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보다 가능성을 선택하는 시대의 사랑
최근 나는 연애 프로그램 나는 SOLO를 보며 이상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분명 서로 호감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도 관계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웃고 있고, 누군가는 설레고 있지만 그 감정은 끝내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다. "조금 더 알아보자"는 말,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태도 그리고 애매하게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이 장면들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을 그어주던가라는 노래가 겹쳐진다. 이 노래는 특별히 극적인 서사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현실적이다. 금요일 약속을 앞두고 무슨 말을 할지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상대를 보내는 이야기. 이 담담한 흐름 위에 얹힌 멜로디는 과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일정한 온도로 흘러간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감정에 휘말리기보다 그 상황에 조용히 머무르게 된다.
특히 이 노래의 힘은 가사에 있다. "너의 발을 맞추려 할 때마다 넌 빠르게 걷는 걸 느껴"라는 구절은 물리적인 장면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관계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나는 맞추려 애쓰지만 상대는 이미 앞서가고 있다는 감각. 그 미묘한 어긋남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결국 도달하는 문장 "잡던가, 손을 주던가." 이 짧은 문장은 이 노래를 단순한 감성적인 곡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만든다.
이 질문은 곧 우리가 지금의 연애에서 마주하고 있는 구조와 닿아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확답을 피하게 되었을까. 왜 "좋아한다"는 말보다 "조금 더 알아보자"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사랑을 '결단'의 영역으로 두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연애가 어느 순간 결심과 선택을 통해 관계를 규정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연애는 그 결정을 최대한 늦추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유지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기보다 가능성을 관리한다.
이 지점에서 '가능성'은 하나의 전략처럼 작동한다. 한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은 사라지지만 선택을 미루면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나는 SOLO 속 출연자들이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여러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은 이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누구도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상태. 그 애매함은 때로는 신중함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단의 유예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선택을 미루는 사람과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비대칭이 생긴다. 그리고 그 비대칭 속에서 관계는 점점 더 불확실해진다. 이때 선을 그어주던가는 그 불확실성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붙잡는다. 격한 감정도, 극적인 고백도 없이 그저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며 느끼는 거리감. 그리고 그 끝에서 겨우 꺼내는 말, "선을 그어주던가."
그래서 이 노래는 특정한 상황에서 특히 선명해진다. 관계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상대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을 때 혹은 스스로도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이 노래는 그 상태를 설명해 준다.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감정을 정확히 짚어준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게 되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끝내 듣지 못한 말을 음악 속에서는 또렷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더 이상 쉽게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대에 이 담담한 멜로디와 솔직한 가사는 오히려 더 강하게 남는다.
확신보다 가능성을 선택하는 시대. 그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가 선을 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