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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16. 2021

뻥 차올리세요. 두려움도, 편견도

머리 서기의 효능


       

요가를 시작한 지 3개월. 매일 나는 내 몸의 한계와 마주한다. 사람의 몸으로 가능한 동작일까? 싶게 신기한 자세들을 시도한다. 몸을 늘리고, 찢고, 구기고, 꺾는다. 시범을 보이는 선생님은 물론 수강생들을 보면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는 것처럼 쉽게 척척 해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내 몸이 이토록 쓰레기였나 싶어 자괴감에 몸서리친다. 그래도 차근차근 개미 눈물만큼 늘어나는 실력을 체감할 때면 묘한 쾌감에 젖는다. 겨우 1시간. 은은한 어둠 속에서 땀을 빼다 보면 수업 후반부에는 100년 쓴 행주처럼 몸이 너덜너덜해진다. (누가 요가가 정적인 운동이래?)     


요가 수업이 마무리될 무렵에는 그 시간을 정리하는 마지막 자세, 사바 아사나(Shava-asana 송장 자세)를 한다. 그 자세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생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머리 서기>를 해 보죠
 

고요했다. 숨소리마저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No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침묵 속 동조가 가득한 상황. 내 진심은 정반대로 요동치고 있었다. ’네? 두 다리도 겨우 서서 사는데 머리 서기라니요?‘라는. 격한 저항 대신, 무섭게 흔들리는 동공으로 시그널을 보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요린이(요가+어린이)의 구조신호를 가볍게 외면했다. 익숙하다는 듯 다들 자신의 매트를 벽 쪽으로 가져가더니 한 사람씩 머리 서기를 했다. 각자의 속도로. 숨 쉬듯 여유롭게.      


나이를 들어서 좋은 점도 있고, 분명 안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좋은 점이 더 많다. 그중 하나는 대충 눈치로 때려 맞추면 중간은 간다는 거다.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배운 적도 없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과정을 훔쳐보고 재빨리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양팔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그사이에 머리를 넣고 몸을 세운다. 이렇게 글로 쓰니 참 쉽다. 하지만 내 몸은 그 동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누군가 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었다면 평생의 흑역사로 기록될 만큼 참혹했다. 내 몸은 갓 태어난 고라니처럼 발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래서 요가 수업에 조명을 어둡게 하는 걸까? 어두운 조명 및 속에 처참한 현실을 잠시 숨겼다고 착각하는 사이, 선생님이 내게 가까이 오는 게 느껴졌다. 안쓰러운 몸부림을 치는 나를 구원할 한마디가 그때 들려왔다.     


한 번에 뻥 차올리세요. 주저주저하면 평생 머리로 못 서요.     


나 같은 '요가 햇병아리'가 머리로 서는 게 가능한 거야? 뒤로 꽈당 넘어지면 어쩌지? 허우적거리다가 망신당하는 거 아니야? 목을 삐거나 척추를 다치면 선생님이 119는 불러주겠지? 별별 망상과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두려움과 걱정이 차곡차곡 차오르는 중이었다. 그 무거운 생각들이 다리를 무겁게 짓눌렀고, 정신은 집중할 수 없었다. 한 번에 뻥 차올리라는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채찍이 되어 어수선한 마음을 찰싹 때렸다.      


선생님의 말씀을 머릿속에 새기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코어에 힘을 빡 주고, 정신도 집중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다리를 뻥 차올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같던 다리의 흔들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다리를 차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머리로 서 있었다. 어? 이게 되네? (처음에는 벽의 힘에 기대긴 했지만) 머리는 매트 위에 뿌리처럼 박혀 있고, 다리는 하늘을 향했다. 순식간에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난 모양이 됐다. 나 조차도 믿지 않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이게 될까 싶은 어려운 동작을 해냈을 때의 기분 좋은 얼떨떨함이 내 몸에 순식간에 퍼졌다.

     

땅은 다리로 딛고 서야만 한다는 편견. 넘어지면 개망신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다치면 회복하는데 돈도 시간도 많이 들 거라는 두려움. 이제 와서 뭘 새롭게 시작하냐는 체념 등등 이렇게 불필요한 감정들을 덕지덕지 끌어안고 살았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무거운 몸과 마음은 편협한 생각을 만들고, 가뜩이나 좁은 나라는 세계를 더 좁게 만들었다. 편한 것, 쉬운 것, 내 입맛에 맞는 것만 찾아다니고 받아들였다. 그러니 사는 게 뻔하고, 답답했다.        


중력을 이용해 몸의 처진 피부와 신체 장기를 올바른 위치로 돌려놓는다는 <머리 서기>. 몸을 거꾸로 세우면 뇌 쪽으로 피가 몰리면서 뇌 기능을 활발하게 해 준다. 많은 사람이 <머리 서기>의 효능을 찬양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머리 서기>의 가장 큰 효과는 딱딱한 생각을 깬 거다. ’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깨고, ’ 나도 할 수 있다’라는 확신을 채웠다. 개망신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깨고, 개망신 좀 당하면 어때? 다시 시도하지 라는 의욕을 채웠다. 이제 와서 뭘 도전하냐는 안일함을 깨고, 하면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채웠다. 고여있는 삶이 갑갑하다면 의도적으로 뻥 차올릴 필요가 있다. 주춤주춤 하다가는 영영 혼자 서지 못한다. 잠시 누군가 내 다리를 잡아 줄 순 있다. 하지만 영원히 잡아주진 않는다. 그러니 오롯이 내 코어 힘으로 버텨야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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