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한라산 윗세오름에 막 도착했을 때,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겁게 짊어지고 온 가방에서 준비해온 점심거리를 꺼냈다. 김밥과 컵라면 그리고 보온병. 보온병을 열어 보니 아침에 호텔에서 넣어온 그대로 뜨거운 물이 하얀 수증기를 내뿜었다. 보온병의 온도 유지 기술에 감탄하며 컵라면에 물을 따르고 익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나도 드디어 맛보는구나.
산에서 먹는 컵라면!
한라산에 오른 건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처음 한라산에 오른 건 겨울의 끝에서 이른 봄으로 넘어가던 때였다. 등산의 'ㄷ'도 모르는 등산 무식자가 눈 쌓인 백록담을 보겠다는 욕심 하나만 챙겨 성판악으로 향했다. 그 무모한 등산의 시작점에는 나의 20대 시절에 박힌 인생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삼순이(김선아)가 악천후와 싸우며 등반한 끝에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 진헌(현빈)과 재회한 것처럼 누군가를 만날 거라는 기대 때문은 아니었다.
마냥 기대고 싶은 언니 같던 드라마 속 삼순이가 이제 나를 '왕언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다. 그러나 나이만 차고 넘치게 먹었지 드라마 속 그녀에 비해 한없이 서툴고 어리석다. 이제 어디에서든 나이로는 결코 지지 않는 존재가 됐지만, 여전히 불안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 하지만 비바람을 뚫고 올라간 정상에 진헌 같은 왕자님은 당연히 없다는 건 충분히 안다. 그저 극한의 고통에 나를 몰아넣고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잡생각을 등산로에 떨구며 올라가다 보면 정상쯤에는 몸도 마음도 한 결 가벼워진다는 건 기대감에 꾸역꾸역 한라산을 오른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라산 등반 효과는 며칠 가지 못했다. 왕복 8시간의 산행이 안겨준 근육통 때문에 잡생각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근육통이 희미해져 갈 때쯤엔 스멀스멀 잡생각이 다시 올라왔고, 눈 쌓인 백록담에서 했던 다짐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제는 안다. 산 정상에 올라도 뭔가 대단한 걸 얻지 않는다는 걸. 아니 거의 없다는 걸. 첫 한라산 등반 이후, 제주도에 살 때는 주중에는 매일 한라산을 넘어 출퇴근을 했다. 주말이면 동네 뒷산 가듯 마음이 내키면 가벼운 차림에 물 한 병만 달랑 들고 한라산에 오르기도 했다. 멀리 있을 때는 크고 대단하게만 생각했던 한라산. 그곳이 일상에 들어와 버리고, 그곳에 몇 번 오르고 나니 처음처럼 비장한 각오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안다. 꼭 정상을 찍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게 아니란 걸. 빨리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산악 마라톤이 아니라는 걸. 산에는 꼭대기에 올라 느끼는 정복의 쾌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각자 자신의 속도로 오르며 순간 불어오는 바람, 순간 펼쳐지는 풍경을 고스란히 느끼는 게 산이 안겨주는 즐거움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안다. 험한 돌길을 헤치고 올라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넓은 걸 평원이 기다리기도 한다. 또 나라는 인간을 산에서 쫓아내려는 듯 몰아치던 눈비도 지나가고 나면 곧 해가 방긋 마중 나오기도 한다. 영원한 고난은 없고, 끝이 없는 기쁨도 없다. 때가 되면 쌓인 눈은 녹고, 얼었던 계곡 물도 흐르게 마련이다. 나의 계절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시 한라산에 오른 건 지난 1월. 별 계획도 없이 덜컥 제주에 내려가 무료한 날들 보내던 중이었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보던 저녁 지역 뉴스의 끝자락... 일기예보에서 나오던 눈 쌓인 한라산 풍경을 보고 울컥 그곳에 가고 싶어 졌다. 겨울이면 눈꽃이 아름답게 핀다는 영실 탐방로를 시작으로 윗세오름을 거쳐 어리목 탐방로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아쉽게도 전날 온 비 때문에 눈꽃은 볼 수 없었다)
처음 백록담에 오를 때 보다 코스는 단조로워졌지만 나이도 몇 살 더 먹었고, 체력도 떨어진 나에게는 훨씬 어울렸다. 게다가 겨울산은 챙겨야 할 짐이 제법 많다. 등산화, 아이젠, 스패츠, 방한모, 방한 장갑, 등산 스틱 등등 떨어진 체력과 쌓인 겁을 보완해 줄 장비들을 빌려 한라산에 올랐다. 역대 한라산 산행 중 가장 가방은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평소에는 짐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 한라산에 오를 때면 늘 생수 한 병과 초코바 몇 개만 챙겼다. 딱딱한 초코바를 철근처럼 씹어 삼키며 다른 등산객이 컵라면을 먹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나의 선택이니 후회는 없었지만 산에서 먹는 컵라면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산행에는 꼭 컵라면을 챙겨 오리라 다짐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컵라면이 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먼저 김밥을 하나 집어 들었다.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기 시작 하자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수 십 개의 까만 눈동자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점점 내 가까이로 오고 있었다. 크고 까만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잽싸게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정확하게 끄트머리 김밥의 삐져나온 햄을 낚아채갔다.
아악!! 야! 꺼져!!
주변 등산객들의 존재도 잠시 잊고 까마귀를 향해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속수무책 김밥의 햄을 강탈당한 인간의 뒤늦은 방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멀리 도망가지도 않았다. 채 1m도 벗어나지 않은 채 내 주위를 맴돌며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조류 공포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공격적인 한라산 까마귀의 날갯짓에 쫄보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이내 곧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내 몫의 식사에 집중했다. 까마귀에게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김밥을 품에 안고 하나 먹으면 김밥을 싸고 있는 쿠킹포일을 재빨리 여몄다. 김밥은 차가웠지만 계란 지단이 듬뿍 들어가서인지 부드럽고 고소했다.
곧 컵라면은 적당히 익었고, 후후 불어 국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그제야 한라산 까마귀들과 대치하며 내 몫의 김밥을 사수해야 했던 긴장이 스르르 녹는다. 뼈 곳곳을 파고들었던 한라산의 한기도 사라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무겁게 가방에 먹거리를 이고 지고 올라오는구나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게 내 마지막으로 산에서 먹는 컵라면이구나 싶었다. 내게 두 번의 산중 컵라면은 없겠다는 다짐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이제는 안다.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설산을 바라보며 먹는 컵라면은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컵라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하지만 그 무게나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큼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나의 산행은 물 한 병과 초코바 정도가 더 맞다는 결론을 얻었다. 나와 맞지 않는데 남들이 하니까,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꾸역꾸역 미련하게 맞출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난 한 살 더 먹고, 체력은 그만큼 떨어졌다. 하지만 떠나간 체력의 빈자리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채워졌다. 어쩌면 그래서 인생은 공평하고, 또 오늘보다 내일이 더 재밌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