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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an 31. 2020

황도 또는 참치가 되는 대신 비행기 복도석에 앉습니다

내가 비행기 복도석을 고집하는 이유

가난한 여행자에게 허락된 좁디좁은 이코노미석. 그곳에 몸을 구기고 결박당한 채 장거리 비행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통조림 속 황도나 참치에게
자아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잠시, 빛도 들어오지 않은 어둡고 차갑고 딱딱한 깡통 안에서 탈출할 그 순간만 기다리는 황도와 참치의 기분을 상상해 봤다. 과연 그들과 내가 다른 건 뭘까?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밥 주면 밥 먹고, 불 끄면 자고, 다시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이 든다. 비행기 안에서 이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뻣뻣하게 굳는 몸처럼, 뇌는 물론 장기까지 굳는 기분이 든다. 황도는 달콤하기라도 하지, 참치는 영양분이 많기라도 하지... 나는 이 깡통 같은 비행기 안에서 탈출해 봤자 비행기 이동에 찌든 꿉꿉한 반건조 오징어 상태겠지? 몰골도, 냄새도. 통조림 안에 들어앉은 멸균 상태의 황도와 참치에게 감정이입을 하다 반건조 오징어까지 가고야 말았다.


비행기 타는 게 마냥 신났던 시절엔 구름 위를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꼭 창가석에 앉기도 했다. 하지만 비행기 타는 일이 설렘이 아닌 고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난 무조건 복도석을 택한다. 그중에서도 비행기 문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복도 좌석을 선호하는 편이다. 비행기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외선을 피하려 자외선 차단제를 덕지덕지 바르는 것보다 복도석에 앉는 게 여러 모로 편했다.


복도석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마음대로 일어나고 움직이는데 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한쪽이라도 트여 있으니 내가 원할 때, 그 누구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도 화장실을 갈 수도 있고,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시간을 피해 허리를 비틀어 복도 쪽으로 길지 않은 다리를 쭉 펼 수도 있다. 또한 승무원에게 서비스를 요청할 때도, 받을 때도 빠르고 신속하게 피드백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이 생기면,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하는 편이다. 기를 쓰고 온라인 체크인에 연연하는 이유는 부지런을 떨면 내 마음대로 자리를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온라인 체크인이 열리는 시간에 아예 알람을 맞춰둘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항공사에서 카톡으로 친절하게 지금부터 온라인 체크인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준다.  


국제선이냐, 국내선이냐 또 항공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48시간 전 혹은 24시간 전부터 온라인 체크인이 가능하다.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해두면 탑승 당일, 공항 발권 데스크 앞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비행시간이 1~2시간 정도면 어딜 앉아도 크게 상관없지만 4시간이 넘어가는 중장거리 비행에서 비행기 좌석은 여행의 운과 만족도를 좌우하는 지표가 된다.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이 되는 비행기 좌석이 어떤지,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조심스럽게 여행의 운을 점친다.  


터치스크린이나 헤드폰에는 문제가 없는지, 의자는 정상적인 상태인지, 또 앞&뒤&옆 사람은 코골이가 심하진 않은지, 킥력이 과하진 않은지, 또 나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넘어 올만큼 활동 반경이 크진 않은지, 무엇보다 수다스럽진 않은지 꼼꼼히 체크한다.


나를 둘러싼 기내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비행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그 쾌적함의 수치는 고스란히 비행 내내 내 몸과 마음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여행 전체의 컨디션을 좌우한다. 그래서 여행의 중요한 첫 단추가 되는 비행기 좌석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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