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기 안의 정답
어때 마음이 좀 가벼워졌지?
맥주잔을 앞에 두고 주절주절 수다를 떠는 내게 물음표가 하나 툭 던져졌다. 그들은 내가 바뀌었다고 했다. 전에 비해 속마음을 잘 털어놓는 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얼굴이 한결 가벼워 보여 좋다고 했다. 아... 그런가?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했다.
난 가벼워졌을까?
몇 년을 봐도 네 속을 모르겠다는 말. 뭘 그리 숨기고 있냐는 말. 혹시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지 걱정된다는 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수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별게 아니어서 얘길 안 했다고. 그런데 내 논리의 허점을 콕 찌르는 반격이 들어왔다. 별게 아니니까 부담 없이 얘기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어? 그러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내가 별게 아니라고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게 불필요한 오해와 걱정을 낳았다. 견고했던 생각의 틀이 깨진 그날 이후 나를 위해,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 조금 더 수다스러워지기로 했다.
가벼워졌냐고? 글쎄... 그때나 지금이나 난 똑같은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나 보다. 건너편에 앉은 사람의 눈이 똥그래졌다. 지진이라도 난 듯 무섭게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침착하게 붙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왜 마음이 바뀐 거야? 속마음을 얘기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이 좋아하니까. 신경을 안 쓰게 해주고 싶어서.
그럼 너는 좋지 않고?
음... 난 똑같아. 얘기할 수 있는 건 얘기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근데 조금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얘기할 뿐.
상대가 궁금해할 만한 걸 먼저 털어놓게 된 거야. 물어보기 전에.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던 걸까? 딱히 이을 말을 못 찾아서였던 걸까? 상대방은 말 대신 미지근해진 맥주잔을 입에 가져가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을 깨기 위해 잔을 부딪쳤다. 쨍! 잔 부딪히는 소리를 신호 삼아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수다는 경찰에게 쫓기는 도둑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만 달려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각자의 얼굴 안에는 물음표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내 의도와 생각을 100% 이해할 수 없다는 상대방의 표정. 그 여운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사람은 각자의 정답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본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이렇게 사람은 정반대의 생각을 갖는다. 하나의 상황이라도 누구에게는 옳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은 경우가 있다. 내가 특별히 싫고 불편한 게 아닌 이상, 대개 나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 약간의 수고스러움은 불편해하는 상대방을 보는 것보다 편하다. 내가 좀 노력해서 상대방의 기대를 맞춰주는 게 에너지가 덜 쓰인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상대방을 배려해 그런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난 출발도 이기적이었고, 결론도 이기적인 사람이다. 지극히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론 내린다.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고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하기 시작했고, 변하기 시작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