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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26. 2021

우리 언니는 뭘 좋아하더라?

혈육의 취향에 대하여

 

언젠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가족에게 줄 선물 구매 목록을 적다가 머리를 싸맨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다들 빠듯한 사정이었을 텐데도 통장에 선명하게 찍히는 숫자로 격한 응원을 보탰다. 여행 가서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거 못하지 말고 마음껏 즐기고 오라고. 뜨거운 응원을 받았으니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면목이 없었다. 뭐를 좋아할지? 뭐가 필요할까? 고민했지만 여행 내내 결론을 못 내렸다. 결국, 가슴에 빈칸을 안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야 겨우 면세점에 들러 선물을 샀다.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어울려 많이 팔린다는 명품 립스틱이나 핸드크림 혹은 향수, 술로 마음의 짐을 겨우 지웠다.


생각해 보면, 난 혈육들의 취향을 잘 모른다. 한 배에서 태어나 같은 지붕 아래 살았지만, 이제는 같이 산 세월보다 떨어져 산지 더 오래된 혈육도 있다. 또 여전히 같이 살아도 얼굴 마주하고 차분히 취향을 묻고 답할 여유가 없는 혈육이 있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만나는 사무실 사람들 그리고 시간을 정하고 만나는 친구들의 취향은 잘 안다. A팀장님은 얼음 몇 개를 넣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후배 B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를 2개나 주문한다는 건 지금 스트레스 최고치라는 신호다. 카페인에 취약한 친구 C는 저녁 7시 이후에는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또 다른 친구 D는 평소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회원이지만 우울하면 뜨거운 캐러멜 마키아토를 먹는다.       


그나마 부모님은 종종 함께 가는 여행에서 미처 몰랐던 당신들의 취향을 발견하곤 한다. 취두부나 두리안 같은 명성이 자자한 악취 음식에도 겁이 도전하는 엄마. 반면, 낯선 음식은 몸서리 칠 정도로 입맛이 흥선대원군인 아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새로운 음식과 마주했을 때 처음 도전은 하지만 취향이 아니면 두 번은 안 먹는 소심한 음식 애호가로 자랐다. 선천적 베짱이인데 팍팍한 현실에 후천적 일개미가 될 수밖에 없던 아빠. 고급 리조트나 비싼 식당에 가면 원래 이 정도는 일상이라는 듯 유유자적 그 고급짐을 어색함 없이 마음껏 누린다. 평생 ‘차림 노동’ 혹은 ‘준비 노동’을 해 와서 일까? 엄마는 융숭한 대접을 받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라하며 연신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난 깍듯한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어색한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고 여유를 즐긴다.      


반면, 피를 나눈 두 언니 그리고 동생의 취향이 뭐지? 생각하면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난 대체 그들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 유년 시절에는 과자 한 봉지를 넷이 나눠 먹었다. 덕분에 약육강식이라는 생존의 진리를 일찌감치 깨우쳤다. ‘내 거’에 대한 집착이 날카로워지는 사춘기 시절에는 먼저 먹는 자, 우선 손에 넣는 자가 위너였다. 내일을 기약하며 냉장고에 넣어 둔 통닭은 매번 행방불명. 곱게 빨아 둔 흰 양말을 동생이 신고 나가 지워지지도 않는 흙먼지를 잔뜩 묻혀 왔을 때 울고불고 싸워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과자 한 봉지를 두고 싸울 일도, 지난밤 먹고 남긴 족발의 행방을 추궁할 일도 없다. 조금만 과하게 먹어도 더부룩함을 호소할 만큼 노화한 자매, 형제의 장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샤워는 자주 안 해도 양말만큼은 흰색을 고집하던 스포츠머리 중학생은 이제 없다. 양말 정도는 박스째 플렉스 가능할 금전적, 심리적 여유가 있는 중년이 코앞인 아저씨가 있을 뿐이다.


24시간 같이 지내며 치고받던 시간을 지나 각자의 뚜렷한 삶이 생겼다. 하나둘 집을 떠나면서 생일, 가족 행사, 명절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면 따로 시간을 내야만 보는 사이가 됐다. 한 사람의 역사가 쌓여 만들어지는 취향. 우리가 함께 쌓아온 역사가 어느 순간부터 뚝 끊겼다. 폭우에 휩쓸려간 다리처럼. 양 끝에 흔적만 겨우 남고 중간이 텅 비어 버렸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취향은 그렇게 알려고 시간과 정성을 쏟았으면서 정작 피를 나눈 혈육들의 취향에 대해 무심했다.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또 늘 가까이 있는 ‘가족‘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등잔 밑이 어둡듯 가까워서 오히려 잘 몰랐던 혈육들의 취향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본다.      


우리 언니들은 뭘 좋아했더라?
내 동생은 뭘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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