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그어주던가(1415)

확신보다 가능성을 선택하는 시대의 사랑

by 기억의 틈
1415(선을 그어주던가)

최근 나는 연애 프로그램 나는 SOLO를 보며 이상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분명 서로 호감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도 관계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웃고 있고, 누군가는 설레고 있지만 그 감정은 끝내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다. "조금 더 알아보자"는 말,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태도 그리고 애매하게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이 장면들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을 그어주던가라는 노래가 겹쳐진다. 이 노래는 특별히 극적인 서사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현실적이다. 금요일 약속을 앞두고 무슨 말을 할지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상대를 보내는 이야기. 이 담담한 흐름 위에 얹힌 멜로디는 과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일정한 온도로 흘러간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감정에 휘말리기보다 그 상황에 조용히 머무르게 된다.


특히 이 노래의 힘은 가사에 있다. "너의 발을 맞추려 할 때마다 넌 빠르게 걷는 걸 느껴"라는 구절은 물리적인 장면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관계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나는 맞추려 애쓰지만 상대는 이미 앞서가고 있다는 감각. 그 미묘한 어긋남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결국 도달하는 문장 "잡던가, 손을 주던가." 이 짧은 문장은 이 노래를 단순한 감성적인 곡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만든다.


이 질문은 곧 우리가 지금의 연애에서 마주하고 있는 구조와 닿아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확답을 피하게 되었을까. 왜 "좋아한다"는 말보다 "조금 더 알아보자"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사랑을 '결단'의 영역으로 두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연애가 어느 순간 결심과 선택을 통해 관계를 규정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연애는 그 결정을 최대한 늦추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유지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기보다 가능성을 관리한다.


이 지점에서 '가능성'은 하나의 전략처럼 작동한다. 한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은 사라지지만 선택을 미루면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나는 SOLO 속 출연자들이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여러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은 이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누구도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상태. 그 애매함은 때로는 신중함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단의 유예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선택을 미루는 사람과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비대칭이 생긴다. 그리고 그 비대칭 속에서 관계는 점점 더 불확실해진다. 이때 선을 그어주던가는 그 불확실성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붙잡는다. 격한 감정도, 극적인 고백도 없이 그저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며 느끼는 거리감. 그리고 그 끝에서 겨우 꺼내는 말, "선을 그어주던가."


그래서 이 노래는 특정한 상황에서 특히 선명해진다. 관계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상대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을 때 혹은 스스로도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이 노래는 그 상태를 설명해 준다.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감정을 정확히 짚어준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게 되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끝내 듣지 못한 말을 음악 속에서는 또렷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더 이상 쉽게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대에 이 담담한 멜로디와 솔직한 가사는 오히려 더 강하게 남는다.


확신보다 가능성을 선택하는 시대. 그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가 선을 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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