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눈이 올 줄 몰랐지...... 3월에

by 기억의 틈

세차를 했다.

그리고 눈이 왔다.

그것도 펑펑.

......이라고 하면 너무 허무하니까 조금만 더 얘기해 보자.


그날 아침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오늘 세차하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차가 꽤 더러웠고

날씨 앱엔 눈 올 확률 0%라는 아주 든든한 숫자가 쓰여있었다.

심지어 그 숫자를 보고 나는 살짝 감동까지 받았다.


세차는 손세차 업체에 맡겼고

우리는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며칠째 미루고 있던 신혼여행 호텔 예약을 드디어 하기로 했다.


우린 스위스로 트레킹을 가기로 했는데

산속에서 묵을 숙소는 빨리 예약하지 않으면 진짜 금방 마감된다.

알면서도 계속 미뤘던 걸 오늘은 하자고

그렇게 노트북을 펼쳤다.


날씨도 맑고, 카페도 조용하고

차도 곧 깨끗해질 예정이고.

“오늘은 꽤 생산적인 하루가 되겠는걸?”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할 무렵

세차 완료 문자가 도착했다.


우린 카페를 나섰고

그 순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냥 스치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하얘질 만큼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방금 세차한 차는

눈꽃 코팅이라도 된 듯

새하얀 점들로 빠르게 뒤덮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바라보다가

아내가 휴대폰을 꺼내 날씨 앱을 다시 확인했다.

“...... 지금도 ‘화창’이라고 뜨는데?”

그 말이 떨어지자

둘 다 터져버렸다.


억울한데 너무 억울해서

결국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눈 맞은 차를 다시 타고 돌아오는 길

괜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신혼여행 전 미리 해보는 ‘리허설’ 일 수도 있겠구나.


신혼여행을 가서도

예보는 맑음인데 갑자기 비가 쏟아질 수도 있을 테니까.


미리 계획했던 호텔이 문을 닫을 수도 있고

길이 막히거나, 신발이 젖거나, 커피가 식을 수도 있고.

그때도 오늘처럼

“이럴 줄 몰랐지…” 하며 웃고

길이 미끄러우면 조심히 걷고

젖으면 젖는 대로 흘러가면 되는 거다.



예보는 예보일 뿐.

언제 눈이 올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저 웃을 준비만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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