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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Mar 22. 2022

우리의 발자취

시작, 포기, 그리고 시작

 어제도 물건 놓아주기 도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점점 높아지는 목표치를 달성해야 하다 보니 이제 내 물건을 넘어 집안의 다른 물건에도 내 손길이 닿기 시작했다. 탁자 밑 무엇이 있는지조차 몰라 물건을 다 꺼내 놓았다. 누군지도 모를 누군가의 명함과 함께 누나가 다녔던 대학원에서 온 우편물도 있었다. 하나는 합격 통지서와 임시 학생증이었고, 또 하나는 석사 과정 취소에 대한 우편물, 그리고 대학원에서 빌린 책에 대한 연체료 및 수수료 계산, 미반납 시 변상 방침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대학원생이었던 누나의 발자취를 보는 것 같았다. 누나는 타지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았는데 당시 석사 논문으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휴식을 위해 집에 와도 누나는 마음 놓지 못하고 통과하지 못한 논문을 수정하며 울고 있었다. 다른 가족한테는 얘기하지 말라는 누나의 부탁은 당황스러웠다. 끝내 동생 앞에서 석사 과정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뚝뚝하고 눈치 없는 동생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나는 석사 과정을 밟은 곳에서 취업해 여전히 타지 생활을 하고 있다. 누나에게 톡을 보내자 누나는 학교에서 온 건 다 버려도 괜찮다고 말했다. 누나에게 위임을 받은 나는 서류 더미를 나와 누나에게서 놓아주었다. 


나도 오랜만에 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입사 지원서를 보았다.

아직 흔들렸다.

물건 놓아주기가 끝나고 노트북과 클라우드 저장소 속 잡동사니 놓아주기도 바로 시작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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