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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un 02. 2020

수많은 트럼프가 존재하는 미국, 트럼프들의 나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트럼프들에게 최고의 대통령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나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부유한 경제력을 소유한 살기 좋은 나라.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미국에 와서 살기 전까지는.

그러나 미국은 살면 살수록 떠나고 싶어 지는 살기 어려운 나라임을 체험한다.
백인도 아니면서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평등과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나라임을 깨닫는다.



 

일주일 전 미국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백인 경찰의 무릎 압박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갑을 채웠음에도 바닥에 엎드려 뜨려 숨을 쉴 수 없다는 조지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은 결국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격렬한 시위가 시작되었다.

날이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한 시위대는 마침내 방화와 약탈로 다른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주말에 이르러 자각 있는 시민들과 선의를 가진 경찰들의 지혜로운 행동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이해와 화해의 분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살얼음을 걷는 정국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 가운데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국민인 시위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보다, 다음 대권을 위한 코로나 정국 돌파의 방편으로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언행을 노골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포방하는 부유한 선진국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오래된 인종차별과 경제적 논리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불평등이 산재하는 나라다.

보험료를 부담해주는 직장이 없으면 개인적으로 보험에 들 수 없을 만큼 보험료가 비싸고, 보험이 없으면 진료비가 너무 비싸서 병원에 갈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은 미국이란 나라의 오래된 흑백 갈등이 다시 화두가 된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피부색으로 인한 불이익뿐 아니라 능력과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명과 건강 문제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미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방화와 약탈로 다른 시민의 터전을 파괴하는 시위대를 보면서 그들은 단순히 인종차별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국민을 돌보지 않는 국가의 무책임에 대해 분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과 방화 그리고 약탈은 결코 옳은 행위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난 민심과 억눌린 울분으로 가득한 시위대를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트럼프가 취한 행동과 그의 압박에 통행금지령을 비롯한 강압적인 대응에 나서는 주정부의 대처는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선택인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정치적 기호나 색깔은 각자의 선택과 가치관에 따른다.

미국인들의 선택을 통해 기업가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SNS나 인터뷰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쏟아내거나 어제 자신이 한 이야기를 오늘 뒤집는 해프닝을 벌여도 그는 여전히 대통령으로서 건재하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극히 편파적인 시각과 부유한 백인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국민의 생명이 달린 상황에 농담을 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비약함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여전히 지지자들이 있다.


이것은 미국에 수 없이 많은 트럼프들이 존재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미국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너그러운 미국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트럼프들 앞에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폄하하고 멸시했던 타인종이나 다른 나라에 대해 양심의 가책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 주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닌 척 숨기고 살았던 미국 백인들의 우월주의와 이기심을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고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환호했다.

그동안 평화주의자와 박애주의자인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겨온 많은 트럼프들이 하고 싶었던 말과 행동을 과감하게 대신해 주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의 영웅인 셈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신의 국민인 시위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는 듯한 언행을 거침없이 쏟아내는데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들을 숫자로만 생각하며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함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대변자인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그릇된 언행이 다른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임을 알기에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뼛속 깊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을 공공연히 표현하는 백인 동료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도 아시안을 비롯해 다른 인종 아이들이 지나가면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트럼프를 환호하며 다니는 백인 아이들 무리가 있다.

미국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인종차별 자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허세를  은근하게 허용하는 나라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도 트럼프들 일 것이고 그 아이들은 자라서 트럼프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집회 금지령이 진행 중이던 어느 주말, 트럼프 대통령처럼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지지자들이 모여 트럼프를 환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하듯 대통령의 선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대응은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다.

미국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아무 말 대잔치라도 벌이듯이 떠들어대고 도덕과 상식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해도 무조건 지지하는 이들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정제되지도 사려 깊지도 못한 기이한 행적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의미 있는 조언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다.

자기 집 마당에 성조기와 함께 트럼프 이름이 쓰인 깃발을 걸어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가 싼 똥을 트럼프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센스쟁이는 누구일까?

늘 산책하는 길에 개념 없는 견주가 남긴 개똥이 요 며칠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어제저녁 산책 중에 눈에 거슬렸던 똥 아래에 트럼프 이름을 쓴 낙서를 발견하였다.

누군지 몰라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담아 센스 있게 남겨놓은 낙서에 산책을 멈추고 한참 웃었다.


미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트럼트들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에 성공할지라도 어쨌든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것이다.

그가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트럼프들 때문에 인종차별과 불평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안티 트럼프들도 있다.

그들은 피부색에 상관없이 다른 이를 포용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려 애써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 덕분에 백인 경찰의 무리한 체포 과정에서 흑인들이 죽어가도 반복되던 인종차별이 사라지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자의 숫자는 늘어나고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폭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지난 토요일 미국에서는 스페이스 X와 NASA가 협업하여 이루어낸 미국 최고의 로켓 발사가 있었다.

우주 탐사의 새로운 장을 로켓 크루 드래건은 성공적으로 발사된 후 국제 우주정거장인 ISS에 무사히 안착되어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켰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환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시위대의 폭동 그리고 로켓 발사의 뉴스를 연이어 보면서 죽음의 문턱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이들과 인종차별의 분노에 휩싸인 시위대에게 로켓 발사의 성공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다.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잠깐 이곳에 살고 있는 내 눈에도 미국의 불평등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차별이 병들거나 죽으면서까지도 이어지는 이들에게 위대한 미국이란 어떤 것일까?


로켓 발사에 성공한 위대한 미국을 만든 이들만 치하할 게 아니라, 의료 사각지대에서 바이러스로 인해 죽어가는 국민과 인종차별의 벽 앞에서 분노하는 시위대의 형편까지 헤아릴 수 있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아닐지, 로켓 발사에 환호하는 미국인들과 미국 대통령을 보며 생각했다.

바이러스의 위험에 소독약 주사를 맞으라거나 로켓 발사에 성공한 이들만 국민으로 생각하고 시위대를 테러집단으로 여기는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어려움과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피부색으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이 없는 그런 미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아주 어쩌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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