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H(오프온오프)

집에 들어왔지만 들어오지 못한 날

by 기억의 틈


오프온오프(BAHT)


나는 이 노래를 자주 듣던 시기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습관처럼 재생하던 노래였다. 사람들 사이를 별생각 없이 걸으며 듣던 그 노래는 그때의 나에게 그저 멜로디가 좋은 듣기 편한 음악이었다. 특별히 마음을 건드리는 가사라기보다는 하루의 끝에 무난하게 흘려보내기 좋은 배경 같은 존재였다.


집에 도착한 날들 중에는 신발 하나를 벗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현관에 그대로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불이 꺼지면 다시 손을 휘저어 켜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그 짧은 시간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어폰에서는 여전히 노래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 가사를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듣고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문장을 그때는 그냥 흘려보냈다.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어떤 상태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지지 않던 시간.


그래서였을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시간을 쉽게 끝내지 못하고 현관에 조금 더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그 짧은 반복 속에서 나는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고 동시에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이 단순한 쉼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그 노래를 좋아했던 이유를. 그때의 나는 이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노래는 이미 그때의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걸. 설명할 수 없던 감정과 대신할 수 없던 상태를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두고 있던 나를. 내가 붙잡지 못한 감정들을 이 노래는 먼저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한다. 좋아서 듣는 노래라기보다 지나온 어떤 시간을 조용히 증명해 주는 노래라서. 다시 들을 때마다 감정이 새롭게 생기는 게 아니라 이미 지나간 어떤 순간들이 다시 또렷해지는 노래라서.


아마 이 노래는 감정이 분명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잘 닿는 노래일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계속 허전하고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남아 있는 사람. 그 상태를 말로 꺼내지 못한 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는 어느 순간 그 시간을 대신 설명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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