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유목민 Dec 26. 2021

나는 언제나 과식을 해왔다.

맹목적 인내 끝 열매에는 맹독이 가득하다

나는 주머니에 항상 소화제를 들고 다닌다. 과식으로 체해 토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알약 소화제가 한 줄 정도 남으면 모든 일정을 미루고 약국에 들어가 소화제를 살 정도이다. 과식으로 영양을 흡수하지 못했던 탓일까. 사람들은 내가 먹는 양에 비해 너무 말랐다고 한다. 몇 주전 체중 미달로 헌혈을 거절당했을 때까지 나는 이를 실감하지 못했다.


"즐거운유목민님은 과식 안 하게 생기셨는데 의외네요."

"본인이 왜 과식한다고 생각하세요?"


최근에 과식하다 구토한 일을 털어놓자,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그동안 과식해왔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서였을까. 나는 왜 나에게 이 간단한 질문을 여태까지 해 본 적이 없었을까.


"음식을 먹기 위해 낸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잠도 못 자고 토만 하면 더 먹는 것이 손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짧은 진료 시간에 맞추기 위해 처음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너무 돈 없는 사람처럼 대답했나. 그래도 솔직한 대답에 만족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이론은 나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다니며 푼 어떤 언어 영역 지문은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다뤘다. 예시도 하필 식사였다. 처음 먹을 때는 한계 효용이 높다가 나중에 아플 때까지 먹으면 한계 효용이 음수로 변한다는 예시였다. 대학 전공 시간에 매몰 비용의 개념에 대해 공부하고 심지어 시험도 봤다. 


"으이그. 참다 참다 한 번에 먹으니까 그러지. 평소에 맛있는 거 먹고 좀 살아."

비전공자인 엄마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맹목적 인내 끝 열매에는 맹독이 가득하다. 

그 독의 이름은 '본전과 허무'다.


이제 나는 정신을 차리고 소화제를 끊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에는 보너스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