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Aug 02. 2019

어느 날, 냉장고에서 핸드폰을 발견했다면...

날마다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어느 순간 이야기 1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먹는 것은 바로 '나이'입니다.

성장을 의미하던 나이 드는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는 늙어가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장이 멈춘 어른들은 바로 그 늙어가는 나이를 먹게 됩니다.

날마다, 매시각 늙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평소에는 잊은 듯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또는 사소한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내가 늙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늙었나 보다'라는 생각에 화다닥 놀라는 순간들.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아이들 키우면서 아줌마들과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꼭 나오는 화제가 있다.

서로의 건망증에 대한 하소연이나 실수담이 그것이다.

가끔은 누가 얼마나 더 심각한 건망증으로 인한 실수를 범했는지 건망증 자랑 대회가 벌어지기도 한다. 

듣다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서로의 실수에 공감 가득한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나도 수시로 깜빡증을 보이는 심각한 아줌마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고작 아이 둘인데 두 아이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이 다반사에 수시로 열쇠를 찾느라 가방을 다 뒤지고, 핸드폰을 찾느라 남편과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어느 주말 저녁, 식사가 끝나고 상을 치우면서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나는 반찬을 넣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연 냉장고의 수박이 담긴 통 위에 매우 익숙한 네모나고 납작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뭘까?’라는 0.3초 간의 생각 뒤에 그것이 내 핸드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핸드폰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냉장고에서 핸드폰을 꺼냈는데 아주 차가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핸드폰을 냉장고에 넣은 기억은 없었다. 

"여보, 이게 왜 여기 있지?"

돌아보며 묻는 나를 보던 남편이 나 만큼 동그레진 눈으로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쳐다봤다.

"욤이야, 네가 엄마 핸드폰 냉장고에 넣었지?"

가끔 뜬금없이 장난을 치는 장난꾸러기 아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아냐, 안 했는데."

반응을 보니 아들이 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냉장고에서 핸드폰을 발견한 것이나 내가 냉장고 안에 핸드폰을 넣었다는 것보다 그것조차 기억 못 하는 나 자신이 더 당황스러웠다. 

차라리 이것이 아들의 장난이었더라면 싶었다.

냉장고에서 핸드폰을 발견했을  때, '이것이 무엇일까?' 싶었다. 





다른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면서 누가 핸드폰이나 지갑을 냉장고나 세탁기에서 발견했다고 했을 때, 나는 나의 건망증이 아직 그 단계까지 이르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 같이 웃음을 터뜨리며 지인들을 위로했었다.

그런데 나도 이제 그 수준의 건망증에 다다를 만큼 나이를 먹고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아… 내 아줌마 건망증이 드디어 이 단계까지 왔구나.’ 


남편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며 헛웃음을 지었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함께 배를 잡고 웃었지만, 나는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둥지를 튼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다음에는 냉장고 안에서 어떤 물건을 발견하게 될까?”

농담 삼아 이야기하면서 나는 내심 다시는 냉장고 안에서 냉장고에 없어야 할 물건을 발견하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며칠 뒤, 친구들을 만났을 때 핸드폰을 냉장고에서 발견한 나의 실수담과 나의 심정에 대해 하소연하였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친구들은 자신과 지인들의 더 많은 건망증으로 인한 실수를 들려주며 나를 위로했다.

서로의 실수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실수를 들려주며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 위로가 되었다.


언제까지나 우리의 깜빡거리는 증상이 귀여운 건망증 정도로 넘길만한 것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핸드폰을 바라보니, 친구들과 실수담을 나누며 함께 웃고 자신의 실수담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 만큼 곱게 나이를 먹어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걸 안 사온 내가 너무 싫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