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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ul 24. 2019

그걸 안 사온 내가 너무 싫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나 작은 실수로 내가 싫어지는 어느 순간 이야기 1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실수,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사소한 사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벌인 돌이키고 싶은 잘못.

완벽한 사람이지 못해서 만들어내는 어처구니없는 판단의 오류.

그로 인해 계획과 소망이 어그러지면 나에 대한 실망감이 몰려옵니다.

고요하던 마음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나 자신이 싫다 못해 미워지기도 하는 순간들.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바보, 멍충이! 그걸 안 샀어?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먹거리나 일상용품을 위한 장보기를 싫어한다.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싫지 않았는데 주부로 사는 세월이 늘어갈수록 장보는 것이 점점 더 싫어진다.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인들이 제법 많은 도시 근처에 살고 있어서 집에서 인근 도시의 한인 마켓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바로 옆 도시에 있는 마켓인데도 잠깐 고속도로를 타야 하고 도로에서만 오고 가느라 한 시간을 버리는 것이 싫어서 인근 도시에 나갈 일이 있는 날을 찾아 장을 봐온다. 

일주일치 식단을 위한 재료를 사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그 도시에서 일을 보고 오는 길에 들르는 것이건만 장을 보러 가는 일은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뤄둔 숙제처럼 나를 압박한다.

아마도 이번 주에는 무엇을 해먹을지, 도시락은 무엇을 싸야 할지 메뉴 고민을 하며 항상 고만고만한 식재료가 있는 마켓 안을 빙빙 돌면서 식단을 짜내야 하는 과정이 버겁기 때문에 더 그러한 듯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별다른 게 살게 없어서 이번 주도 어떻게든 먹고살겠지 생각하며 결국은 비슷비슷한 것들로 쇼핑 카트를 채운다.   


억지춘향으로 장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혹은 집에 돌아와서 물건을 정리하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하는 때가 있다.

아차, 깻잎을 안 샀네.

아, 그거 산다고 하고는 깜빡했네.

별것 아닌 깻잎이나 새우젓 한 가지인데 생각해둔 한 주 동안의 먹거리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것들이고 동네에 있는 미국 마켓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일 때는 매우 난감하다.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다음 날 시간을 내어 다시 마켓에 들를 수도 있건만 고깟거 한 개 못 사 온 것에 안달이 나고 나의 건망증에 분노가 치민다. 

어찌해야 할까 망설이는 차 안에서, 또는 장바구니를 뒤적이며 분노의 궁시렁을 쏟아낸다.


에구, 바보 멍충이 같으니라고. 

아까 깻잎 사야지 해놓고 깻잎 옆을 지나친 것이 생각난다.


네가 새우냐? 눈이 멀었냐? 뭔 생각을 한 거야?

새우젓을 사야 한다고 며칠을 생각해놓고 서둘러 장 보느라 잊은 것이 한심하다. 


도대체 왜 자꾸 까먹냐고, 응? 이 한심한 건망증!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산같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스스로를 한참 구박하고 나를 실컷 미워한 후에야 깻잎이 필요 없는 다른 반찬을 생각하거나 내일이나 모레 다시 마켓에 들러 새우젓을 살 수 있는지 궁리를 한다.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나 메모지에 장 볼 목록을 적곤 하는데도 이런 실수 후 자신에 대한 폭풍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가 가끔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 실수의 정도에 비해 나에 대한 화의 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파 한단이나 고무장갑 한 켤레, 간장 한 병을 잊은 것 때문에 스스로에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묘하게 강력하다.

그것 때문에 되돌아가야 하는 길이, 내일이나 모레 다시 마트에 가야 하는 일이 엄청난 재앙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스스로를 구박하며 화를 내고 있다.


지나고 보면 그것 대신 다른 것을 먹을 수도 있고 조금 불편해도 참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데 빼먹고 온 물건 때문에 나 스스로를 못살게 굴고 있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깻잎이나 파 한 단, 새우젓이나 간장 한 병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내가 가엽고 처량해서 웃음이 난다.

소풍아, 너는 깻잎 밭 전체보다 소중해. 바다에 있는 모든 새우보다 중요한 사람이야.

괜스레 서글픈 마음이 들어 엉뚱한 생각으로 나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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