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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10. 2021

당신의 축하는 진심입니까?

들키기 싫은 속마음 : 내 축하는 진심이 아니었다

함께 축하해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마음껏 축하해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환호하며 축하해주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온전한 진심이 아니었다는 불편함이 들 때가 있다.

말하기 부끄러운 그 속마음이 아프다.




지인의 아들이 정말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친구의 딸이 장학금을 많이 받아서 학비도 내지 않고 아이비리그에 진학했다. 축하한다, 고생했다, 대단하다 실컷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데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거나 소셜 미디어에 여념이 없는 우리 집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옆집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은 함께 기뻐할 일이므로 박수를 치며 축하했지만, 사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다. 그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좋은 성과를 낸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했다. 앞서가는 동료의 좋은 업적에 대단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반은 숨겼다. 나는 못한 것을 해낸 그들에게 잘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씁쓸하도록 배가 아픈 것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속내를 들키기 싫어 더 열심히 축하하고 칭찬했지만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나 무엇이나 멋지게 해내는 동료를 보면 숨겨둔 부러움이 끓어오른다.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이 수치스러워서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과연 나는 질투의 화신인 걸까? 혹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노상 얼굴을 마주치고 종종 톡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나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기쁘고 좋은 일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하는 마음은 어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럽게 느껴진다. 삶의 크고 작은 귀퉁이를 공유하는 가까운 이들이나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기쁨이나 성공에 진심으로 함께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마주할 때면 그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런 마음에 아플 때면 생각나는 속담이 있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고민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미 오래전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있었음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누가 만들었을까? 너무도 솔직하고 인간적인 이 속담에 감탄이 나온다. 이 속담 속 주인공은 사촌이 땅을 산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 축하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초라한 자신의 밭을 바라보며, 그마저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자신의 처지에 속이 상했을 수도 있다. 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현실이지만 사촌이 땅을 사기 전과 사촌이 땅을 산 후,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밭은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같이 땅이 없던 시절에는 서로의 현실을 위로하며 살았던 사촌이 덜컥 땅을 샀으니 말이다.

누군가 잘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내 주변 사람에게 그런 좋은 일이 있다면 당연히 축하할 일이다. 기꺼이 축하해줄 일이다. 그런데 축하하고 돌아서면 보이는 내 현실이 보잘것없다면, 나의 상황이 깝깝해서 한숨이 난다면 축하의 마음 끝은 씁쓸하다. 부끄러운 속내를 들키기 싫어 더 열심히 축하하고 칭찬했지만 항상 나보다 잘 되는 것 같고 언제든 인정받는 동료를 향한 축하의 저 아래에서 숨겨둔 부러움이 끓어오르면 아프도록 씁쓸하다.

사촌이 산 땅이 알고 보니 돌밭이었을 수도 있고, 내년에 농사가 잘 되어 나는 더 좋은 땅을 사게 될 수도 있다. 인생은 길고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하지만 얕은 소견의 좁은 시야를 가진 인간인지라 가끔은 진심의 한 숟가락을 덜어낸 축하를 한다. 어쩔 때는 진심의 반을 떼어내고 축하를 할 때도 있다.    


맑은 하늘 저 편에 구름이 지나고 바람도 불어 따뜻한지 쌀쌀한지 알 수 없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내 감정의 꾸러미를 풀고 내 마음에 솔직하기로 했다.

너 사실은 그 사람이 부러웠지?

너 조금은 그 친구가 샘이 났지?

너 그 동료 때문에 배가 아팠던 거지?

그런 마음은 당연한 거야. 조금 부럽고 샘도 나고 배도 아팠지만 그들의 좋은 일에 네 마음을 전했잖아. 괜찮아. 전부 아니어도 괜찮아. 마음을 더 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축하의 그릇 가득 마음을 담고도 더 담아주고 싶은 날도 올 테니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말한다. 나에게 여유가 있어야, 내 손에 있는 것이 있어야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음은 아주 오래오래 된 진리라고. 그래야 진심을 담은 축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내 마음의 곳간이, 내 삶의 곳간이 넉넉했으면 좋겠다. 일상의 일부를 공유하는 이들의 기쁨과 즐거움에 넉넉하게 진심을 서너 바가지 더 얹어 축하할 수 있을 테니까. 덜어내고 떼어낸 마음 때문에 부끄러워 아프지 않을 테니까.




덧붙여 더 솔직하자면...

베스트셀러들의 글을 읽으며 살 때는 그들의 유연한 글이 부럽지도, 깨작거린 나의 글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차리기 시작한 후, 서로의 글을 읽어주는 브런치 이웃들의 싱싱하게 숨을 쉬는 글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밟으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내 글을 부끄럽게 느끼게 되었다. 공유하고 싶고 읽고 싶은 글로 가득한 이웃 작가들의 브런치 밥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작가의 알싸하고 감칠맛 나는 글맛에 감동하곤 한다. 그런데 돌아와 나의 소박한 브런치 소반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방금 맛본 감동의 한 숟가락을 덜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부끄럽도록 아픈 날이...... 종종 있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1549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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