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Jan 31. 2019

한국에 SKY 캐슬이 있나요? 미국은 SKY 왕국입니다

스카이 왕국인 미국에서 드라마 SKY 캐슬 마지막 회를 기다리며...

나에게는 너무도 낯선 입시 제도인 학종(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 때문에 한국에 SKY Castle이 생겼다면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SKY Kingdom이었고 그들만의 당당한 방법으로 그 왕국을 굳건히 지켜왔다.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SKY 캐슬이 20회 마지막 방송만 남겨두고 있다.

아시안컵 축구 8강전 때문에 19회가 결방되어 마지막 회가 한 주 밀리게 되자 애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아시안컵 축구에서 한국이 카다르에 진 것이 다행이라고 댓글을 달만큼 많은 사람들이 SKY 캐슬에 주목하고 있다.

배우들의 찰진 연기와 항상 한국에서는 뜨거운 감자인 입시문제와 학교 생활 기록부 종합전형이란 것이 생기면서 주목을 받게 된 입시 코디네이터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서 스카이 캐슬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이슈가 된 듯하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입시에 많은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지만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스카이 캐슬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의 입시 현실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공정하게 선발하겠다고 시작했을 한국의 학종(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은 사실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미국의 대학 입시 제도와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어쩌면 미국의 대학입시제도의 일부분을 도입한 것 같다.

대학 입학 학력고사나 수능만으로 대학을 가던 시기에는 시험 준비만 잘하면 되었기 때문에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학생들도 능력껏 SKY 대학에 합격하는 ‘개천에서 용 나는’ 예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학종이 대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부모의 능력과 재력이 학생들의 대학 입학을 결정하게 되는 사태에 이른 것이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인 듯하다.

그로 인해 SKY 캐슬 같은 드라마가 허구가 아닌 부분적 사실, 어쩌면 거의 실제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거기에 아빠의 무관심이 대입 성공의 조건이라는 말이 반은 진심으로 반은 조소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데 그것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 바로 학종인 아닐까 싶다.

정보를 정확하게 얻고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와 아이를 뒷받침해주는 조부모의 든든한 경제력,  참견 없이 그것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는 안정된 지위의 아빠를 가진 아이들은 재력과 정보력으로 섭외한 대단한 입시 코디네이터나 카운슬러 그리고 족집게 교사들을 통하여 모두가 선망하는 SKY 대학에 진학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의 명성과 재력에 힘입어 피라미드의 상위계급에 선 그 아이들은 다시 그 든든한 뒷배경을 바탕으로 부모의 대를 이어 정보력을 가진 엄마와 능력을 가진 아빠 그리고 재력이 있는 조부모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한국에는 SKY Castle이 견고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에 SKY Castle이 있다면 미국은 이미 SKY Kingdom이었다.



미국의 스카이 왕국의 기초석은 아마도 동문자녀 특례입학 제도일 것이다.


내로라하는 미국의 명문대에는 졸업생의 자녀나 손자, 손녀가 부모나 조부모와 같은 학교에 지원할 때 특혜를 주는 동문자녀 특례입학제도가 있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명문대를 졸업한 부모가 자녀를 같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수십억을 써가면서 입시 코디네이터를 붙인다.  

미국에서는 동문들의 기부를 장려한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당당하게 동문자녀들에게 특례입학의 기회를 허락해왔고 동문자녀 특례입학 제도는 동문가족들로 하여금 그들의 견고한 스카이 왕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미국의 스카이 왕국의 권력은 엄청난 기부금에서 나온다.


미국은 기부금 입학제를 허용하고 있고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기부금 입학제에 별로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돈 많은 입학생이 기부한 돈이 자신이나 자녀들이 다닐 학교와 학생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가 돈만 많으면 도서관이나 체육관 하나 지어주고 합법적으로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킬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인 것이다.

돈 많은 미국인들의 기부금은 부유한 명문대를 더욱 부유한 명문대로 만들고 부유한 자녀들에게 스카이 왕국의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미국의 스카이 왕국의 미래는 Boarding School (보딩스쿨)에 있다.


Boarding School을 우리나라말로 하면 기숙형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명문 보딩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내신성적도 좋아야 하고 미국 대학 입학시험인  SAT에 맞먹을 만큼 어렵고 치열한 SSAT(Secondary School  Admission Test)라는 시험을 합격해야 한다.

합격만 한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문 보딩스쿨의 등록금은 거의 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수준이다.

물론  소수 정예의 우수한 수업과 남다른 교내, 외 활동을 제공할 뿐 아니라 대학 입학 카운슬링 또한 든든하게 제공되어 명문 보딩스쿨의 졸업은 대부분 명문대학 입학으로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태어남과 동시에 스카이 왕국의 꼭대기층 시민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미국의 스카이 왕국은 다른 나라 스카이 캐슬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스카이 왕국인 미국에는 아시아인들에게 요즘 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인 대나무 천장이 있다.

그리고 스카이 왕국에는 그들만의 힘과 권력의 상징인 그 대나무 천장을 넘어 스카이 왕국의 피라미드 꼭대기를 선망하며 미국으로 이주해온 각국의 스카이 캐슬인들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나 뉴욕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SKY Castle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에는 자녀교육을 위해 한국인뿐 아니라 각국의 이민자들이 몰려든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유명한  한국  연예인을 태평양 건너와서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한국에서는 제법 Hot한 곳인 모양이다.


주재원으로 파견받은 남편 덕분에 캘리포니아에 와서 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 중에는 오래전 한국이나 중국에서 노동이민을 와서 정착한 사람들도 있고 정치적, 개인적 이유로 도미한 사람들이나 주재원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온 사람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까지 온 사람들 중에는 자국의 SKY Castle에 만족할 수 없어 자녀들에게  SKY Kingdom의 삶을 열어주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다.

이미 돈과 능력이 있었던 그들은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돈과 능력이 되니 아이를 비싼 사립학교나 보딩스쿨에 보낸다.

그리고 예서 엄마를 비롯하여 Sky Castle에 나오는 능력과 열정이 넘치는 엄마들처럼 미국의 교육제도나 대학입시제도에 전문적이고 탁월하다고 소문난 최상위 카운슬러들에게 주저 없이 아이를 맡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방학이면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 한국에 있는 유명한 SAT나 ACT학원에 아이를 보내기도 한다.

SAT와 ACT는 미국 대학 입학시험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사교육과 학원 수업이 전문적인 수준인 한국의 학원이 미국에 있는 학원들보다 미국 대학 입학시험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에 사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우리 아이들이 자랐고 아이들 학년이 올라갈수록 치열해지는 스카이 캐슬 이민자들의 교육 열기를 경험하다 보니 점점 위화감 때문에 좌절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적당히 못 들은 척 귀를 닫고 지내는 편이지만 어쩌다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갈 때면 부럽다기보다 서글픈 마음에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곤 한다.

요즘 대세인 SKY 캐슬이 촬영되기도 전에, 작가가 대본을 쓰기도 전에 이미 한국의 SKY 캐슬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존재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SKY 왕국인 미국에 와서 이미 그들의 성을 더 견고하게 해왔다.

그러나 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아이의 노력만으로는 SKY 대학에 가는 개천의 용이 되기 불가능한 현실이 되면서 SKY 캐슬의 모습이 더 충격과 서글픔으로 다가와 국민들의 정서를 건드리게 된 것 같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볼 때마다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에 몰입되어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가슴은 착잡했다.

 

 

캘리포니아에는 한국의 SKY 캐슬인들을 넘어서는 다른 나라에서 온 SKY 캐슬인들이 참 많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스스로를 대국이라 부르는 중국에서 온 SKY 캐슬인들의 위엄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대단하다.

상위 1% 의 부자들이 한국의 전체 인구만큼이라는 중국인들의 배포는 한국인과 차원이 다른 것 같다.

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한국 아줌마들은 친한 사람끼리 서너 명 아이들을 모아서 반을 만들어 달라고 온단다.

그러면서 이러쿵저러쿵 요구사항을 늘어놓다가 더 좋은 학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쪼르르 떠난다고 한다.

그런데 대단한 중국 아줌마들은 4명이 정원인 수업인데 자기 아이만을 위해 반을 만들어달라면서 4명 분의 수업료를 낸단다.

그것도 일 년 치 수업료를 한 번에 내고 아이를 맡기기도 한단다.

소문난 수업을 자기 아이를 위해 묶어놓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가 그 수업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도록 하는 그들만의 방법이라고 한다.

버스를 대절해서  명품가방 관광도 아닌 주택 관광을 와서 동네를 쭉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현찰로 사 버린다는 중국의 피라미드 꼭대기층은 한국의 꼭대기층보다 대여섯 계단은 더 높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 이런 각국의 SKY캐슬에 살던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

스카이 캐슬이 있는 한국에서는 어디쯤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작은 피라미드의 중간쯤에는 있었던 것 같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스카이 왕국인 미국에서 살면 살수록 꼭대기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바닥으로 점점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피라미드에 집착하는 차민혁 교수가 가족들에게 피라미드의 위를 보라며 강요하는 장면이 SKY 캐슬에 여러 번 나온다.  

그의 말을 따라 피라미드의 위만 보다가는 스카이 캐슬 밖 어딘가에 사는 것도 아닌 스카이 킹덤의 한가운데 살고 있는 나로서는 위화감과 좌절감으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감히 피라미드 위는 꿈을 꾸거나 동경하지도, 가능하면 쳐다보지도 않기로 했다.


부모의 재력과 능력의 뒷배경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걸어왔던 내 길을 동일하게 걸어갈 내 아이들이 한 두 계단쯤은 높은 곳에 살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하지만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바둥거리거나 능력 없는 부모를 원망하며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대학 입학시험만 열심히 공부해서 제 실력껏 대학을 갔던 내 세대와 제 실력이 아닌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카운슬러나 입시 코디네이터의 실력으로 대학을 가는 내 아이의 세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아이들의 삶을 주눅 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이 그리고 피라미드 아래에서 배회하는 다른 아이들이

스카이 왕국인 미국에서 살게 되든, 스카이 캐슬이 있는 한국에서 살게 되든 또는 저 멀리 또 다른 스카이 별천지에서 살게 되든

피라미드 꼭대기를 바라보며 갈증 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앞을, 여유가 있다면 자신의 주위도 바라보며 사는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면

정보나 능력도, 재력 있는 부모도 없는 엄마에게 그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이전 05화 2층짜리 한국 눈사람, 3층짜리 미국 눈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