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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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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18. 2021

이 시국에 퇴사를 한다고?

당신께 선 넘는 걱정 대신 단단한 응원을 보냅니다


"미친 X"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시국에 ‘퇴사‘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탄탄한 회사에 다니던 A가 퇴사를 결심했다. 이 소식을 전하던 B의 입에서는 화와 걱정이 뒤섞인 쌍욕이 문장의 앞뒤로 붙었다. A와 B는 오랜 친구. 난 B의 소개로 A를 알게 됐다. 가끔 온・오프라인으로 만나 크고 작은 고민을 안주 삼아 수다를 떠는 사이다.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안정된 삶을 버리고, 결과가 불투명한 도전을 하는 A. 그 선택을 지켜보는 고용불안이 일상인 프리랜서인 B와 나. A와 쌓아 온 시간의 두께만큼 B의 우려가 깊었다. 그에 비해 난 A에 대해 짧게 알아서일까? A의 퇴사 결심 소식을 듣고 내가 한 말은 이거였다.      


“우와? 정말? 대단하네. 이 시국에...

그래서 퇴사 후에는 뭘 한대?”     


내 말을 들은 B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걱정 안 돼? 난 영 불안해. 말리고 싶어.

이 시국에 퇴사한다니 제정신인가 싶어.

내가 A의 코흘리개 시절 봐서부터 그런가?”     


B는 A의 선택에 대해 엄마처럼, 혈육처럼, 배우자처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단지 B보다 A를 알아 온 세월이 짧아서 걱정을 덜 하는 걸까? 생각해 봤다. 오래된 절친이 이 시국에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소식을 전한다면 난 어떤 말을 해 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답은 하나다. 어떤 선택을 하던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것. (단, 신문 사회면에 나올 위법행위가 아닌 이상)     


A는 어떤 사람인가? 맹수가 우글거리는 사바나 초원에 막 던져진 눈도 안 뜬 새끼 톰슨가젤이 아니다. 사회라는 냉혹한 정글에서 1N 년 넘게 살아남은 프로 직장인. 치기 혹은 충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 계획적이고, 꼼꼼한 인간. 그런 A를 걱정할 일인가 싶다. ‘퇴사‘라는 짧은 단어로 신변을 정리하기까지 본인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뮬레이션을 했을까? 그 과정을 걱정이란 이름으로 까맣게 뒤덮고 싶진 않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도 A에게 쏟아진 걱정 같은 우려를 들은 적 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각자 직업의 유효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 인생 2라운드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단호박 같은 A처럼은 아니어도 나도 나름의 가슴에 품었던 계획과 희망을 얘기하던 찰나, 건너편에 앉은 누군가가 짙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아끼는 친구니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싶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끄집어내 줘서 신선했다. 하지만 그 신선함은 찰나였다. 대신 ‘걱정’이란 짧은 단어 하나로 내 선택이 그리고 고민과 노력이 부정당한다는 느낌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만큼의 영향력을 미칠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걱정이 되면 날 먹여 살리던가? 삐딱한 생각이 뾰족뾰족 자라나 마음 한쪽을 쿡쿡 찔렀다. 불안했던 그때, 내게 필요했던 건 분명 냉철한 분석이 아니라 따뜻한 응원이었다. 다짐했다. 누군가 설레고 있을 때 초치지 말기로. 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전복시킬 만큼 부정적인 선택이 아니면 그냥 응원해 주기로.       


지금, 이 순간 A를 가장 많이 걱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본인일 거다.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버리고, 도박에 가까운 무모한(?) 도전을 선택했으니. 완연한 성인 A. 선택의 결과도 책임도 본인의 몫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돼서 하는 말‘로 마음을 바꿔 버리기엔 이미 멀리 와 버렸다. 먹히지 않을 훈수는 소음일 뿐이다. 자라나는 새싹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햇빛과 꾸준한 관심이다. 독한 걱정은 독이 될 뿐이다. 지금의 불안한 선택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도 땅도 심지어 본인도. 삼시 세끼 도시락 싸서 쫓아다니며 말릴 거 아니고, 인생을 대신 살아 줄 거 아닌 이상 주변인의 임무는 그저 응원과 격려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친밀함을 무기로 나 아닌 남의 인생에 선을 넘지 말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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