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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Mar 09. 2022

나, 인정받고 싶었구나

자존감의 원천

 만약에 내가 중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딴짓'을 많이 하고 싶다. 내신 시험과 고등학교 입학시험과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하고 싶다. 몇 달 전의 나에게 같은 질문을 물어봤다면 비슷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다만, 불확실한 어투로 말했을 것이다. "'아마도' 딴짓을 하고 싶지 않을까? 그래도 시험 성적은 어느 정도는 좋아야 하지 않을까?" 시험 성적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몇 달 전까지도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때의 나에게 중학생 나이의 자녀가 있었다면 공부도 어느 정도 잘해야 하면서 하고 싶은 일도 찾아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자녀에게 강요했을 수도 있겠다.


 초, 중, 고, 대학교에서 딴짓을 해본 적이 별로 없으니 일상도, 아는 것도 교과서 안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교과서 공부가 아니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좋은 평가를 듣는 것, 좋은 집단에 편입되어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가가 끝나자 내가 그나마 갖고 있던 지식은 알코올처럼 모두 증발해버렸다. 'A+', '수' 평가를 받은 과목들 중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지식은 얼마나 될까. 최선을 다하고 '좋은 사람', '훌륭한 작품', '가능성 있다', '우수하다'라는 칭찬을 받은 며칠 뒤에는 허무함을 느끼고 계속 공부하게 할 동기가 사라진다.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여왔다.


 시험형 자기 주도성은 자기 부재 상태에서 작동한다. 자신에 관한 분명한 개념이 없다면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 일환으로 아이들은 높은 성적을 받는 것에 온 열정을 쏟는다.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 관한 고민은 결코 석차와 성적으로 환원할 수 없다. 인내심으로 성실히 공부해 우수한 학업 성취를 거머쥐었어도 결국 미뤄온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다.
-<아이에게 동사형 꿈을 꾸게 하라>, 이광호 지음


 내 자존감의 원천은 남의 인정과 평가였으니, 자존감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최근에 본 한 Ted 강연은 자기 자비(self-compassion), 즉, 소중한 타인을 대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요즘에 와서야 성적이 좋지 않아도, 인정을 받지 못해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휴식을 길게 취해도 나는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겨우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자 여유가 찾아왔고,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을 읽고, 글을 쓰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시도하고 있다.


 나, 인정받고 싶었구나.

 힘들었겠다.

 변덕 심한 바깥에서

 인정받으려고 애쓰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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