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을 방해하는 것에 대하여
엊그제 큰 마음을 먹고 통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집전화와 TV 해지 신청을 했다. 어제 아침에 연락해 달라고 예약했지만 어제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전화가 온다. 저녁을 먹고 있어서 귀찮았지만 해지를 미룰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통화를 계속했다.
"tv를 볼 시간이 없어서 해지 신청했어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고, 보고 싶은 콘텐츠는 OTT 플랫폼이나 유튜브에서 내 취향에 맞게 골라 본다. 그래서 편성표를 찾는 시간과 콘텐츠를 기다리는 시간을 요구하는 tv는 이제 나에게 맞지 않았다. 최근에야 귀중해진 내 시간을 tv 따위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5년 이상 사용하셔야 장비 임대료가 면제되는데 현재 실사용 년수가 1년 반밖에 되지 않아서....."
분명히 몇 달 전에 고객센터에 전화했을 때는 해지 시 물어야 할 돈이 없다고 안내했다. 그런데 막상 해지 신청을 하니 장비 임대료라는 함정을 나에게 안내한다. 셋톱 장비 교체한 지 5년이 훌쩍 넘어가는데 실사용 년수는 무엇을 의미하고 1.5년은 어떤 공식으로 계산된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더 이상 tv에 내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로 했다.
"괜찮아요."
1.5년 동안의 장비 임대료가 아까워서 3.5년 보지도 않을 TV 요금을 내는 것이 더 낭비인 것 같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더 이상 본전에 발목 잡히지 않기로 결심한 나였다.
수십 년 동안 나의 시간을 잡아먹던 tv 셋톱박스는 이렇게 단 몇 분만의 작은 실랑이(?)로 허무하게 떠났다.
결심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행동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