쓸모를 찾아 내 머릿속을 더듬었다. 다행히 하나 생각이 났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인간이다.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자주 가는 산책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초록색 울타리 너머로 매우 가까운 음성이 들렸다.

"야, 춥겠다. 얼른 집으로 빨리 들어가!"


나는 귀신의 음성을 들은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급히 돌아보았다.

"그래 너 말이야!"


초등학교 울타리 안쪽에서 뒤늦게 퇴근하던 초등학교 교사인 듯했다. 

"어, 저 낼모레 서른인데요?"

"어머 학생인 줄 알고. 요즘 눈이 안 좋더니. 하하. 죄송합니다."


꼭 그 교사의 눈 건강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집으로 하교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의 신장은 내 신장과 비슷했고, 목소리는 하이톤이니 동네 식당에 들어가면 꼭 나한테만 그렇게 반말을 한다. 나보다 살짝 어린 친구들한테는 존경 어미를 꼬박꼬박 붙이면서.


"어머, 학생 같아서 그랬어. 미안해요."

도대체 학생이란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길래 반말을 로봇처럼 툭 던져도 괜찮은 걸까. 어린 학생들은 구매력이 낮아서 반말을 해도 되는 걸까. 근처의 어린 학생들이 들을까 겁이 났다.  요즘 세상은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당연하게 하찮은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어린 학생, 신입생, 군대 후임, 갓 들어온 신입 사원 등. 소중한 인간들이 한 인격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그들의 엄청난 능력과 매력이 편견 속에 갇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의 얼굴에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초등학생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고, 박사 과정 학생으로도 오해받은 적 있었다. 동안 vs 노안 프레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부인 같은 느낌을 풍기는 외모랄까. 그래서 외부인에게는 친절하지만 내부인을 하찮게 대하는 사람들을 판별하는 일은 내게는 쉬운 것 같다.


한영이 곤란해하며 횡단보도를 건너자 어떤 아저씨가 대신 들어주기까지 했다. 친절해. 사람들은 친절해.
 그게 거짓말인 줄은 알고 있다. 고장 난 트렁크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집에 가면 자기 가족에게 어떤 얼굴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異景) 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피프티 피플> 중 강한영. 90페이지.


요즘 학교폭력 증거 수집 아르바이트의 급여가 꽤 괜찮다고 들었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 싶다.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연구는 산책하면서 끝냈으니 이제 초등생들의 언어생활을 연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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