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웃으며 만나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

by 기억의 틈

요즘 나는 튀긴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기름진 유혹을 줄이고, 건강을 챙기려는 작은 다짐 덕분이다.

사실은 치킨 때문이다.


한때 나는 자타공인 ‘치킨 중독자’였다.

일주일에 4일은 치킨을 먹었다.

야식, 회식, 혼밥, 기분 좋을 때, 기분 나쁠 때......

치킨은 늘 나의 곁에 있었다.


그때의 나는 치킨을 먹기 위해 살아가는 듯했고

지금의 나는 치킨을 참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날은 괜찮다.

샐러드도 맛있고, 구운 연어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말

가끔은......

치킨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날이 찾아온다.

마치 치킨 100마리가 내 앞을 가로막고 싸움을 거는 듯하다.

“먹어!! 받아들여!! 우린 네 일부야!!!”


그럴 땐 진심으로

나는 나 자신과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인다.

먹을 것인가, 참을 것인가.

인생의 아주 큰 결정을 눈앞에 둔 것처럼 고민한다.


그리고 간신히 참아낸 날에는

수많은 감정이 밀려온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한 번쯤 먹는다고 건강이 무너지진 않잖아?"

"내가 나를 너무 괴롭히는 건 아닐까? “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의 바닷가 근처

기대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나는 ‘그것’을 만났다.


황태강정.



사실 황태강정도 튀긴 음식이다.

바삭하게 튀긴 황태에

매콤 달콤한 양념이 입혀져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걸 먹을 땐 죄책감이 없다.

기름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살도 찌는 것 같지 않다.


그저 담백하고 정직한 바삭함.


내가 그토록 원하던 바삭함이 거기 있었다.

치킨 대신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내 인생 최고의 만남이었다.

게다가 이 황태강정은

그냥 가까운 곳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강원도까지 가야 한다.


기다림과 절제 끝에 얻은

조용한 행복이다.


쉽게 도달할 수 없기에 더 귀하고

바삭하지만 묵직하게 위로해주는 그 맛.


치킨 100마리와 싸우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날

‘황태강정’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괜찮아.

아직 너한텐

내가 있잖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잘 참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황태강정'을 찾아 위로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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