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다보면 보이는 것들
여행을 계획할 때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과 전망대는 빼놓지 않고 챙겨 넣는다. 사람이 가득한 곳에 가면 정신과 육체가 탈탈 털리는 고질병이 있어 가능하면 번잡스러운 곳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시장과 전망대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사람이 얼마나 있건, 입장료가 얼마건 일정과 날씨가 허락하는 한 그곳에 간다. 물론 대단한 사람들이 살았던 오래된 건축물이나 박물관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오늘을 엿볼 수 있는 시장을 탐험하는 즐거움이 내게는 더 크다. 같은 맥락으로 그 지역의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망대 역시 내 여행의 필수 코스다. 전망대에 오르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의 굴곡, 녹지와 건물의 조화, 구불구불한 구도심 도로와 각 잡힌 신시가지의 도로의 차이, 개성 있는 개인 주택과 트렌디한 아파트 등등 그 도시의 지금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지독한 고소공포증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내 돈 주고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는 일은 없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데 그 안에 몸을 싣는다?! 그건 내게 고문이나 다름없다. 물론 비행기 타는 것도 두렵다. 비행기를 수없이 탔지만, 여전히 일정 높이에 올라가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땀에 젖은 손으로 안전벨트를 꼭 쥐고 있다. 비행기가 올라갈 때의 고통은 순간이고, 여행의 즐거움이 더 길기에 두려움을 꾹 참고 비행기에 오른다.
전망대도 마찬가지다. 부실 공사 때문에 바닥이 꺼지진 않을까? 자칫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건 아닐까? 안전장치가 충분한데도 생기지도 않을 사고를 걱정하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고산병이 생길 높이도 아니지만, 점점 가빠오는 숨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바닥이 아닌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오르면 그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소공포증을 무릅쓰고서라도 기어이 전망대에 가는 이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전망대에 오르기 가장 좋은 때는 해지기 1시간 전이다. 환할 때의 민낯 같은 모습과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아 보석을 흩뿌린 것 같은 야경을 한 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워지길 기다리며 발아래 도시의 풍경을 느긋하게 보고 있으면 같은 눈높이였다면 보지 못했을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소인국을 내려다보는 걸리버의 마음으로 미니어처 세트 같은 도시를 구석구석 뜯어본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사람들의 피부색도 다르지만 사람 사는 건 거기서 거기다. 장난감같이 자그마한 자동차, 네모 와플을 세워 놓은 것 같은 건물, 그 사이를 오가는 깨알만큼 작은 사람들의 모습은 비슷비슷하다. 번화가의 불빛은 환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교통체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전망대에 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다.
전망대에서 보면 개미만큼 작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조급함이나 나만 뒤처진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슬쩍 지워진다. 하나라도 더 갖겠다고 아등바등하고, 내가 더 잘났네 네가 더 잘났네 비교하고 재단하며 머리를 굴리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더 대단한 걸 차지하겠다고 쫓기듯 살아온 지난 시간이 눈앞에 흐른다. 이렇게 멀리서 보면 티끌보다 작은 존재일 뿐인데 얼마나 잘난 사람이 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신을 향해 회초리를 휘두르며 사냐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전망대에서 본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일 정도인데 우주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는 아마 먼지에 불과할 거다. 집채만 한 파도처럼 느껴지는 내 고민도 물방울 아니 수소 원자보다 작을 거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크고 대단한 것들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별거 아니다. 나를 덮칠 거 같은 위협적인 거대한 것들도 높은 곳에서 멀찍이 보면 손톱보다 작아 보인다. 대게 작은 건 귀엽고,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게임 끝이다. 인간의 뇌는 작고 귀여운 걸 보면 미소가 피어나고 사랑에 빠지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를 짓누르던 우람한 고민이 귀여워 보이면 수렁에 빠진 나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는 게 힘에 부칠 때는 물리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간다.
코로나 19 시대가 시작된 후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낯선 도시의 전망대에 올라갈 수 없으니 가슴이 답답해지면 한적한 산에 올라간다. 국토의 70%가 산인 나라에 사는 국민에게 주어진 혜택을 알뜰하게 활용한다. 걸음마다 잡념을 실어 던져 버리고 한 발짝 한 발짝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착한다. 일단 누가 보든 말던 너덜너덜한 몸을 바닥에 널브러뜨리고 쉰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날뛰던 맥박이 잠잠해지고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땀이 식으면 그제야 산 아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시선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지나 에펠탑을 축소해 놓은 듯한 송신탑과 끊임없이 이어진 전신주를 따라간다. 한참 공사 중인 빌딩도 있고, 사람들이 빠져나가 스산한 재개발 지구도 보인다. 그 옆에는 이제 막 완공한 아파트 단지에 사다리차로 이삿짐이 올라간다. 바쁜 걸음으로 옆을 지나갈 때는 복잡하고 어수선하게만 느꼈던 곳들을 이렇게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면 복작복작 귀엽기만 하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며 불안해하는 나를 다독인다.
‘지금 나를 흔들고 괴롭히는 고민은
멀리서 보면 분명 작고 귀여울 거야.
지나고 보면 틀림없이
피식 웃음이 날 에피소드가 될 거야.
눈감는 날 돌이켜 보면
잔망스러운 NG 컷 모음 중 하나가 될 거야’