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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15. 2021

글씨를 참 빨리 쓰시네요

속도 보다는 방향이 바른 삶을 위하여  



글씨를 참 빨리 쓰시네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순간 흠칫했다. 아 또 내가 혼자 전력 질주를 했구나. 인간 복사기가 되어 똑같은 글자를 써 내려가던 중이었다. 족히 수십 장은 될 계약서와 신청서 위에 기계처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이름, 사인까지 하던 나를 지켜보던 담당자. 그의 그 한마디에 그제야 브레이크가 잡혔다. 볼펜을 쥔 손에서 힘을 스르륵 뺐다. 잔뜩 밀린 일일 학습지를 해치우는 초등학생의 자세로 한껏 집중해 움츠린 어깨 근육의 긴장도 슬쩍 풀었다. 쓰던 글자를 보니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날림으로 쓰고 있었다.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뿐, 휘갈겨 쓴 글씨는 뒤죽박죽이었다.     

 

필기구보다는 키보드가 익숙한 시대. 회의 때 간단한 메모를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손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처럼 계약서, 확인서, 신청서 등등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나를 증명해할 순간들이 종종 생긴다. 지문인식, 안면인식, 생체인식 등 새로운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21세기에도 손글씨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첫 책을 내고 손글씨를 써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무명 신인 작가의 사인을 받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란색 책 속지에 까만색 매직으로 간단한 메시지와 이름을 적었다. 감사와 고마움을 가득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면서 가슴 한 쪽에는 미안함이 울컥 차올랐다.     

 

미리 글씨 연습 좀 해 둘 걸     


다른 분들은 어떻게 사인을 하나 궁금해 여기저기서 작가들의 사인본을 찾아봤다. 대부분 멋진 ‘어른의 글씨‘였다. 찍어낸 듯한 명필이 아니라 작가의 개성과 느낌이 살아 있는 글씨체였다. 작가의 이미지와 글의 분위기가 글씨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에 비해 내 글씨는 여전히 초등학교 졸업 무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이 글씨. 내 손글씨를 마주할 때마다 차오르는 부끄러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늘 빠른 속도로 글씨를 썼다. 그러니 점점 더 글씨는 엉망이 될 뿐이었다.     


새해에는 좀 번듯한 글씨를 갖고 싶었다. 올해 초 새 다이어리 맨 앞에 써둔 <To Do List>에도 그 목표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래전에 사두고 처박아 뒀던 손글씨 연습 교재를 펼쳐 놓고 주기적으로 글씨 연습을 한다. 초등학교 1학년, 코찔찔이를 시절로 돌아가 글씨 쓰기를 한다. 바른 자세로 앉아 연필을 쥐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신중하게 줄을 긋는다. 수평선, 수직선, 사선... 줄 단계를 넘어가면 숫자, 모음, 자음 순이다. 고사성어와 속담 쓰기, 짧은 문장에서 긴 문장 쓰기로 이어진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없으면 제대로 된 글씨를 쓸 수 없다.      


(악필 교정 책에 의하면) 바른 글씨 쓰기의 꼼수는 없다. 그저 글자를 일정한 크기로, 일정한 위치에 가지런하게만 써도 문장이 정돈되고 깔끔해 보인다. 그거면 된다. 손가락이 아프니까, 빨리 끝내고 싶어서 휘갈겨 쓰다 보면 크기도 높이도 들쑥날쑥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속도 조절. 빨리 끝내는 것보다 제대로 한 글자를 쓰는 데 중점을 두는 거다. 그 습관이 몸에 스미면 속도를 내도 반듯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속도가 중요한 줄 알고 살았다. 남들보다 먼저, 빨리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과정에서 얻는 기쁨보다, 목표 지점에 기다리고 있을 결과만 달콤한 줄 알았다. 내가 가진 게 누추하니 남들한테 인정받고 싶어 목을 매달았다. 과정의 피땀 눈물은 나만 알고, 세상은 결과라는 열매만 보니까. 과정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좋은 거였다.      


하지만 바르게 줄을 긋지 못하는 사람은 바른 글씨를 가질 수 없다. 난 획 하나, 동그라미 하나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반듯한 글씨를 가지길 바랐으니 결과는 불만족. 삐뚤빼뚤한 글씨처럼 몸도 마음도 삐뚤어졌다.  걸음마하는 아이처럼 한 자 한 자 글씨 연습을 하며 흔하디 흔한 그 말을 떠올린다. 속도보다 방향. 골인 지점을 제대로 조준했다면 언젠가 닿기 마련이다. 그 진리를 믿는다.


몸은 뻣뻣하게 굳었고, 오래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도 더 딱딱하게 굳기 전에 내 글씨를 그리고 나를 다잡는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따분한 연습 시간을 보내고 나면 원하는 모양의 글씨를 얻을 수 있을까? 이 밋밋하고 싱거운 시간이 쌓이면 내가 원하는 맛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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